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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과 흑사병': 조 월튼의 '둠즈데이북' 리뷰

아작 리뷰/45-46 둠즈데이북

by arzak 2018. 2. 1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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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과 흑사병: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북》 서평


조 월튼



《둠즈데이북》(1992)은 코니 윌리스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서, 모든 게 제대로 된 책이다. 나는 처음 출판되었을 때 이 책을 읽었고, 영국판 페이퍼백이 나오자마자 또 읽었고, 그 후로도 읽고 또 읽었다. 주로 책 속 배경처럼 크리스마스에 읽었다. 


이 책은 전염병과 역사와 ‘카리타스(caritas)’에 관한 이야기다. 2054년의 유행성 독감과 1348년의 흑사병, 두 가지 시간대의 두 가지 전염병이 등장한다. 주인공 키브린이 과거의 잘못된 시간대로 가 갇혀버리고 그곳에 적응하며 사람들을 돕고 교훈을 배우는 동안, 미래 사람들은 키브린을 걱정한다. 두 시대가 번갈아 진행되다가 결말에 이르러 하나로 만나는 구성이다. 등장인물 모두 제 역할을 하며 가슴 아픈 일을 겪는 모습은, 수차례 읽고 또 읽어도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하는 흡입력을 발휘한다.


이제 책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인데, 꽤 과도한 스포일러가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흔히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희극으로, 《둠즈데이북》을 비극으로 분류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희극, 비극, 역사물, ‘문제작’으로 나누는데, 《둠즈데이북》은 역사물 혹은 문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슬픈 장면도 있고 재미있는 장면도 있으며 무수한 사람이 죽지만 주인공들은 살아남아 결국 성공을 거둔다. 결말은 완벽하게 흡족한 ‘유카타스트로피(eucatastrophe, 재앙 끝에 찾아오는 행복)’이다. 두 가지 전염병이 등장하므로 ‘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여길 수도 있고, 구성 측면에서 보면 독감과 흑사병은 분명히 ‘적대자’이지만 사실은 ‘인간은 교훈을 배운다’는 이야기다.


코니 윌리스는, 이야기 속 미래에서는 곧장 독감이 유행하는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과거에서는 키브린과 독자가 과거 사람들을 이해하고 걱정하게 된 다음에야 실수를 깨닫고 흑사병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전체 이야기를 구성했다. 우리는 키브린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로즈먼드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남자와 약혼하게 된 것을 걱정하고, 거윈이 엘로이즈를 몹시 사랑하며, 이메인 부인은 쩨쩨한 속물에 불평을 일삼는 사람이라는 사실 등 과거 사람들의 실제 삶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과거 사람들의 죽음의 행렬이 시작되기 전에 그들이 키브린에게 베푼 친절을 목격하고 세세한 삶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키브린과 함께 우리도 그들의 죽음을 견딘다. 이 책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목은 키브린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흑사병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마을 사람의 3분의 1 혹은 거의 절반이 죽을 거라고 예측하고 죽음의 수를 세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이런 식의 통계적 사고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코니 윌리스는 독자들이 통계도 현실임을 똑똑히 깨닫기를 바란다. 책 전반에 걸쳐 통계와 확률은 끊임없이 조롱당한다. 키브린은 역사란 현실이며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모든 시대를 통틀어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개인임을 똑똑히 배운다.


