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를 맞이한 ‘2022 문윤성 SF 문학상’ 공모전에서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과 ‘내 뒤편의 북소리’가 대상작에 선정됐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흡인력 있는 글솜씨, SF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최고 영예를 안았다.
문윤성 SF 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22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중단편 부문 대상에 김원우 작가의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이신주 작가의 ‘내 뒤편의 북소리’를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장편·중단편 우수상은 유진상 작가의 ‘조선 사이보그전’, 백사혜 작가의 ‘궤적잇기’가 각각 선정됐다. 중단편 가작은 육선민(사어들의 세계)·존 프럼(신의 소스코드)·이경(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작가에게 돌아갔다.
장편 대상작인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아이돌 출신의 자몽 연구학자인 주인공 ‘나영’이 광화문 광장에 나타난 외계인의 정체를 탐구하는 연구단에 합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라마 ‘스타트렉’ 시리즈와 코니 윌리스의 소설 등 여러 SF 걸작을 오마주해서 장르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인류를 되돌아보게 하는 속 깊은 유머와 재치있는 대사로 호평을 받았다.
김원우 작가는 올해 9년차 회사원으로, 글을 봐주는 친구의 권유로 문학상에 공모했다. 주중에는 회사 근무 때문에 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해서 주말에 집필했으며, 공모작은 4년여에 결쳐 완성했다.
김 작가는 “책이 나와서 손에 잡혀야 실감이 날 것 같다”며 “대단한 일이 벌어졌는데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단편 대상작 ‘내 뒤편의 북소리’는 인류 멸망 이후 지구를 탐사하러 온 외계인이 지구 멸망의 원인을 밝혀 내는 이야기로, 독창적 전개가 눈길을 끈다.
이신주 작가는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에 이어 2022 문윤성 SF 문학상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며 SF문학계에 주목받는 신예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전업 작가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글쓰기는 계속 이어 갈 계획이라는 소감을 담담하게 남겼다.
심사위원장직을 맡은 김초엽 작가는 “최종 본심에서 수상작으로 결정된 작품은 보석을 발견한 듯한 즐거움을 줬다”며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도입부, 이어지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전환과 더불어 다채롭고 생생한 인물들의 등장 등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끌었다”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인류를 되돌아보게 하는, 냉소적이지만 온기를 잃지 않는 시선은 더욱 폭넓은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다혜 작가는 “내 뒤편의 북소리는 SF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더해 독창적 전개와 뒷맛이 특이한 결말이 인상적”이라며 “SF적으로 보이는 몇몇 설정이 필연적으로 겹치는 응모작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으며, 이신주 작가가 출품한 중단편이 여럿 본심에 오른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더 기대된다”고 평했다.
전자신문 주최, 아작 주관, 알라딘·문윤성기념사업회·리디·쇼박스 후원의 ‘2022 문윤성 SF 문학상’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6개월간 작품을 공모했다. 이후 2개월 동안 예심과 본심을 통해 장편 115편, 중단편 320편의 응모작 가운데 대상을 선정했다. 심사에는 김초엽·문목하·이경희·이다혜·이서영·홍지운 작가와 민규동 영화감독이 참여했다.
문윤성 SF 문학상은 1965년 국내 최초 장편 SF 소설 ‘완전사회’를 발표해 문단에 충격을 던진 고(故) 문윤성 작가를 기려 제정됐다. 장편, 중단편 대상 수상작에 각각 3000만원, 1000만원 등 총 61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수상 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깝게 수상을 놓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운이 좋았습니다. 언젠간 그 작품들을 읽어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심사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짧은 심사평에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앞으로 여러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가능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렙니다. 무엇보다 그 점이 가장 기쁩니다. 한국 SF의 아름다운 계보에 작게나마 어울리게 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그에 비해 부족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계속 써보라는 응원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2. 장편 부문 우수상, 유진상 《조선 사이보그전》
수상소감: 처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오늘을 열심히 살고 더 나은 내가 된다면 글도 잘 써질 거로 생각했다. 매일 치열하게 살아왔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의 목표도 만족시키지 못했고 어영부영 살아왔다. 꿈이나, 열정이나 그런 것들이 동력이었다면 도중에 포기했을 것 같다. 다만 나는 글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장 친한 친구로 여겨왔다. 그 친구와는 종일 같이 있어도 지겹지 않았고 피로해지지도 않았다. 문학은 내 인생을 참 즐겁게 해주었다. 이 소설은 내가 느낀 즐거움을 남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다. 부모님, 친구들, 동료들. 내가 이룬 성과를 내 일처럼 기뻐해 주셔서 감사하고 감사하다.
