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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책방

너를 위해서 ,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수록작

 

“당신의 아이입니다. 감회가 어떠세요?”

 

솔직히 말해서 손가락으로 눌러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쥐었다는 느낌조차 없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둥그런 어항같이 생긴 인공자궁에 똬리를 튼, 쌀알처럼 아주 작은 자신의 ‘씨’를 바라봤다. 출입할 때 큐레이터가 준 돋보기를 들었다. 6주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3등신의 새끼 새우 같았다. 거기까지 제멋대로의 상상을 마치고 그는 손가락 마디에 느껴지는 가짜 감각을 없애기 위해 바지춤에 손을 문질렀다. 본능에 가까웠던 끔찍한 생각을 한편으로 치우자 곧 황홀하기 이룰 데 없는 행복감으로 빠졌다. 그에게도 드디어 아이가 생겼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콧잔등에 흐른 땀을 훔치고는 큐레이터를 바라봤다.

 

“무, 무척 아름답습니다. 정말 예쁘네요.”

 

전날 밤 그는 아이를 볼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 아이라니!’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몹시 뛰어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청심환을 까먹어야 했다. 그는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태아 보호자 권리심사’를 통과했고 그 후로도 꾸준히 건강한 정자인지 검사받기 20년, 드디어 그에게도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5년만 늦었더라도 그는 나이 탓에 자격 요건에서 완전히 밀려날 뻔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이를 가지려고 20년간 담배나 술 따위는 입술에도 대지 않았다. 혹여나 적성검사에서 탈락할까 봐 매일 아침 클래식 음악을 듣고 교양프로그램을 시청했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필수적으로 전시회를 구경했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남자만이 아버지가 될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아주 예전에는 이런 절차 없이도 누구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고 들었다. 좋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무분별한 시절이기도 했겠지만. 그때의 모든 남자는 노력 없이 아버지가 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겼을까? 그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똑같이 아이를 가진 어머니를 만나 4인 가족을 꾸릴 것이다. 가족형태의 상위 1퍼센트 귀족가족을 꾸릴 날이 머지않았다. 두 아이가 성인이 되면 사회로 내보내고 자신은 아내와 둘이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노후를 보낼 거였다.

 

큐레이터는 그와 함께 무장한 경호원 두 명을 대동하고 인큐베이터실을 지나 더 안쪽으로 안내했다. 두 경호원이 신경 쓰였지만, 곧 미래의 희망을 품고 있는 곳인만큼 이 정도의 경계는 유난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큐레이터는 창이 없는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했다. 한쪽 벽면은 스크린으로 되어 있었다. 취조실처럼 창 하나 없었으며 방 가운데에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분위기가 스산했다. 그가 자리에 앉았다. 큐레이터가 맞은편에 앉았고 경호원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섰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유전자로 태아가 무사히 착상된 것을요.”

 

그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환기되지 못한 갑갑한 공기 탓인지 아니면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이마와 콧잔등에 또 땀이 맺혔다. 그가 손수건을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손은 텅 빈 바지 주머니만 배회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상대 유전자 주인의 정보는 일절 드릴 수 없습니다. 10개월 뒤 태아가 ‘출산’되면 그달에 함께 출산된 아이의 어머니와 가정을 꾸리게 될 겁니다. 통상적인 절차는 그렇습니다만…….”

 

큐레이터가 말을 줄였다. 스크린 화면으로 그의 자식, 아니 아직 자식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배아의 사진을 열었다.

“당신의 유전내력을 돌려본 결과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경우가 98퍼센트였습니다. 착상 후 배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당신의 아이는 서른에 심장마비로 죽을 확률이 80퍼센트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서른에 죽는다는 사실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큐레이터가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당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서약서에 서명한 자료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더 나이 들기 전에 보관한다면 30년 후 당신의 아이에게 기증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걸 수 있다는 서약을…….”

 

“아, 아니! 잠시만요!”

 

그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일어섰다. 그의 행동을 본 두 경호원이 총구를 들었다. 저들이 자신을 이 방 밖으로 살려서 내보낼 생각이 없다는 걸 그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큐레이터의 말대로라면 그는 ‘저 아이’를 위해 지금 자신의 심장을 기증해 건강한 상태에서 보관해두어야 한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으나 가로막힌 방이었다. 큐레이터가 웃으며 나긋하게 말했다.

 

“이게 다 당신의 아이를 위해서예요. 저 아이를 보세요. 살아 숨 쉬는 이 작은 생명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가 고개를 돌렸다. 스크린에는 작은 쌀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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