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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짜 아이들': 책소개, 저자소개, 추천사

아작 책방/20 나의 진짜 아이들

by arzak 2017. 11. 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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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기억, 두 가지의 삶

그러나 어디에나 사랑과 슬픔이 있었으므로




2015년, 아흔의 패트리샤 코완은 치매를 앓으며 노인 요양소에서 살아간다. 간호사들은 그녀의 상태에 따라 매일 ‘혼란’, ‘덜 혼란’, ‘매우 혼란’ 등을 차트에 기록한다. 패트리샤의 상태는 오늘도 ‘매우 혼란스러워 함’이다. 올해가 몇 년도인지, 자녀들이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문제는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두 가지 상반된 기억이 동시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분명히 마크와 결혼해 네 아이를 낳은 게 기억나는데, 어떤 날은 마크와 결혼하지 않고 동성 연인인 비(Bee)와 함께 세 아이를 키운 게 기억난다. 아이가 세 명이었던 것도 같고 총 네 번의 유산과 사산을 겪으며 네 아이를 낳았던 것 같기도 하다. 1963년 폭탄테러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사실이 기억나는데, 1964년 마이애미와 키예프 사이의 핵무기 공격 이후 수많은 인명피해를 겪으면서 케네디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한 사실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과 2차 세계대전 중 옥스퍼드에 다녔던 시간은 분명하게 기억나는데, 그 후 마크와 결혼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영 혼란스럽기만 하다. 친구들이 그녀를 트리시라고 불렀던가, 팻이라고 불렀던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끔찍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주부였던가, 아니면 영국과 이탈리아 양쪽에 집을 두고 살았던 성공한 여행작가였던가? 그리고 저 창밖에 보이는 달은? 평화로운 연구기지가 들어섰던가, 아니면 핵미사일이 가득한 전투기지가 들어섰던가?

패트리샤는 1930년대 런던의 교외에서 ‘팻시’라고 불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정서적으로 냉담했던 어머니, 자애로웠던 아버지, 그리고 오빠 오스왈드와 함께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 중 아버지와 오빠를 잃는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했다가 젊은 철학도 마크를 만나고 처음 만난 날 밤 청혼을 받는다. 두 사람은 마크가 학위를 받으면 곧바로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마크가 공부를 계속하는 동안 패티는 콘월에서 교사로 일하고 떨어져 있는 사이 옥스퍼드에 머무는 마크는 아름다운 편지를 보내 패티의 마음을 달랜다. 그러나 2년 후 마크는 성적 미달로 학위를 받는 데 실패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패티에게 전화를 건다. 

“패티, 나랑 결혼해줘. 지금 당장, 아니면 영영 못해!”

마크의 급작스러운 청혼이 갈라놓은 패티의 운명

마크의 청혼을 받아들여 애정도 없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디며 살아가는 패티는 ‘트리샤’로 불린다. 남자 경험도 연애 경험도 없이 무작정 결혼해버린 트리샤는 자신을 모욕하고 하녀 부리듯 하는 마크와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이어나간다. 네 번이나 되는 유산과 사산을 겪고 힘겹게 낳은 네 아이들은 그나마 트리샤를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의망이다. 

한편 마크의 청혼을 과감히 거절한 패티는 ‘팻’이 되어 살아간다. 결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친구 마저리와 이탈리아 여행을 갔다가 르네상스의 중심지 플로렌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이후 팻은 이탈리아 여행 안내서를 출간하고 책의 성공으로 베니스와 볼로냐, 로마 등의 여행 안내서를 잇달아 출간하게 되면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여행작가가 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 생물학자인 비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은 평생의 반려자이자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와 플로렌스 양쪽에 집을 두고 계절마다 두 도시를 오가며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간다. 특히 50년대와 60년대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무릅쓰고 한 남성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번갈아가며 세 아이를 낳아 키운다. (세 사람은 현대의 관점으로 봐도 매우 독특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어 살아간다. 비는 마마, 팻은 엄마로 부르지만 아버지나 아빠로 불리는 사람은 없다.)