3. 중단편 부문 대상, 이신주, 〈내 뒤편의 북소리〉
수상 소감: 글을 쓰다 보면 징검돌을 놓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눈이 안 보이는. 그래서 내가 방금 놓은 돌이 떠내려갔는지, 아니면 어떻게 잘 안착하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다가 이제 도저히 같은 자리에만 있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겅중 내 징검돌이 있을 법한 자리로 뛰어보았습니다. 다행히 단단한 바닥과 만났네요. 이곳에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눈 가리고 던져댄 징검돌들은 아직 이곳저곳에 있고, 또 어쩌면 지금 있는 이 바닥도 생각보다 널찍하고 쾌적한 곳일지 모릅니다. 그럼에 지금 이 순간의 성취를 최대한으로 붙잡고 즐기며 다시금 훌훌 뛸 수 있는 힘을 얻을까 합니다. 미련한 징검돌지기의 바닥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4. 중단편 부문 우수상, 백사혜, 〈궤적 잇기〉
수상 소감: 제가 쓴 소설을 뜻 있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동화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우리와 사는 세계와 경계가 흐릿하면서도 확실하게 맞닿아 있어서, 행복하게만은 끝나지 않는 소설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의도를 가진 요소들을 많이 넣었었는데, 전부 써내리고 보니 어떤 명확한 메시지를 함축했다기보다는, ‘이런 종류의 사랑이 있었다.’ 라는 단편이 된 것 같습니다. 사랑의 틀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 가치관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물리적인 환경도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는 그 생각이 일부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5. 중단편 부문 가작, 육선민, 〈사어들의 세계〉
수상 소감: 글에 붙어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 써왔습니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그런 하루들이 모여서 여전히 소설을 씁니다. 그만할까 싶다가도 묻어둔 이야기들을 돌이켜보며 다음 공모전까지만 써보자 다짐하며 느리게 나아갔습니다. 저의 다음을 응원해주고 함께 글을 놓지 않은 하옥단문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항상 믿어주었던 남자친구도,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던 제게 좋아하는 글을 찾으라는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신 교수님, 선생님들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대뜸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일찍 집을 나가버린 어린 저를, 묵묵히 응원해주고 지켜봐준 엄마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여봅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 얻은 첫 수상에 감격스러우면서도 계속해서 나아가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6. 중단편 부문 가작, 존 프럼, 〈신의 소스코드〉
수상 소감: 멋진 SF 작품들을 활발히 소개하는 곳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실과는 크게 상관없는 철학적인 측면이 강한 주제의 소설이라 수상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런 종류의 소설도 너그럽게 포용해 주신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문학상 수상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전쟁으로 고통받는 지역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7. 중단편 부문 가작, 이경,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수상 소감: 수상을 알리는 메일이 밤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그 메일을 다음 날 아침에 확인했고, 세상 시무룩하게 잠들었다가 가장 기쁘게 일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 야간열차를 타고 있었던 기분입니다. 일어나보니 어제와 조금 다른 풍경이 슬쩍 끼어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떨떨하게 여행을 떠나게 된 설렘과 두려움, 즐거움이 혼란스럽게 몰려와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님께 가장 먼저 감사드려야 이치에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첫 독자가 되어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저를 응원해준 가족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창가 자리에 꼭 붙어 앉아 가야겠습니다. 언젠가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 서서 저도 이 기차를 향해 손 흔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본심 심사평>
올해 제2회 문윤성 SF 문학상에는 중단편 부문이 새롭게 신설되었다. 중단편은 세계에 중점을 두는 SF의 매력을 한껏 살릴 수 있는 분량인 만큼 완성도 높고 개성 있는 작품들이 많이 출품되었다. 응모작 대부분 고르게 뛰어났으며 아이디어와 설정, 세계의 독창성 등 SF의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특징들을 계승한 작품과 현대적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담은 작품이 골고루 포진해 있어, 한국 SF의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단편 부문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은 대상과 우수상을 어렵지 않게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대상작 「내 뒤편의 북소리」는 재치있는 설정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 매력적인 결말을 모두 갖추었다. 