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리틀 브라더>의 주인공들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출범한 행정조직인 국토안보부(DH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주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한국 사회에서 국토안보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은 무엇일까 궁금할 수 있겠는데요. 사실 그 답은 뻔하죠. 국가정보원(NIS,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입니다.
그런데 이름만 두고 봐도 국가정보원은 국토안보부와는 좀 다른 기관으로 보이죠? 우리에겐 국토안보부란 기관이 생소할 만큼, 미국에는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여러 기관이 있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CIA나 FBI 같은 기관은 물론이거니와, 얼마 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국제사회의 문제가 되었던 NSA와 같은 기관도 있으니까요.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국가안전보장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립된 정보기관입니다. 직제나 기능으로 보자면 이 CIA가 한국의 국정원과 가장 흡사한 기관이죠. 실제로 국정원은 과거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란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는 ‘KCIA’를 영어 약칭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CIA만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죠. 미국 연방수사국인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도 정보업무를 담당하고,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인 NSA(National Security Agency, 미국 국가안전보장국)와도 협력관계에 있죠. 정보수집활동에는 스파이 등을 사용하는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와 최첨단 장비를 사용하여 신호를 포착하는 '시진트(SIGINT: signal intelligence)가 있는데, CIA는 전자를 구사하고 NSA는 후자를 구사한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도청이 문제가 됐겠죠? 또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 미국 국방정보국)란 단체도 있는데요. 한국에서 이 이니셜로 검색하면 걸그룹이 뜹니다.
미국에 이처럼 복수의 정보기관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큰 나라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정보업무를 하는 만큼 업무량이 훨씬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업무량이 문제라면 단일조직의 규모를 키우는 방법도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미국에 복수의 정보기관이 있는 이유는 정보기관 끼리의 상호견제를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보기관은 특성상 조직구성과 활동내용을 대중에게 공개하기가 어려우니 민주적 통제에 어려움이 있겠죠? 이런 상황에서 정보기관이 분리되어 있으면 ‘감시자’들에게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거겠죠.
‘가재는 게 편’이라는데, 그런다고 얼마나 서로를 잘 감시할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런 종류의 상호견제도 생략한 조직이 어떻게 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국정원이 아닐까 싶어요. 정보기관이 단일조직이니 미행하다가 들켜도 수치스러워 하지 않고, 인터넷에 댓글 다는 것을 대북심리전이라 칭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민주적 통제는커녕 사법적 통제에도 어려움이 있어요. 최근 나온 기사를 인용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검찰의 사건 처리 속도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배당되자 마자 빠른 속도로 사건을 처리하고, 반대로 특별한 이유없이 수년 씩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현재 검찰이 처리를 늦추고 오랜 기간 쥐고 있는 사건 중 상당수가 바로 국가정보원과 관련된 사건들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후 검찰이 유독 국정원 관련 사건에 늑장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檢 좌익효수 2년째 시간끌기...오히려 "원세훈 재판 고려" 당당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를 쓴 국정원 직원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3년 7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윤석열 팀장)이 국정원 직원으로 의심되는 좌익효수의 글을 찾아내면서 부터이다. 2011년 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3460여개의 글을 올렸는데 내용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이었다.
전라도를 일방적으로 비하하며 "뒈지게 패야된당께 홍어종자들", "전라디언", "씨족을 멸해야 한다"는 등의 비방을 퍼부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북한의 심리전에 넘어간 광주인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문재인 의원을 '문죄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X숭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X대중'이라고 표현하고 조롱하는 등 원색적인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좌익효수는 아프리카TV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망치부인' 이경선씨와 초등학생 딸에 대한 성적 폭언을 해 그해 10월 모욕 혐의 등으로 고소당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김신 부장검사)에 사건이 배당된지 2년이 흘렀지만, 검찰은 좌익효수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해 6월 피고발인 신분으로 좌익효수를 소환 조사한 것이 전부일 뿐, 가장 기초적인 신원 확인도 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좌익효수 사건은 수사중이다. 국정원 직원인지도 확인해줄 수 없다.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검찰이 사건 처리를 늦추는 사이, 이경선씨가 제기한 국가 상대 민사소송은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패소했다.
좌익효수는 현재 국정원에 소속돼 정상 근무중인 것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신경민의원에 따르면, 좌익효수는 한 때 대기발령 상태였다가 원래 근무하던 대공수사국으로 복귀했다.
국정원 대선개입이라는 민감한 이슈에 대한 검찰의 의도적인 시간끌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도 이런 속내를 굳이 감추지는 않았다.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1일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좌익효수)사건 내용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내용과 비슷한 구조로 보여서 그 내용을 지켜보겠단 취지로 지금까지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 때문에 사건 처리를 일부러 미루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발언이다.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좌익효수가 국정원에 정상 근무중이라는 사실이 모두 드러난 마당에 검찰이 최소한의 신원파악 조차 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절망스럽다"고 지적했다. (...)
한국 사회에서 국정원은 정보기관일 뿐만 아니라 미국 국토안보부가 수행하는 대테러기능도 전담하고 있죠.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의 테러 위험이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국정원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려 한다면, 적어도 미국 사회에서 그렇듯이 유관업무 기관을 복수로 나누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리틀 브라더>의 ‘주적’인 생소한 이름의 국토안보부가 살짝 부럽기도 한 이유입니다.
SF 장르 전문 출판사 <아작>의 첫번째 책은 코리 닥터로우의 대표작 <리틀 브라더>이다. 2008년에 나온 <리틀 브라더>는 미국 사회의 관점에서는 ‘근미래 SF’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1984년》의 ‘빅브라더’를 본딴 책 제목부터가 그 사실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국토안보부는 특정 소수에 대해 불법적 인신구속과 고문을 자행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해선 광범위한 인터넷 검열과 정보기기를 활용한 사생활 정보 수집 그리고 수집된 정보를 활용한 불심검문 등을 시행한다. 테러 직후 국토안보부에 억류됐다 풀려난 소년은 ‘특정 소수’로서 그들에 대해 분노하고 ‘불특정 다수’의 권익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일은 꼬여만 가는데... 마커스와 그 친구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긴장감 넘치면서도 통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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