둘로 쪼개진 참혹한 세계, 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

팻이 사는 세계는 1956년 수에즈운하를 둘러싼 위기가 국제적인 불안을 촉발하고 이집트와 헝가리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진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마이애미와 키예프가 서로 보복성 핵 공격을 감행하면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그 결과 존 F. 케네디는 1964년 재선을 포기하기에 이른다(이 세계에서 케네디는 1963년 암살당하지 않는다). 미국은 고립주의자가 되어 베트남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팻이 사는 세상은 핵무기가 증식하고 테러가 횡횡하며 방사능으로 인한 치명적 암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곳이고 팻 역시 이러한 시대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팻은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존중하며 가족을 꾸려나가고 직업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나간다. 

이와 달리 트리샤가 살아가는 세상은 팻이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는 평화롭고 번영한 곳이다. 트리샤의 시대에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위기는 평화협상으로 마무리된다. 국제관계는 점점 협력과 안정을 토대로 진행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폭탄테러로 암살당하고 쿠바의 미사일 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소련은 자유롭고 온건한 정치를 펼치며 냉전의 긴장감을 완화하고 1967년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다. 미국도 소련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으로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달 기지를 세운다. 비교적 평화로운 세계에서 트리샤는 남편 마크로부터 온갖 멸시를 당하며 힘겹게 가정을 꾸려간다. 그나마 행복을 안겨주는 존재는 유산과 사산을 반복하며 어렵게 얻은 네 아이들이다. 1960년대 여성운동이 활발해지고 큰아들 더글러스의 지지를 받으면서 트리샤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개척해나갈 방법을 깨닫는다. 마크의 외도가 발각되면서 트리샤는 1972년 마크와 이혼하고 자신의 이름을 트리시로 줄인다(패티였던 패트리샤가 ‘팻’이 된 것이나 트리샤가 ‘트리시’가 된 것, 베아트리스가 ‘비’가 된 것, 심지어 작가 조 월튼의 이름이 ‘조’가 된 것은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 쪽 성에 편향되지 않는 중성적인 느낌을 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트리샤는 트리시로 살아가면서부터 자신만의 관심사를 추구하고 발전하는 아이들의 삶을 지켜보며 기쁨을 찾는다. 트리시의 아들 조지는 뛰어난 과학자로 성장해 아내와 함께 달 기지 건설의 주요 인물로 활약한다.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 물처럼 기억이 빠져나간다는 것

다시 2015년, 치매환자로 노인요양소에 입원해있는 패트리샤로 돌아온다. 패트리샤는 혼란스러운 두 가지 기억 중 어느 쪽이 ‘진짜’였는지, 어느 아이들이 자신의 ‘진짜 아이들’인지 선택하고자 한다. 마치 오래전 마크가 갑작스레 청혼하며 ‘지금 당장, 아니면 영영 못해!’라는 질문을 던졌듯이. 자신은 팻이었을까, 트리시였을까? 전쟁이었을까, 평화였을까? 외로움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패트리샤는 최종 선택을 내렸지만, 과연 어느 쪽을 선택했을지 ‘결정’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가?

[나의 진짜 아이들]은 어떤 ‘선택’이 우리 삶을 어떻게 ‘형성’해나가는지를 탐색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선택이 타인과 나아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꽤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팻과 트리샤로 살아간 삶의 기억들은 모두 ‘진짜’로 느껴지지만, 치매환자가 되어 있는 노령의 패트리샤는 그중 어느 한쪽 삶만이 진짜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어떤 삶이 진짜였는지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 한쪽 삶을 폐기한다는 뜻임도.
패트리샤가 되어 팻과 트리샤의 삶을 반추해보고 그중 한쪽을 ‘진짜’로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불행하고 외로웠던 트리샤보다는 사랑하고 행복했던 팻을 선택할 것만 같다.
그러나 패트리샤가 고려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신의 행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트리샤의 네 아이, 팻의 세 아이가 모두 자신의 ‘진짜 아이들’로 느껴진다. 모두 사랑했던 아이들, ‘나의 진짜 아이들’이다. 그만큼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폐기한다는 것은 패트리샤에게 결코 쉬운 선택이 될 수 없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 한 번의 선택을 했고(마크의 청혼), 그 선택은 극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았다. 
훗날 우주과학자로 성장하는 트리샤의 아들 조지가 어린 시절 과학소설을 읽다가 엄마에게 나비효과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랭커스터에서 일어난 나비의 날갯짓이 중국에 태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패트리샤의 행동 역시 나비의 날갯짓 같은 것이었을까?