특히 SF만이 줄 수 있는 기이한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개성적인 작품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수상 수상작인 「궤적 잇기」는 새로운 세계를 통해 지금 현실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SF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가작 논의 과정에서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는데, 본심에 올라온 다수의 작품이 수상작품집에 실린다고 해도 크게 이견 없을 만큼 고른 완성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성도를 비교하기보다 여러 작품 중 눈에 띄는 고유한 매력과 독창성을 지녔는지를 주목했다. 가작 선정작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는 경쾌한 전개와 매끄러운 문장으로 단숨에 독자를 결말까지 이끄는 한편 그 안에 묵직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사어들의 세계」는 차분하고 건조한 분위기에 잠식되는 느낌을 주는 소설로, 주요 설정과 마지막의 주제가 잘 맞물리며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신의 소스코드」는 여러 인물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형식과 다른 세계를 종횡무진 오가는 이야기가 잘 어울렸고, 긴 분량인데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하지는 못했지만 「2035 배달 로봇 연쇄 실종 사건」은 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독창적으로 변주한, 특히 인물들 사이 주고받는 대사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반려견, 두 번 산다」 역시 무난해 보이는 소재를 택했지만 전개될수록 독특한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다.
장편 부문 응모작은 전반적으로 중단편 부문에 비해 인공지능과 로봇 소재로 쏠려있는 현상이 강했고, 완성도 면에서도 아쉬운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최종 본심에서 수상작으로 결정된 두 작품은 보석을 발견한 듯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었다.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도입부, 이어지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전환과 더불어 다채롭고 생생한 인물들의 등장 등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스타트렉’과 코니 윌리스의 소설 등 기존 SF를 떠오르게 하는 오마주로 장르 팬들의 즐거움을 더해줄 장면이 특히 많지만, 인류를 되돌아보게 하는 냉소적이지만 온기를 잃지 않는 시선은 더욱 폭넓은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조선 사이보그전』은 설정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캐릭터 구성이 뛰어났던 작품으로,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전개가 좋았다. 인물의 과거나 미래 등 여러 방향으로 확장될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 김초엽, 소설가
제2회 문윤성 SF 문학상은 장편에 이어 중단편 부문에서도 수상작을 발표한다. 기쁘고도 당연하게도, 한국 SF의 트렌드를 짚는 시간이기도, 창작자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근심에 동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학과 비과학의 문제를 A.I.나 로봇 등의 설정과 연계해 풀어내는 작품이나, 역사 혹은 고전을 SF식으로 재해석하는 이야기가 여럿 눈에 띈 해이기도 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일 수도 있겠으나, 사랑 혹은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 역시 본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심사를 하면서 재미와 새로움에 대한 숙고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눈에 매력적이고 다른 매체로도 제작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와 SF 소설로서 매혹적인 이야기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SF 소설로서의 완성도와 창의성이 높은 작품이 결국 더 많은 독자를, 나아가 다른 매체로 재해석될 기회를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장편 대상을 받은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SF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팝콘을 튀겨 옆에 두고 읽어야 할 듯한 소설이다. 코니 윌리스에 오마주를 바치는 설정과 전개, 속 깊은 유머, 사소할 수 있는 설정을 묵직하게 빚어내는 작가의 글솜씨와 재치있는 대사가 두루 호평을 받았다. 장편 우수상을 받은 『조선 사이보그전』은 역사와 SF를, 비과학과 과학을 교차시키는 시도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중단편 대상을 수상한 「내 뒤편의 북소리」는 SF 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더해, 독창적인 전개와 뒷맛 특이한 결말이 인상적이다. ‘SF적’으로 보이는 몇몇 설정이 필연적으로 겹치는 응모작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대상작을 결정한 뒤, 같은 작가가 출품한 중단편 여러 작품이 본심에 올랐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작가가 쓸 작품들을 기대한다. 중단편 우수상을 수상한 「궤적 잇기」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SF 특유의 방식으로 애상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중단편 가작 중에서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는 유머러스한 제목처럼 산뜻한 작품이다. 「사어들의 세계」와 「신의 소스코드」는 작가가 가진 미래의 가능성을 이번 작품들만큼이나 높이 샀다.
