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은 한국 SF계의 스타다. 항상 과학적이거나 역사적인 소재들을 본격적으로 작품 안에 녹여내면서 쾌활함과 날카로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는다. 그것도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많은 작품을 쓰는 내내 말이다. 집필의 질과 양 그리고 속도에 있어 곽재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기에 한국 SF계에서는 곽재식 작가에 대한 경의를 담아 한 사람이 작품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곽재식과 비교하는 ‘곽재식 속도’라는 단위계를 농담처럼 사용하기도 한다(1 곽재식 속도는 6개월에 단편 4개를 작업하는 집필 속도를 가리킨다. 단, 곽재식은 본인이 2 곽재식 속도로 집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곽재식은 만물박사이기도 하다. 《한국 괴물 백과》에서 한반도에 전해지는 괴담과 요괴를 수집해서 정리하기도 하였으며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이라는 세균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활용 가능성에 대한 대중교양서를 집필하고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처럼 인공지능에 대한 에세이도 출간한 바 있다.
그런 곽재식의 신간 《ㅁㅇㅇㅅ: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가 출간되었다(이하 <ㅁㅇㅇㅅ> 시리즈). <ㅁㅇㅇㅅ> 시리즈는 곽재식이 2012년부터 집필 중인 연작소설로, 모든 에피소드가 작가의 잡학다식한 만물박사다운 발상과 입담이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우주로 인류문명이 확장된 먼 미래, 이미영 사장과 김양식 이사가 온갖 은하를 가로지르며 좌충우돌하며 항상 그들이 가진 전문적인 특성에 맞지 않고 그들의 사업이 처음에 목적으로 하지 않은 일들만 골라서 저지르는 활극을 다룬다.
미영과 양식의 맨주먹으로 치고받는 듯이 강렬한 티키타카는 고전 외화 시리즈의 혼성 해결사 콤비를 보는 듯하다. <블루문 특급>이나 <엑스파일>의 주인공들이 우주에 나가 (미국 TV 드라마 특유의 로맨틱한 요소는 배제한 채) 서로에 대해 불평하고 갈등하고 때로는 서로를 회유하며 유쾌한 갑론을박을 벌이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흥겹다.
그들이 은하를 모험하며 마주치는 사건들은 온갖 종류의 SF적 질문들을 품고 있다. 새로 발견한 행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생태계 보호를 위해 어떤 지침이 필요할까? 로봇을 대할 때 그들을 인권적으로 대우해야 할까? 인공지능이 판사가 되면 어떤 종류의 꼼수가 가능할까? 페인팅 프로그램의 발전이 예술가들의 작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곽재식이 던지는 이 미래의 화두들은 과거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흥미롭다. 미륵불 신앙을 시간여행에 대한 필요성으로 연결하는 발상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ㅁㅇㅇㅅ> 시리즈는 곧 도래할 미래에 현재가 뒤따라가지 못해 생기리라 예상되는 문제를 과거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닌 게 아니라 미영과 양식이 은하를 떠돌면서 마주하는 갈등은 대부분 전근대적인 시스템이나 사고방식으로 인해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왜곡된 형태로 활용하는 이들로 인한 해프닝이다.