갈라지는 두 세계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계속 바뀌는 이유는?

패트리샤의 달라지는 이름은 자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상징한다. 어린 시절 그녀는 ‘팻시’이다. 어머니는 패트리샤가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어렸을 적 이름인 ‘팻시’라고 부른다. 어린 소녀의 분위기를 풍기는 애칭은 모녀간의 유대감을 자아내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패트리샤는 대학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조금 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패티’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결혼 직후 마크와 마크의 오만한 친구 엘리자베스는 ‘패티’라는 이름은 미숙한 느낌을 준다면서 제멋대로 그녀의 이름을 ‘트리샤’로 정해버린다.

“패티라니, 무슨 조그만 파이 같잖아.”

패티에서 트리샤로 이름이 바뀌는 과정은 마크와의 결혼생활에서 패트리샤가 박탈당한 통제권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름조차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종속적이고 굴욕적인 삶. 나중에 마크와 이혼한 트리샤는 당시 활동하던 여성운동그룹 회원의 제안으로 이름을 ‘트리시’로 줄인다. 보다 현대적이고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이 이름은 마크에게서 벗어나 새롭게 독립적인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상징한다.

패트리샤가 마크의 청혼을 거절한 세계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패티’로 시작했다가 점점 ‘팻’으로 굳어진다. 패티가 팻으로 변하는 과정은 그녀의 삶에 점점 따뜻하고 애정 어린 관계가 싹튼다는 의미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비와 열정적인 동성애에 빠진 것도 역시 자유로운 팻이다. 비도 팻도 중성적인 느낌의 짧은 이름을 선택한 것은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 두 사람만의 의미 있는 삶에 만족한다는 신호이다.

노인 요양소에서 치매환자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름은 그냥 ‘패트리샤’이다. 법적이고 공식적인 이름이지만, 팻도 트리샤도 아닌 서류상의 이름이다. 기억력이 감퇴한 채 요양기관에서 살아가는 노인이 개성을 거세당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두 세계에 따라 역사적 현실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마크의 청혼을 받는 1949년까지 소설의 무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역사와 일치한다. 그러나 마크와의 결혼 여부를 선택한 이후 갈라지는 세계별로 역사도 다르게 전개된다. 
각 세계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하다. 팻이 살아가는 세계는 폭력과 죽음, 질병이 횡횡하는 곳이지만 비와의 아름다운 사랑이 깃들어 있다. 트리샤의 개인적인 삶은 불행하고 소소했지만, 그녀가 살아간 세계는 전쟁과 폭력보다는 평화와 번영이 돋보이는 곳이다. 
그녀는 양쪽 세계에서 모두 반전평화행진에 참가한다. 또 싹터가는 여성인권운동에도 눈을 뜬다. 어느 한 쪽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산다. 그만큼 우리가 거치는 모든 선택이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평화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내가 내린 선택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로운 것만이 아닌 보다 더 큰 선에 복무할 수 있는 일들 역시 고려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각 시대별로 여성의 권리와 역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20세기 중반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수많은 여성에게 제한적인 역할을 강요했던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기를 들고 여권을 극적으로 향상시킨 60-70년대의 진보적 여성운동을 곳곳에서 다룬다.
트리샤의 삶은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갇힌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크는 야망과 변덕으로 그녀의 삶을 억압하고 멸시한다. 심지어 가정에서의 역할이나 직업, 성생활까지 모든 통제권을 자신이 장악한다. 트리샤의 삶과 팻의 삶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비를 읽다 보면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반면 팻은 마크의 청혼을 거절한 순간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마크의 야망에 종속당하는 대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추구한다. 또 비를 만나면서부터 사랑에 대해서도 개방적이 된다. 비와 팻은 각자의 경력을 개척해나가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가고 건강한 가족을 꾸리며 동성 부부를 향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운다. 
트리샤는 1960년대 후반 여성해방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마크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힘을 얻는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같은 책을 읽으며 깊이 감동 받고 그동안 자신은 왜 그렇게 많은 것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을까 자책한다. 이후 성인을 대상으로 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아들 더그의 선물로 자동차가 생기면서부터 트리샤의 삶은 점점 더 독립적이 된다. 이후 마크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페미니즘 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달 그와의 이혼을 마무리 짓는다.