― 이다혜, 「씨네21」 기자, 작가
작년보다 훨씬 많은 응모작이 있었기에 심사하는 마음이 즐거우면서도 무거웠다. 일견 다양해진 듯하면서도 어떤 쏠림이 읽히기도 했다. 다행히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이 여지없이 나타났고, 중단편의 실험성과 다채로움은 장편의 에너지에 뒤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꽁냥꽁냥한 잡식성 주인공이 (미국이 아니고) 서울에서 태연하게 맞이하는 스타트렉의 파편들이 넘치고 시종 흥미롭고 유쾌하다. 『조선 사이보그전』을 보자면, 문학 기술의 발전 단계상 여태껏 타임슬립이 대체로 현대 안에서 머물러왔지만 드디어 조선시대라는 새로운 개척지를 향한 과감한 도전이 넘쳐나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다.
「내 뒤편의 북소리」는 지구의 시점이 아니라 우주의 시점을 탐해보듯,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의 시점을 취해보는 신선함이 인상적이었다. 「궤적 잇기」는 소설만이 걸어가볼 수 있는 감각적인 산책길을 돌아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고,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는 솔직히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이미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을 다룬 「사어들의 세계」는 절멸된 세상에서 혹시 새 생명이 태어난다면, 그건 꽃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신의 소스코드」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대화로 풀어낸 전위적인 형식을 갖춘 기이한 연극 무대를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 민규동, 영화감독
<예심 심사평>
『휴먼의 근사치』는 유실된 과거의 영상을 복원하여 보관하는 태깅하우스와 이드라는 설정이 재미있고, 침수된 세계의 분위기가 잘 느껴졌다. 그러나 결국은 인공지능 이야기이고, 인공지능 소재에서 나올 수 있는 무언가 새로운 걸 이끌어내지는 못해서 아쉬움을 남겼다.
『1549』는 여성과 남성 성별을 후천적으로 결정하는, 49세에 수명을 중단할 수 있는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두 개의 이야기다. 개성있는 문체가 눈에 띄고 디테일을 잘 채워서 읽는 재미가 있다. 다만 설정이 본문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각주를 통해 전달되고, 대사 구분이 전혀 안 되어 있어 가독성이 떨어졌다.
「2035 배달 로봇 연쇄 실종 사건」는 '로봇이 인간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무리해서 반복하는 대신, '왜 우리는 로봇에게 마음을 줄까' 생각하게 만드는 산뜻한 소설이어서 좋았다. SF 장르적인 성격은 강하지 않고, 흔한 소재인데도 확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대사 센스가 뛰어났다.
「궤적 잇기」는 담백하고 좋은 글이다. 구조, 설정, 전개 방식 모두 마음에 들었다. 결말의 전형성(이성 연인의 모습이 굳이 반복재현되는)이 살짝 아쉬웠지만, 외계 행성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켄 리우의 단편을 읽는 느낌이다.
「Re: 우르수스 행성 대족장 취임 20주년 기념 선물에 대해서」는 클래식한 SF, 스타트렉의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너무 많은 설정이 짧은 분량에 압축되어 전달되는 아쉬움이 약간 있었다.
― 김초엽, 소설가
「스페이스 DJ」는 브레인 스캐닝, AI, 다른 물성의 인간 존재 등 흔한 소재를 다루지만 읽는이를 지겹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주역 캐릭터들은 합이 좋고 부담스럽지 않다. 글의 시작과 결말이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균형잡힌 것이 좋았다.
