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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리뷰/47 사소한 자비

라드츠 3부작과 인류 최초의 인공지능 함선에 대한 단상

안녕하세요, 아작입니다.


이번에 라드츠 3부작을 읽으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신 분 계신가요.


아르고 호 말이죠.


인공지능은 영어로 Artifical Intelligence죠. 해당 사물의 본래 특성과 별개로 인공적으로 부여된 지능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부여된 방식이 과학이냐 마법이냐는 중요하지 않지요.


아르고 호는 이아손이 동료들과 함께 황금 양털을 찾으러 가는 모험을 떠나기 위해 만들어진 배입니다.

천재 공학자인 아르고스가 공들여 설계한 이 배의 선수는 도도네 숲의 성스러운 떡갈나무로 만들어졌지요.

아테나 여신은 이 선수에 특별한 능력을 부여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위험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죠.

아르고 호는 승무원에게 미리 경고를 전하고 함께 대화하며 각종 위험이 도사린 바다를 헤쳐 나갔습니다.


어쩌면 아르고 호는 인류 최초의 인공지능 함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가 라드츠 3부작을 읽으며 처음 떠오른 거였습니다.


라드츠 3부작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이아손의 최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르고 호 원정의 지도자였죠. 그는 황금 양털을 찾았고, 여러 인물의 도움으로 다양한 모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권력을 얻었으며 다시 모든 걸 잃어버린 뒤 초라한 인간으로 전락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모든 걸 잃고 절망한 이아손은 여기저기를 떠돌다 어떤 해변에서 부서져가는 배의 잔해를 발견합니다.

그 배는 아르고 호였지요. 이아손은 지나간 삶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어 배의 잔해에 기대어 앉습니다.

그때 배의 선수가 이아손의 머리 위로 떨어져 그를 죽입니다. 


누가 배의 선수를 그의 위로 떨어뜨렸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 범인은 헤라 여신이라고 추측합니다.

이아손이 첫 번째 아내인 메데이아를 배신했기 때문에 헤라 여신의 분노를 샀을 거라고요.


글쎄요. 저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연이나 운명이 그냥 때가 되어 그를 거두어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라드츠 3부작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아르고 호는 배의 지도자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이아손이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일어설 수도 없는 상태로 자신의 곁에 돌아왔을 때, 아르고 호는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 뿐이라는 걸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고통을 끝내주는 거죠.

사람들은 그렇게 해 왔습니다. 친구, 동료 또는 그에 준하는 생물을 죽였죠. 그들에게 남은 게 고통으로써의 삶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을 때요.

저는 아르고 호가 사랑 또는 우정의 마지막 형태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이의 머리 위로 자기자신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낙하는 만남입니다. 접촉이죠. 아르고 호의 선수와 이아손은 아주 오랜만에 서로를 만집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죽음입니다. 그를 지옥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합하는 개념은 아마도 사랑 뿐이지 않을까, 그랬습니다.


굳이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옥은 고통의 강도가 아니라 그 끝없는 지속성으로 인해 권위를 얻는다는 걸요.

절망을 돌이킬 수 없다고 믿게 될 때, 남은 모든 미래를 밝히는 불이 꺼졌을 때,

그 투명할 정도로 시커먼 시간은 영원히 펼쳐진 것처럼 보이지요.


여기서부터는 아마도 장 아메리를 떠올려야겠지요. 그의 책 '자유죽음'은 자살에 대한 책이지만

아마도 오로지 사랑에 기인한 타살 역시 그 범주 어딘가에 속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이아손과 아르고 호가 마지막 순간에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음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 침묵은 어쩌면 아주 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