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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책방/80 일본심판

일본심판: 책 소개, 작가 소개, 출판사 리뷰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가 알려주는 교훈"
한국 최초 장편 SF 『완전사회』의 작가 문윤성의 정치스릴러 SF

 

“우리는 멋지게 일을 치러야 하네.
세계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로 말이야.”

나의 이름은 김기식. 42명의 일본격파 결사대는 전우들과 함께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42명으로 일본을 점령한다니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 내 몇 군데의 가장 기능이 예민하고 긴요한 요처들을 장악하여 1억 인구의 모든 일본인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할 것이다. 일본 내각 전원을 전범자로 체포, 구금하고 전범자들을 공개적으로 국제법에 어긋남이 없는 공정한 재판절차를 밟게 할 것이다. 피고는 물론 구금상태에 있는 일본 각료 전원이다…

 

 

 

 

저자 소개

 

문윤성 (文允成)

 

본명은 김종안(金鐘安). 1916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지금의 경복고등학교의 전신인 경성제2고보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하고,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공사장, 광산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소설과 시를 썼다. 독학으로 설계와 배관을 익혀 뒤에 ‘대승기업사’라는 공조회사를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1946년 단편 「뺨」을 『신천지』에 발표하였으나 문단 활동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51세가 되던 1965년 [주간한국]의 제1회 추리소설 공모전에 『완전사회』로 당선, 1967년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본격 SF 장편소설로 평가받으며, 당시 기성 문단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1985년, 일본 나카소네 수상의 한일수교 20주년 기자회견 방송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쓰기 시작한 것이 소설 『일본심판』이다. 이 작품에는 그의 날카로운 역사관과 장쾌한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한국추리작가협회의 초창기 멤버로도 활발히 참여하며 ‘추리소설의 과학화’를 늘 주장했는데, 탄탄한 과학적 설계를 바탕으로 「덴버에서 생긴 일」, 「하우로드의 두 번째 죽음」, 「붕운동 회상」, 「전원 랩소디」 등 많은 단편을 발표했다. 장편소설로 『일본심판』, 『사슬을 끊고』가 있으며, 희곡 『상속자』와 장편 서사시『박꽃』을 내기도 했다. 2000년 8월 24일 수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출판사 리뷰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가 알려주는 교훈

이 소설은 1967년 한국 최초의 장편 SF 『완전사회』를 쓴 문윤성 작가가 20년 만인 1987년에 쓴 정치 스파이 스릴러입니다. 당시는 일본인들을 ‘경제동물’이라고도 불렀던 시절로, 버블 경제 시절의 일본이 지향하는 방향을 강제로 변경시키려는 초국가적 무력단체(혹은 테러리스트)의 활동을 그립니다. 여러 국적으로 구성된 특공대가 현지에 잠입해 단시간에 일본의 주요 시설에 타격을 가하면서 협박하고, 정부 고위 인물을 납치해서 UN 사무총장 출신의 중립적인 인물에게 국제 재판을 받게 할 요량이죠. 그렇게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과거를 재조명하고, (특히 한국을 예로 들었을 때) 착취에 가까운 일본의 편파적인 무역 시스템을 강제로라도 조정하고, 이를 통해 일본을 기존의 강대국과는 다른 새로운 사고관을 가진 21세기형 국가로 교정하려는 목적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방식을 지향하게 될 일본은 아시아의 중견 혹은 약소국들을 서구의 강대국과는 다르게 대할 것이고, 그를 통해 동아시아가 21세기의 새로운 세계 정치 질서를 보여줄 수도 있게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테러는 복수가 아닙니다.

소설 내에서도 이런 발상은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과거에 일본이 추구하던 대동아공영과 다름없지 않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누군가가 미래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과거에 대한 사과와 보상이 있다는 가정하에) 그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비롯해 작가의 정치관이 그대로 전사되는 듯한 부분이 『일본심판』의 중심을 이룹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신념을 갖고 어떤 미래를 기대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 작가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고 있죠. 여하한 민족주의도, 지배욕을 용인하던 강대국의 독주도, 그를 견제하기 위해 창설된 UN도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연대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은 80년대 아시아의 현실과 지속적으로 부딪힙니다. 당시의 국제 관계를 소설을 통해 새로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과 한국과 북한 사이의 기묘한 상호 견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조총련과 민단은 서로 척을 지고 의심하면서도 일본이 압박해 오면 잠시 힘을 합하기도 하고, 일본 역시 북한 및 그 뒤에 있는 소련 때문에 계속 눈치를 보고, 미국은 일본이 처한 곤경을 어디까지 돕고 그걸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고심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 이상하리만치 잘 보이지 않는데, 완결이 나지 않은 이 소설이 마저 보여주려던 부분이 아마 한국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혹은 80년대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다루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요).

온갖 과거로 불가분 서로 얽매인 채 새로운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복잡한 현실을, 작가는 어떻게 풀어가려 했을까요? 완결되지 못한 『일본심판』이 멈춰버린 지점은 어쩌면 절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테러리즘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러나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 작은 시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잊혔던 『일본심판』이 과감하게 상상했던 정치적 개선 역시 실제로 벌어진 많은 사건들처럼 그렇게 잊혔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수십 년 전을 다루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부분들 중에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테러에 대한 배후로 북한과 한국을 지목하고 자경단이 재일교포들에게 테러를 가하는데, 작가는 관동대지진과도 이어지는 이 린치 행위의 심리적 기반이 '자신들이 착취와 폭력을 가했던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날카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심리적 공포는 현대에는 다국적 이민 노동자들에게 투사되고 있으며, 한국도 이러한 두려움에 노출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작가가 바꾸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지점들이 오히려 확산된 것이죠.

그래서 지금, 21세기에 『일본심판』을 다시 읽는 경험은 특별한 감흥을 안겨 줍니다. 현실이 이대로여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미래가 더 어두워질 거라고 경고하던 혁명가들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자존감은 더 낮아지고, 어딘가에 속해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 시대에는 내가 속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집단을 찾아 헤매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더 강력한 집단은 더 강력한 적과 맞서고(없으면 만들어냅니다), 그 증오가 또 하나의 힘이 됩니다. 이 소설 속에서 노자를 언급하는 일본인 아나키스트는 조금 외로워 보이는데, 어쩌면 그와 같이 어딘가에 속하려 하지 않는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좀처럼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예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초국가 정치 행동 단체인 ‘세계평화유지기구’는 조금 무모한 이상주의자들처럼 보입니다. 바뀌기에는 너무 크고 강력한 힘 앞에서 작은 시위를 하는 것뿐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떤 시도는 뭔가를 남기게 됩니다. 그게 크지는 않더라도 말이죠. 이 소설에 두 번 등장하는 실제 역사 속 사례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에게 입양되어 크리스천이 되고, 권력자의 요구를 거절해 외딴 섬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조선 출신의 성녀 줄리아입니다(모리 노리코가 이에 대해 쓴 책 『성녀 줄리아』는 1983년에 홍성사가 펴냈었죠). 권력에 조용히 대항함으로써 자존할 수 있었던 인간의 사례를 작가가 크게 다룬 이유가 있겠지요. 무엇을 얻었느냐보다 무엇을 하려고 했느냐는 마음, 그 마음 자체가 하나의 획득이고, 세상은 그만큼 조금 달라졌다는 뜻이 아닐까요. 더 많은 두려움과 그에 기반한 증오가 싹트는 시대에, 사라진 과거 속에서 나타난 소설 『일본심판』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