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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마저도' : 출판사 서평

아작 리뷰/04 여왕마저도

by arzak 2016. 1. 2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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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판사 서평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안타깝다, 생리만 빼고…


<여왕마저도>는 코니 윌리스의 휴고상 및 네뷸러상 중단편 수상작 10편을 실은 코니 윌리스 걸작선의 후반부 다섯 편을 번역한 책이다. 전반부 다섯 편은 <화재감시원>으로 먼저 나온 바 있다. 


애초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화재감시원>과 <여왕마저도>를 구별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코니 윌리스 스스로가 배경도 제각각이고 공통의 주제도 없는 본서에 대한 서문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을 정도다.  


본서에 실린 다섯 작품 역시 <화재감시원>에서도 보여줬던 재담과 유머를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나는 외계인이 지구에 실제로 착륙하면 실망스러울 거라고 항상 말해 왔다. (...) 외계인은 A) 우리를 죽이려거나 B) 우리가 사는 행성을 차지해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거나 C)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처럼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하려거나 D) 지구 여성과 섹스하려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괜찮은 사람을 찾기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설마 데이트나 하려고 외계인이 수천 광년을 여행해서 오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지구 여성이 아니라 멧돼지나 실난초, 심지어 에어컨에 오히려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다.”(<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 p23-24)





코니 윌리스의 걸작선에서 보이는 것이 ‘사랑과 죽음, 그리고 농담에 관한 이야기’라는 통찰은 <여왕마저도>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에서도 유효하다. 가령 <영혼은 자신의 사회를 선택한다>를 보면, 전체 소설 내용이 농담처럼 쓰여져 있는데, 그 내용은 죽음을 이겨낸 시인이 화성인을 퇴치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이겨낸 시인’이란 상상은 ‘전승된 문자’를 통해 가능했는데 그 문자에 대한 해석은 하나의 소설이자 농담이 된다. 이는 코니 윌리스가 역사와 사람, 그리고 현실에 대해 애정을 표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랑’에 대한 집착 또한 여전하다.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는 미지의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언어철학적 난리법석을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애에 성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연애에 성공하는지 여부는 심지어 외계인조차 궁금해하는 것이다. <여왕마저도>의 경우 연애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음에도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는 연애를 시작한다. <마블아치에 부는 바람>은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슬픈 연인의 연애담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마지막 위네바고> 역시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코니 윌리스가 애정을 쏟는 것이 무엇인지가 또 다르게 보인다. 코니 윌리스는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상의 시선을 끊임없이 드러내면서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전편의 대표작인 <화재 감시원>에서 ’남아 있는 것‘은 매력적인 세인트 폴 대성당이었고 ’사라져 가는 것‘은 그것을 지켜낸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화재 감시원>에서 조망한 것은 독일군이 런던을 공습하던 2차세계대전, 즉 과거의 시공간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도는 역사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 속에 포섭되었다.


본서의 마지막 소설인 <마지막 위네바고>의 경우 수만 년 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개라는 동물이 멸종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공간에서 ‘위네바고’란 기종의 마지막 캠핑카를 둘러싸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이 소설의 후기에서 코니 윌리스는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잊고 있는 사실은 세상은 언제나 종말이라는 점”이라면서, “멸종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p405)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자신이 그리워하는 온갖 물건들의 목록을 읊은 후 “그리고 곧, 책들도 그리워하게 될까 두렵다”라고 덧붙인다(p406). 


30년 넘게 교회 성가대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본 경험으로 썼다는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나 ‘튜브’라 불리는 런던 지하철이 사실상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마블아치에 부는 바람> 역시 그렇다. 외계인과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어떤 바람을 탐구대상으로 받아들인 두 소설에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익히 잘 아는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튜브에 대해 일상적으로 칭찬과 악담을 함께 퍼붓는다. 그것들 중 일부는 사라져 갈 것이고, 일부는 남아서 당분간은 더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의 힘,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울려 퍼지는 합창은 그 조화로움을 통해 외계인과의 의사소통을 성공하게 한다.  

 

이 ‘애상과 애정의 진자운동’에서 유일하게 벗어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여왕마저도>다. <여왕마저도>는 여성의 생리가 사라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코니 윌리스는 생리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생리 통제’가 가부장제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환경주의적 페미니스트 단체를 등장시키고 그들의 주장을 둘러싼 여성들 사이의 논쟁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단체의 활동가는 사뭇 낭만주의적이고 음모론적으로 ‘생리를 성공적으로 없앤’ 지난 역사를 규탄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생리를 경험했던 나이 든 여성들은 생리라는 신체현상에 대해 거침없이 유죄판결을 내린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여왕마저도>의 세상은 어떤 것을 멸종시키고 다른 어떤 것은 남겨 두면서 진행되는 인류의 문명과 역사가 진보를 이룩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명백한 진보 속에서도 일각에선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라면, 아쉬워 할만한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지금의 이 세상은 인간에게 너무도 버거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코니 윌리스의 소설은 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버거운 인간들을 향해 재담으로 그 애상과 애정을 공급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