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작 미디어

(27)
[칼럼 SF 완전사회. 5] 탐욕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박해울 코로나19의 유행이 계속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1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식당에서의 식사를 자제하고 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용기가 쌓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고 보면 배달 음식의 포장 용기뿐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 시절 이전에 구매했던 가전제품이나 문구류, 옷들도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리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우리는 5분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각각의 물건을 만드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도, 제품을 가공하면서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도, 바다와 대지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척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어..
[칼럼 SF 완전사회. 4]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사악한 생각, 강현 "이거 사람 고기네요." Q 세상에서 가장 윤리적인 고기는? A. 배양육이지. Q. 배양육이 더 윤리적이려면? A. 세포기증자에게 허락받은 배양육이면 돼. Q. 그게 뭔데? A. 사람 배양육! 네? 심너울의 에 실린 단편 의 내용은 시작부터 경악스럽다. 잠깐 멈춰서 반박하려고 하다가 멍해진다. 그 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살해도 아니고, 상해도 아니고, 고통도 없고,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모두가 만족한다. 기증자가 자발적이기까지 하다. 아니 근데 진짜 누가 그걸 먹어요. 근데 그걸 다들 먹는 세상을 뻔뻔스럽게 전개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황당함은 가시고 납득 되기 시작한다. 같은 책에 수록된 단편들도 유쾌하다. 그리고 경악스럽다.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선 눈알을 굴리며 우..
[칼럼 SF 완전사회. 3] 변곡점에 서서, 심너울 변곡점에 서서 초등학교에서부터 SF 창작을 조기교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매년 과학의 날이 오면 학교에서 과학 상상 경진 대회를 치렀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중 가장 괜찮은 것을 만든 아이들이 뽑혀서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나는 2년 동안 문화상품권을 받아서 메이플 스토리에 탕진했는데, 어쩌면 그 기억이 남아서 지금도 SF 스토리텔링으로 먹고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2005년 당시에 내가 미래를 예측하고 쓴 글은 대단히 희망적이었다. 20년쯤 지나면 달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화성에 정착지가 세워지고 하늘에 차가 날아다닐 거라고 확신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희망찬 확신 중 실현된 건 단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미래는 반드시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유지했다. 그..
[칼럼 SF 완전사회. 2] 바로 지금 멋지게 해야 할 일, 이산화 바로 지금 멋지게 해야 할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본명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의 단편 은 언제 읽어도 매혹적이지만, 요즘처럼 전염병 재난을 피해 집구석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어야 할 때는 더더욱 꺼내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우주여행이 보편화되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이 소설은 통제 불가능한 외계 기생생물 포자가 야기할 재난을 막아내기 위해 힘을 합치는 두 모험가의 고군분투와 우정을 그린다. 물론 소수의 영웅이 위협적인 전염병 문제를 한순간에 깔끔히 해결한다는 내용만으론 어쩐지 얄팍한 현실도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현실에선 그런 소수의 영웅들이 지쳐 쓰러진 뒤로도 최소한 몇 년 동안은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와 불편한 공존을 지속해야 할 모양이니 말이다. 하..
[칼럼 SF 완전사회. 1] 세상을 구하는 자는 누구인가, 박해울 삶이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질 때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왜 사는가와 같이 거창한 질문을 두고 상념에 빠져 있다가, 별안간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사고나 재해를 만나면 그 순간 삶이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산다는 건 거창하지 않고 허무한 일이며, 사람은 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에게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세월호 참사가 그런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2020년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을 맞고 있다. 다른 대륙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과 가족들의 건강이 괜찮은지 걱정하고, 매일 착용할 마스크의 수급에 대해 서로 물으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1월이나 2월에는 “코로나 잠잠해지면 보자”는 말을 몇 주 정도만 하게 될 줄 알았다. 곧 감염의 걱정..
21세기 SF의 초신성, 앤 레키 서면 인터뷰! 21세기 SF의 초신성, 앤 레키 서면 인터뷰 1. 애 둘을 낳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소설을 태동하게 한 건 가정주부로서의 지루함이었나?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작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렇게 할 만한 시간이나 머릿속의 여유 공간이 남아 있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절대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아이들과 함께(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럽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을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집에 있는 것은 생각보다 정신을 많이 빼앗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제야 내게 이야깃거리들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시간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 소일거리가 필요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2. 여러 장르 중에 왜 하필 SF소설을 택한 것인가? -처음..
로스엔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의 라드츠 3부작 리뷰 로스엔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라드츠 3부작 리뷰입니다 원문 링크: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an-empire-divided/ *일부 내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갈라진 제국 그레이엄 J. 머피 SF 장르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길고 풍부한 역사를 이루었지만, 일정 정도의 인정과 존중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 몇십 년 사이이다. 데이비드 G. 하트웰과 캐서린 크래머가 《스페이스 오페라 르네상스》(2007) 서문에 썼듯이, 별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 하위 장르는 ‘1980년대에 동시대 SF에 관한 진지한 담화에 재진입’했고, 그때 이후로 작가들은 ‘상업적 측면과 문학적 측면 모두에서 야심 찬 SF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중의 야심이 온갖 상을 휩..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사소한 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2018. 1. 10 우주제국에서 볼리우드 뮤지컬 감상? 이런 시대착오가! (..) 라드츠 제국을 무대로 하는 두 번째 소설 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서스펜스 넘치는 액션물이었던 전편 와는 전혀 다른 책이다.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진다. 한 때 거대 함선의 인공지능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하나의 몸을 가진 사람이 된 주인공 브렉은 이제 함장이 되었다. 절대군주 아난더 미아나이의 정신이 분열되자 라드츠 제국은 내전에 휩싸였다. 하지만 브렉이 오온 대위의 여동생이 있는 행성 아소엑의 우주정거장에 파견되면서 우주전쟁의 이야기는 일단 정지한다. 협주곡의 느린 2악장 같달까. 액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격적인 전쟁 이야기를 계속 보려면 3편인 를 읽어야 한다. 대신 소설은 라드츠 제국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