나는 책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카리타스’라는 라틴어를 썼다. ‘자선’이나 ‘사랑’이라는 일반적인 번역어 대신 굳이 ‘카리타스’라는 말을 쓴 것은 두 개의 영어 단어가 가지는 구체적인 의미 모두 코니 윌리스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선’이란 조직이나 단체에 돈을 준다는 뜻이 너무 강해서 다른 의미가 끼어들 틈이 없다. ‘사랑’이라는 단어 역시 로맨스가 아닌 다른 사랑에 대해 말할 때 ‘모성애’처럼 굳이 다른 말을 동원해 구분해야 할 만큼 흔히 로맨스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코니 윌리스는 로맨스를 완전히 배제하고 모성애 역시 매우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사랑하는 관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키브린은 보통 사람, 평범한 여성이다. 꽤 전형적인 코니 윌리스 표 인물로 괴짜에 용감무쌍하며 열심히 일하고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과거로 가겠다고 결심하고, 도착 후 일단 독감에서 회복되자 몹시 기뻐한다. 과거로 간 키브린은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자신이 떠나온 미래를 생각하고 두고 온 선생님들을 생각한다. 또 신을 생각한다. 그녀는 로맨스의 파트너는 생각하지 않고 부모가 한 명 이상 있을 텐데도 부모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돌보는 와중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중세를 공부하는 학생으로만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키브린을 남들과 쉽게 구별할 수 있고, 3인칭으로뿐만 아니라 그녀의 보고서를 통해 1인칭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키브린을 통해 사랑이 깃든 우정과 가장 흔치 않은 사랑의 형태를 목격한다. 그것은 타인의 아이를 향한 어른의 사랑이다. 《둠즈데이북》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이 사랑은 사실 다른 문학작품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다. 키브린은 로즈먼드와 아그네스를 사랑하고, 던워디 교수는 키브린과 콜린을 사랑한다. 여기에 로맨스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심지어 흔히 볼 수 있는 부모의 대리인도 없으며 아이들조차 천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아이들은 매우 특징적이며 현실적이다. 아그네스는 징징대고 로즈먼드는 잘난 척하며 콜린은 연신 사탕을 빨며 권위를 무시한다. 이렇게 예쁜 구석이 없는 아이들을 어른들은 사랑하고 독자들도 함께 그들을 아끼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캐릭터 중 하나인 메리 아렌스는 조카의 아들인 콜린을 사랑한다. 솔직히 이모할머니, 고모할머니는 고사하고 이모나 고모도 순전히 조롱의 대상으로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 얼마나 되는가? 아렌스는 비혼에 나이 든 여성이면서 전문직 종사자이고 가족과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소설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캐릭터다. 물론 아렌스도 죽는다. 아렌스는 의사이고 조카의 아들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해 전염병이 창궐하는 와중에도 그들을 보살피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친다. 이 대목에서 키브린과 대조되는데, 키브린은 주위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살아남고 아렌스는 거의 모든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죽는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성인(聖人)의 면모를 보여준다. 키브린이 미래에서 도착하는 모습을 목격한 로슈 신부는, 키브린이 신이 보낸 성인이라고 믿고 키브린이 열이 나고 죽어가면서도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자신의 생각을 확신한다. 소설 속 관점으로 보면 로슈 신부의 생각이 영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키브린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인간임이 분명하지만, 실제로 성인처럼 행동하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낸다. 그러나 바드리가 열이 나서 시간 여행에 실수가 일어나 키브린을 과거로 보낸 것이 실제로 신의 뜻이었다면, 신은 키브린이 사람들이 위엄 있게 죽을 수 있게 거들고 스스로 교훈을 깨칠 수 있도록 과거로 보냈을 것이다. 미래에서 아렌스가 한 일, 과거에서 키브린이 한 일을 통해 어쩌면 우리는 신의 사랑과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이편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신정론(神正論, 악의 존재를 신의 섭리로 보는 이론)에 관한 치 떨리는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등장인물이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 읽을 때는 특별한 면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배경이 크리스마스이고 이날 영국인이 교회에 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니까. 그러나 던워디와 키브린, 아렌스 등 근미래의 인물들이 모두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가장 먼저 독감에 걸린 시간 여행 기술자 바드리 차우두리는 구체적으로 ‘영국 성공회’ 신자라고 나온다. 종교개혁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영국인들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므로, 근미래의 등장인물 중 누구라도 교회에 다닌다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일이지만 사람들 전부 교회에 다니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분명 사회적 변화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백 년 전 사람들은 모두 교회에 다녔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이 쓰인 때(1992년)로부터 60년 후의 모습이 확실히 어떠할 거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다른 중심인물로 미래의 주인공 던워디가 있다. 던워디는 성 말고 이름으로는 제대로 언급되지도 않는다. 비혼의 역사학 교수이고 누구와도 낭만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던워디에겐 친한 친구와 학생들, 동료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역사와 시간 여행에 관심이 많다. 그는 몹시 위험하다는 이유로 키브린이 14세기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선의를 품고 끊임없이 키브린을 걱정한다. 우리는 친구들과 학생들을 향한 던워디의 사랑을 목격하고 마치 신과 예수의 관계처럼 그와 키브린이 맺는 관계를 지켜본다. 예수는 키브린의 또 다른 자아다. 실제로 키브린은 열이 나자 던워디를 향해 기도한다. 던워디는 관료제도에 학대당하는 부랑아 콜린을 집에 들이는 나이 든 어른이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결국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핀치라는 능력 있는 비서를 곁에 두고 있다. 던워디는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곳곳에 등장한다. 