「사어들의 세계」는 주제와 메시지가 일관적이고 안정적이다. ‘사라지게 만들어진 것’, ‘사라져가는 것’, ‘사라진 것’을 동일선상에 놓는 은유가 아름답다. 수치화되지 못한 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단지 존재하기만 해도 어떤 작은 세상의 수치를 결코 0으로 만들 수 없다고 억지스럽지 않게 주장한다.
― 문목하, 소설가
『노디렉션홈』은 열패감에 쌓인 추리 소설가 지망생이 겪는 창작과 일상의 충돌을 가상현실 서비스의 메타픽션 형식으로 엮어내며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게 기묘한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상대적으로 가독성 높은 안정적인 글쓰기가 돋보인다.
응모작에는 많은 로봇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댄싱 머신 코린」은 그중에서도 로봇에 예체능을 연결시키는 컨셉으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나 코니 윌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경쾌하면서도 디테일한 스타일의 이야기 전개가 돋보였다.
「무성애자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티브를 품은 근미래 바이러스 재난 이야기로서, 한국 사회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젠더 문제를 황당한 역병으로 풍자해내는 현실감각이 꽤 재미있다.
「반려견, 두 번 산다」는 ‘엄청난 돈을 상속받은 반려견이 복제동물이라면?’이라는 화두로, 근미래에 펼쳐질 만한 생명 복제의 문제를 집요하게 풀어보고 있다. 실제로 개 잡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 칼럼니스트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세팅으로 인간세계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속을 둘러싼 막장 싸움의 한가운데로 독자를 초대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 민규동, 영화감독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읽는 일은 독자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일으킬 정도로 긴 여정이다. 결말까지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눈을 붙잡아두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이라 생각한다. 『아날로그 세계의 영웅과 기억의 끝』은 두 개의 파트를 교차하는 플롯구조와 세계의 비밀에 관한 기묘한 위화감을 이용해 미스터리의 재미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가는 작품이었다. 힘주어 거창한 메시지를 전하려 들지 않는 점도 좋았다. 그러나 작품의 핵심인 미스터리 플롯이 큰 도약이나 반전 없이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며 비밀을 지연시킬 뿐이라는 점, 다소 전형적인 캐릭터와 궁금증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는 결말부 등의 아쉬움도 있었다.
「영혼을 부탁해」는 영혼에 물성을 부여해 인간 사회의 감정적 측면을 은유하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었다. 다만 설정의 뾰족함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SF에서 이러한 설정을 외삽하는 이유는 현실의 새로운 일면을 비틀어 날카롭게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상적으로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논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아쉬웠다. 예심에서 읽은 작품 중 내면 묘사가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영원한 것을 동경해서」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띄는 작품이지만, 특색 없이 무결한 작품보다는 미완이더라도 뚜렷한 개성이 낫다는 생각으로 선정했다. 서사와 캐릭터의 결함은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면 보완할 수 있는 문제로 보았다. 은하계 규모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시도한 작가의 도전에 응원을 보내며, 최종 선정되지 않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악다구니」는 도입부에서 물음을 던지고 결말에서 답을 맞춰보는, SF 장르의 고전적인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할란 앨리슨을 연상시키는 집요하고 선연한 묘사가 좋았다. 시작 지점의 궁금증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며 미스터리를 끌고가는 방식이 탁월하다. 거칠지만 에너지로 충만한 작품이다.
― 이경희, 소설가
『종착역』은 나름의 반전을 가진 스릴러를 접목하는 시도를 높이 샀다. 이번에 밀리터리나 형사물로 분류될 만한 작품들도 좀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아쉬웠다.
『그리고 다른 세상이 있었다』는 분량이 다소 길기는 한데 도입부가 좋고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이번 응모작 중에는 종교와 신화를 역사와 접목시킨 작품들이 꽤 보였고, 이 작품 역시 약간 판타지풍이다.
