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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도시' : 출판사 서평

아작 리뷰/02 이중도시

by arzak 2015. 11. 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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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출판사 서평


독서의 포만감을 가득 안겨줄 검증된 명품 소설, 이중도시


소설이 시작되면 독자들은 생소한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에 맞닥트린다.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 살인 사건이다. 도시의 이름은 베셀이며 사건을 맡은 사람은 강력범죄 전담반 소속 티어도어 볼루 경위다. 인물도 공간도 이질적이다. 독자들은 소설을 보면서 이 공간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읽다보면 유럽의 어딘가로 생각되고, 동부유럽 어딘가 일지 모르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독자들은 볼루 경위 등 등장인물들이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안 보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종종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소설의 주제와 큰 관련이 있을 거라는 예감을 받는다. 도시는 하나가 아니다. 베셀과 함께, 울코마란 이름의 도시가 더 있다. 두 도시는 비록 구역이 적당히 구분되기는 하지만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며, 통치권력의 관념과 국민들의 습속 속에서만 나뉘어져 있다. 구역만 나뉘어져 있을 뿐 별다른 장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두 도시가 둘다 적당한 통제국가이기 때문이다. 베셀은 1960년대 유신 이전 남한식 민주주의 국가 정도로 보이고, 베셀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울코마는 통일 이전 동독 수준의 전체주의 국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베셀과 울코마의 사이에 침범국이란 기관이 하나 더 있다. 이 기관은 두 국가 사이에서 두 국가의 담을 넘는 사람을 ‘침범’이란 이름으로 처단하는 기관이다. 이 세 개의 미묘한 권력관계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살아가며, 이 권력관계 속에서 사건에 대한 수사는 진행된다. 


두 개의 체제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관념과 습속으로만 나뉘어질 수 있다는 상상은 대단히 환상적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출발하자마자 살인사건을 통해 미스터리이면서 느와르이며, 시공간으로 인해 판타지가 된다. 


분단 상황, 넘어설 수 없는 경계를 가진 한국 독자들에게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 지속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 작가의 서술이다. 《이중도시》의 문체는 매우 아름답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 무언가를 보지 않는다는 것, 무언가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사이 어딘가의 경계에 있는지를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결정하는 것 등의 이 체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활상들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등장인물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읽어야 하는 순간이 오지만, 거듭 읽으면 경탄이 온다. 말이 안 될 것 같은 제약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 군상들의 생생한 모습이 소설 속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볼루 경위는 우리에게 이 미묘한 감각들을 보여주기 위해 도시를 횡단한다. 베셀에서 시작된 사건은 울코마로 넘어가고 울코마로 넘어간 볼루의 시선에서 독자들은 ‘보던 것을 보지 않고, 보지 않던 것을 보는’ 체험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사건의 배후엔 오르시니라는 환상도시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침범국과 오르시니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인다. 흥미롭게도 소설은 사건을 해결하면 할수록 환상적인 요소가 줄어드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소설이 끝나갈 때쯤 우리는 여기에 사는 인간들이 우리와 다를 바가 없으며, 어딘가에는 이런 도시가 실제로 있을 수도 있겠다고 망상하게 된다. 





차이나 미에빌은 기괴한 SF/판타지 작가로 유명한 작가다. 독서를 하면서 독자들은 내내 이 미스터리 느와르 판타지 소설에서 SF의 자리는 어디 있는지 의문을 지니게 될 것이다. 소설 말미에서, 놀랍게도 차이나 미에빌은 환상적인 요소를 거듭 걷어내며 획득한 그 현실성의 한복판에서 SF를 구현한다. 천천히 음미해야 느낄 수 있는 소설에 대한 포만감이 이 지점에서 극에 달한다. 


경계를 넘어, 침범하라!


《이중도시》는 분단 상황, 넘을 수 없는 경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차이나 미에빌은 우화적 해석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소설을 우화로 해독하는 행위는 이야기에서 너무 많은 것을 끌어내려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안에서 너무 적은 걸 읽어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소설의 인간군상들에서 통일지상주의자, 비타협적 운동권, <환단고기> 신봉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비의 힘은 정확한 대응이 아니라 일종의 비끄러짐에서 존재한다. 이 소설의 인간군상들은 굳이 현실세계에 대입하지 않아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차이나 미에빌은 길게 쓰기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이번에는 독자를 위해 자신의 작품치고는 길게 쓰지 않았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독서의 포만감을 고급스럽게 제공하는 이 작가의 매력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다른 터무니없이 긴 소설에 도전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먼저 《이중도시》에서부터 출발하라. 보지 않던 것을 보고, ‘경계’를 넘어서 ‘침범’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