키브린이 독자들이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라면, 던워디는 걱정 많고 참견 좋아하는 아버지 같은 성격에다가, 무능하고 참을성도 없으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치의 친절을 베푸느라 늘 너무 벅찬,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이 책의 모든 것은 키브린이나 던워디의 시선을 통해 보인다.


던워디와 아렌스처럼 부모의 역할을 하는 인물도 있지만, 진짜 부모를 대표하는 인물은 무관심한 콜린의 엄마와 과잉보호하는 윌리엄 개드슨의 엄마다. 콜린의 엄마인 아렌스의 조카 디어드리는 크리스마스에 아들을 집 밖으로 내보낸다. 미국처럼 추수감사절이 없어 영국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유일한 시간인 크리스마스에 ‘새 애인’과 함께 있으려고 어린 아들을 내보낸 것이다. 콜린은 엄마의 사랑의 증거로 선물을 기다리지만 아렌스는 지난번에도 크리스마스 12일 후인 공현 축일까지 선물이 오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한다(그러니까 크리스마스에 어린 콜린을 내보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 디어드리는 이모인 아렌스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고 던워디도 아파서 콜린 혼자서 아렌스의 장례를 치른다. 심지어 전염병 격리조치가 해제된 후에도 콜린을 데리러 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끔찍한 엄마다. 


이와 반대편 극단에 있는 사람이 개드슨 부인이다. 그녀는 디킨스 작품 속에 등장할 것처럼 몹시 섬뜩하고 과장된 인물로 병원 환자들에게 우울한 성경 구절을 읽어주는, 지옥에서 온 것 같은 과잉보호형 엄마다. 옥스퍼드에 온 것도 남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악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이토록 부당한 그녀의 행동은 악의에서 나온 게 아니라(코니 윌리스 소설에서 진정한 악의를 가진 인물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천성일 뿐이다. 개드슨 부인의 아들 윌리엄은 오직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게 목표다. 어쩌면 그녀는 태만한 디어드리보다 훨씬 더 나쁜 엄마일지도 모른다. 


1348년 이메인 부인은 며느리와 손주들을 거의 돌보지 않고 블로에 경과 그의 가족을 부르지만, 흑사병에 걸린 사제 때문에 모두 감염되고 만다. 또 이메인 부인은 끊임없이 불평한다. 엘로이즈는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매일 받는 상처 때문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그녀는 가족 가운데 가장 나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야기 내내 모성애가 형편없이 묘사되는 한편, 로맨스는 훨씬 더 형편없다. 로맨스를 벌이는 유일한 예는 윌리엄 개드슨이다. 옥스퍼드 여학생 절반이 그를 사랑하고 그와 결혼할 계획을 세우는 모습은 일종의 농담으로 작용한다. 윌리엄은 던워디가 무엇을 요구하든 언제나 유능한 여자 기술자와 간호사를 찾아낸다. 여자들은 서로에 대해 모르고 절대 눈치도 못 챈다. 어머니를 속이는 데 익숙해진 윌리엄에게 옥스퍼드 여학생의 절반을 속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계속해서 바뀌는 윌리엄의 여자들을 제외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낭만적인 사랑은 오직 엘로이즈를 향한 거윈의 짝사랑뿐이다. 그나마 엘로이즈는 그 짝사랑을 이용해 자신의 남편을 데려오라고 거윈을 보내고, 거윈은 결국 돌아오지 못한다. 마흔이 넘은 중년의 블로에 경은 열세 살 로즈먼드와 약혼하는데, 로즈먼드도 키브린도 모두 이를 끔찍한 일로 여긴다.