저자 소개

조 월튼 Jo Walton

조 월튼은 1964년에 웨일스의 아베르다레, 커논 골짜기에서 태어났고, 1979년에 모리와 같은 나이였다. 모리처럼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오스웨스트리의 기숙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는 편집성 조현병 환자였고, 자매는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사망했다. (하지만 작가는 장애에 대한 부분들은 전적으로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여러 경험과 살던 곳들을 재구성해 쓰긴 했지만,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은 아니며 모리와 자신은 같은 인물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랭커스터 대학을 다녔고, 런던에서 2년을 살다 다시 랭커스터로 돌아갔다. 1997년 스완지로 이사한 뒤, 2002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2002년 존 W. 캠벨 최고의 신인 작가상을 탔고, 《이빨과 발톱》으로 2004년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받았고, 《반페니》로 2008년 프로메테우스상을 수상하고 람다 문학상의 후보가 되었으며, 《소명》으로는 2010년 미서포익상을 탔다. 《타인들 속에서》는 2011년 네뷸러상과 2012년 휴고상을 수상했고, 세계 판타지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2014년에는 《나의 진짜 아이들》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을 공동수상하는 등 근래 SF 및 판타지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SF 취급을 받는 판타지, 코지 미스터리 스타일의 대체 역사물, 빅토리아 감성이지만 드래곤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내용의 소설 등 여러 장르의 가장자리에 교묘히 걸쳐있는 소설 쓰는 것을 좋아하며, 《타인들 속에서》는 그런 면에서 판타지 회고록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2001년 에밋 오브라이언과 재혼했고, 알렉산더 월튼이라는 아들이 있다




추천사

“좋은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기본적인 표현으로 그 운명까지 보여준다. 대부분 소설이 이를 한 번 해낼 때 [나의 진짜 아이들]은 두 번 해낸다.”
- 레브 그로스먼

“[나의 진짜 아이들]에 푹 빠져보시길. 조 월튼의 소설은 정체성과 기억에 관한 실존적 해석이다. 눈물 조심.”
- [그라치아]

“어떤 감상에도 빠지지 않고 슬픔에 깃든 달콤함을 그려내는 현명한 책이다. 슬픈 책을 쓰기란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읽는 이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으면서도 이성과 감정의 온도를 높여준다. 조 월튼은 원래 뛰어난 작가이지만 높아진 기준으로 봐도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다.”
- 코리 닥터로우

“조 월튼의 [나의 진짜 아이들]은 단언컨대 훌륭하다. 찰나에 내린 결정이 시간을 갈라놓는 이야기로 대단한 흡입력, 진한 뭉클함을 지녔다. 패트리샤 코완이 청혼을 받는 순간 그녀의 세계는 두 가지로 나뉘어 흘러간다. 청혼을 받아들인 삶과 청혼을 거절한 삶.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녀는 두 세월을 모두 기억한다. 각각의 삶에는 각각의 비극과 기쁨, 놀라움이 숨어 있다(세계 역사가 달리 흘러가는 점도 놀랍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경이로운 소설이다.”
- [인디펜던트]

“노인 패트리샤는 치매가 깊어가는 혼란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 월튼 특유의 힘과 아름다움으로 표현된 이야기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대체역사물의 요소가 점점 강해지지만, 궁극적으로 독자를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매력적인 주인공의 복잡성이다.”
- [뉴욕타임스]

“[나의 진짜 아이들]에는 깜짝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놀라운 일이 연달아 어지럽게 펼쳐진다. 일단 시작하면 좀처럼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저녁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한 대도.”
- 제인 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