이런 해프닝을 바라보는 곽재식 작가의 시선은 마냥 따스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냉소적이다 못해 공격적으로 다가올 때조차 있다. 이번 단편집의 수록작 중 하나인 <은하수 풍경의 효과적 공유>에서는 아예 컴퓨터 그래픽이 선도하는 미술계의 조류를 따라가지 못해 몰락한 화가가 등장하는데, 미술비평담론에 있어서 한 세기도 전에 마무리된 화두를 반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냉소는 이미 논리적으로 극복된 문제를 재차 반복하는 세상에 대한, 통쾌한 비아냥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가 기묘하게 교차하는 글쓰기는 곽재식만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겠다. 고전 문헌을 찾아가며 한국의 요괴를 백과사전처럼 정리하면서 인공지능에 관한 에세이를 쓰는 동시에 세균에 대한 대중서를 작성하는 등 곽재식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묘기가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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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ㅇㅇㅅ: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의 첫 번째 수록작 <인간적으로 따져보기>는 지능을 갖춘 외계 생명체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변호사 마금희가 어떻게 떼돈을 벌었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지적 생명체의 다양한 가능성과 그 교류 과정에 대해 냉소적으로 살펴보는 이야기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미남들의 행성>은 본인 명의의 은하가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한 갑부가 일생 끝에 내린 결론과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아름다움과 관련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만들고자 했던 행성에서 일어난 사건을 대비하며 진행된다.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은 미영과 양식이 마금희와 지적인 외계 생명체들을 대변하는 보호 협회 회장 사이의 재판을 방청하는 법정극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인공지능 판사가 주관하는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한 편법을 유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비행접시의 지니>는 미영과 양식이 시공초월엔진에 문제가 생긴 외계인의 우주선을 수리해준 대가로 외계인에게 세 가지 소원을 빌게 되는 이야기다. 자아가 어떻게 성립되고 구분되는지에 대해 철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관점에서 고민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미노타우로스의 비전>은 궁예는 미륵 부처가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라를 만드는 사람이 미륵 부처라는 식으로 미륵불 신앙을 혁명 사상으로 재구성한 인물이었다며 설파하던 백만장자가 죽으면서, 그 집의 보안시스템을 설치했던 미영과 양식이 범인을 쫓는 이야기다.
<소원은 세 가지만 빌 수 있다>는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고립된 행성에 가 설문 조사를 하게 된 미영과 양식이 삼국시대와 흡사한 생활양식을 갖춘 원주민들에게 피랍되었다가 간신히 탈출하는 활극이다. 곽재식 특유의 엉망진창 행정시스템에 대한 비꼼으로 가득하다.
<은하수 풍경의 효과적 공유>는 바람이 불지 않아 예술품을 보관하기 좋은 행성의 미술관에서 그림 하나가 도난당해, 미영과 양식이 그 그림을 훔친 화가를 찾아다니는 추적극이다.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르는 미술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다룬다.
<말버릇과 태도의 우아함>은 미영과 양식이 자율학습 행성에서 제작된 최신형 가상현실 장치를 배달하는 이야기다. 교육이 갖는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극단적으로 안전한 교육을 설계했을 때의 아이러니를 날카로운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기계적인 반복 업무>는 미영과 양식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설계된 대로의 인생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사랑의 블랙홀>과 <12:01> 그리고 <리플레이>처럼 타임루프를 다룬 고전영화에 대한 곽재식적 해석이 담겼다.
<16년 후에서 온 시간여행자>는 시간여행을 통해 이 우주에서 살고 있던 모든 생명체에게 자기들이 설계한 천국으로 안내하고자 하는 주식회사 염라대왕과 궁예 재단의 갈등에 미영과 양식이 휘말리며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룬다. 시간여행의 아이러니가 곽재식다운 위트와 발상을 통해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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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곽재식은 더 이상 한국 SF계만의 스타가 아니다. 출판업계에서만 머무르기에는 그의 만물박사 캐릭터성은 너무나도 강렬한 개성이었던 덕이다. 그는 SNS에서 카이스트 재학 당시 학기당 평균 26학점을 들으며(최대 31학점) 전학기 장학금으로 2년 반 만에 조기졸업을 한 경력으로 ‘카이스트 헤르미온느’라 불리고, 크라우드 펀딩 시장에서 《한국 괴물 백과》을 출간하면서 요괴와 괴물 그리고 민담을 정리한 책들이 줄줄이 나오는 붐을 이끌었으며, 유튜브 채널 <과학하고 앉아있네>에서는 ‘추석특집 빌게이츠 편’에서 여섯 시간 동안 입담과 체력을 과시한 바 있다.
거기에 tvN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게스트로 나와 그 캐릭터성을 입증하고 <심야괴담회>의 메인 출연자로 자리매김하였으니, 이제 곽재식은 한국 SF계의 스타를 넘어 한국의 스타로 부르는 것이 보편타당한 호명이 되겠다. 그리고 이제 전국구 스타가 된 곽재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ㅁㅇㅇㅅ: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만한 책이 어디 또 있을까.
- 홍지운, 소설가
[#하이라이트#]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게스트와 MC들... 곽재식 작가님#유퀴즈온더블럭 | YOU QUIZ ON THE BLOCK EP.93 | tvN 210210 방송 보기: https://youtu.be/0ybwTVHalwI
<ㅁㅇㅇㅅ: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 구매하러 가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5009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