또 금욕적인 학계도 등장한다. 금욕은 여기서 의무사항은 아니다. 옥스퍼드 교수는 꽤 오랫동안 결혼이 허락되었다. 1992년 이전 여성교수도 결혼이 가능했다. 그러나 소설에서 미국에서 온 고고학자 루페 몬토야를 제외하고 여성교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 속에 학계가 등장하고 이들이 전부 독신인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다.


1348년의 로슈 신부에게 금욕은 의무이고 실제로 금욕을 지킨다. 그는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모두를 좋게 생각하고 모두에게 잘해준다. 로슈 신부는 키브린이 녹음기에 대고 말하는 방식으로, 신에게 말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책에서 가장 성인에 가까운 인물이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데,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그를 도와주라고 신이 그에게 키브린을 보내준 것일지도 모른다. 


책 전체에서 여러 각도로 목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카리타스, 사심 없는 사랑, 인간을 향한 사랑, 친구와 타인의 아이를 향한 사랑이다. 로슈 신부도 아렌스도 카리타스를 보여주었고 키브린은 그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코니 윌리스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주제에 관해 말했다. 물론 역사도 많이 등장하고 역사 속 인물들의 현실도 잘 드러나 있다. 아, 그리고 전화기도 있고 놓쳐버리고 엇나가버린 메시지도 있다. 콜린은 집배원이 선물을 가져다주길 기다리고, 던워디는 베이싱엄 학과장과 앤드루스에게 전화하려고 애쓰며, 몬토야는 베이싱엄 학과장과 던워디와 국민신탁 직원들에게 전화하려고 애쓴다. 또 이 책에 진짜 ‘적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과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중세로 가는 길을 열고 키브린을 보내버린 길크리스트와 래티머는 잘못했지만, 여기에 악의는 없었다. 키브린을 의심하는 이메인 부인이 갈등을 야기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진짜 폭력이나 악당은 없다. 적대자는 자연(흑사병)이고 무지이고 오해이다. 심지어 길크리스트가 네트를 닫는 일도 재앙이 아니다. 처음에는 바드리가 예방을 위해 한 일로 보이니까. 


종도 하나의 모티프로 등장한다. 디지털 카리용, 거리의 쇼핑객을 향해 울리는 종소리, 종지기를 찾아가는 일, 그들이 울리고 싶어 하는 커다란 종소리, 죽은 자를 위해 울리는 조종까지 곳곳에 종소리가 등장한다. 


2054년에 통화대기 서비스나 자동응답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 1348년의 도로가 제설이 되는 점 등 《둠즈데이북》 곳곳의 실수를 지적하기는 쉽지만, 그건 정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을 쏘는 것과 같은 행위다. 한마디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에는 ‘진정한 정서적 무게’가 담겨 있기에 그런 식의 지적은 사소한 흠잡기에 불과하다. 키브린이 배우기는 했지만, 막상 접해보니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언어를 제대로 알아들은 점, 콜린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고 과거로 아스피린을 가지고 간 점 등 소소한 실수들을 지적하기도 역시 쉽다.


하지만 앞서 말한 주제와 구성이 하나로 합해져서, 굉장히 읽기 좋고 특별한, 코니 윌리스가 탄생했다. 나는 아마도 평생 이 책을 또 집어 들고 읽으며 즐길 것이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조 월튼

2002년 존 W. 켐벨 최고 신인 작가상을 받았고, 2004년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2012년에는 《타인들 속에서》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15년 《나의 진짜 아이들》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을 받기도 했다. 영국 웨일스 출신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다.


번역 이주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옮긴 책으로 조 월튼의 《나의 진짜 아이들》, 코니 윌리스의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외에도 《멜랑콜리의 묘약》, 《온 여름을 이 하루에》, 《초콜릿 레볼루션》, 《프랑스 아이처럼》, 《양육 쇼크》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