「노보(露保) 윤종부전」은 로봇이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사람들과 지내는 이야기인데,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 두루 신박한 매력이 있었다. 와중에 윤종부(로봇)의 후손 이름 갑생인 것도 아주 당대의 문화를 잘 반영해 재미있었다.
「남극성의 오른쪽으로 뛰어라」는 제목이 무척 좋았다. 약간 심심한 듯 전개되지만 읽는 재미는 있다.
「꿈의 효율」은 다소 허무개그 같기도 블랙코미디 같기도 한 소설인데, 분량을 좀 줄이면서 수정하면 좋을 듯하다. 꿈을 판매할 수 있게 된 세상에 대한 이야기.
― 이다혜, 「씨네21」 기자, 작가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굉장히 소품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가서 소품이 아니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소품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이 긴 이야기를 거침없이 끌고간 필력도 훌륭하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을 끄트머리에 연결해서 마무리 짓는 솜씨도 좋았다.
『조선 사이보그전』은 사이보그의 존재가 조선에 떨어졌을 때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녹아드는지를 매력적으로 묘사했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에 로봇3원칙을 적용시킨 점이 특히 재미있었고, 중간 중간 유머를 놓지 않은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렇게까지 살아가야 하나』는 가상현실에 완벽하게 적응한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가상현실과 현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다뤘다. 주인공의 욕망이 분명하고 캐릭터가 생생하다. 설정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 와중에 액션씬이 훌륭하다.
『저니 투 천축』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서유기 이야기다. 불교의 여러 맥락들은 SF로 변주되어온 바가 많은데, 이 소설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 불교적이면서 동시에 SF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제천대성의 팬이라면 더 매력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장례지도사」는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름다움에 무릎을 치게 된다. ‘식스센스’ 같은 작품이지만, 거기에 무리없이 SF가 끼어든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업로딩하는 마인드 업로딩 작품은 많지만, 두 가지 기억이 상충하는/협력하는 이야기를 볼 수 있다니 굉장히 매력적이다. 「저장」은 과학기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룬다는 SF의 본령에 충실한 작품이다.
「정서 회로」는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기계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역으로 적용시켜서 감정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했다.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결말이 열려 있는 점도 좋았다.
「우리를 위한 최후의 기우제」는 고전적인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아름답게 뒤섞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신적인’ 것들이 과학기술의 외피를 쓰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짜릿함이 있다.
「신의 소스코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아주 현실감 있게 묘사해냈다. 여러 사람의 말을 인용한 형식은 좀 산만하긴 한데, 캐릭터와 설정이 매력적이어서 그런 부분들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 이서영, 소설가
『핸드메이드』는 폐기된 로봇들의 섬을 배경으로 로봇과 인간 사이의 교류를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와 함께 이어나간다. 소설에서 다루기 어려운 액션을 자연스럽게 녹아낸 점도 높이 평가했다. 건조하면서도 온기는 잃지 않는 태도 또한 장점이다.
『파로의 집』은 유튜브와 감정인식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인 소재들을 섬세하게 다룬다. 이야기의 테마와 사건이 파편적으로 전개되지만 매력적인 분위기가 인상 깊다. 차분한 문장과 안정적인 감정선도 높이 평가했다.
『필사자』는 모든 것을 필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모전에 어울리는 소재나 완성도는 아닐지 모르겠으나,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흥미로운 세계관을 풀어낸 작품이라고 판단하여 본심으로 추천한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는 영유아용 가전 시장의 자체 개발 인공지능 ‘엔젤’과 관련한 소동극으로, 강렬한 제목부터 유쾌한 인물들의 티키타카까지 상업성과 완성도 양측에서 높이 평가하였다.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어깨에 힘을 넣지 않고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점 역시 작가의 역량이 엿보였다.
「치안복지부 유진 언니」는 시간여행자의 윤리와 타임패러독스에 대한 단편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딘가 귀여우면서도 다정한 느낌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소름 돋는 방향으로 사건이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타임패러독스의 클리셰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예측가능한 한도 내에서 여운이 남는 엔딩을 만드는 기술적인 역량이 돋보였다.
― 홍지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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