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오늘은 왜 이렇게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 거지,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참고로 나는 거의 매일이 그렇다. 일상생활의 작은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동시에 한번 걱정도 한 적 없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일이 어긋나서 골칫거리가 된다. 그러면서 마음속 한편에 갖고 있던 큰 근심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꾸준히 노력하면 잘 될지도 모른다고 품고 있던 꿈에 다가가고 있는 느낌도 아니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아침에 면도를 하다가 베여서 턱에 상처가 났는데, 그러고 나서 출근길 버스를 타려고 카드를 대었더니 카드가 잘 인식이 되지 않아 갑자기 천 원짜리 현금을 구하려고 부산을 떨게 된다. 뛰어다니다 보니 문득 어깻죽지가 아파 오는 것이 느껴지고, 나는 어깨뼈가 좋지 않아 언젠가 큰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몸에 큰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걱정이 휘몰아친다. 그런데 그런 날이라고 해서 내가 최근에 낸 소설책이 잘 팔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상황이 더 좋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2012년쯤에는 더욱 사정이 안 좋았다. 그러고 보니, 2012년이면 벌써 거의 10년 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도 답답한 느낌을 더 묵직하게 만든다.
2012년 무렵, 나는 거의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작가였다. 그런 사람을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보통 신춘문예 같은 행사에서 당선이 되거나 무슨 공모전에서 입상하여 상금을 받으면 등단을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여 그 이후로는 계속 작가라고 불러주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적도 없었다. 내가 기성 문단의 질서를 거부했기 때문에 원고를 투고하지 않았다고 하면 나름대로 멋이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열심히 응모했지만 떨어졌다. 다 떨어졌다. 그런 공모전의 심사평을 읽어보면 “누구누구의 소설도 좋았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지만 아쉽게도 이러저러해서 당선작으로는 다른 소설을 뽑았다” 같은 언급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런 평에 언급되어 본 적도 없다. 그냥 전망이 없는 작가였다.
그나마 어찌어찌 가끔 여러 작가의 단편 소설들을 묶어서 책을 낸다는 기획이 있으면, 가끔 그런 기획에 끼어 10명의 작가가 단편 한 편씩을 서서 내는 책에 한 토막으로 참여하는 정도가 작가로 활동하며 돈을 버는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그나마 2012년 무렵에는 그런 일조차 거진 끊어졌다. 나는 너무 답답해서, 자선 단체 같은 곳에서 내는 책자에 “재능기부로 글을 써주실 분을 찾습니다”라는 공고들을 찾아서 공짜로라도 좋으니 내 글을 실어주면 좋겠다고 연락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나에게 회신을 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뭔가가 무척 쓸모가 없다고 할 때 쓰는 한국어 표현 중에 “거저 줘도 안 가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그 무렵 내 신세였다.
얼마나 절필을 하고 싶었겠는가?
그때에도 세상에 SNS라는 것은 있었다. 나는 SNS에 “재능이란 무엇일까.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문단의 높은 벽과 예술로 살기 어려운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움이 내 의지의 숨통을 갑갑하게 잠식한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글을 써 올리면서 “이제 저는 더 이상은 소설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끝을 맺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친한 사람들 서너 명 정도는 “아, 곽재식님 글 그래도 재미있었는데. 절필하지 마시죠.” 뭐 이런 글을 올리지 않을까, 그러면 위로가 될까, 어떤 기분일까, 뭐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껏 작가로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때 그런 절필 선언을 올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지금도 누가 나에게 작가로 사는 삶이나 글쓰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때 내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절필한다”고 괜히 SNS 같은 곳에서 거창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글을 쓰기 싫으면 그냥 슬며시 안 쓰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글 쓰는 것을 멈추었다가도, 만약 자기가 정말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 글을 쓰면 된다. 어느 날 글 쓰고 싶다는 의지가 갑자기 자발적으로 생기는 그런 좋은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려야 한다. 그런데 만약 쓸데없이 괜히 몇 마디 동정이나 위로를 받고 싶어서 “절필합니다” 같은 글을 그에 앞서 여기저기 올리고 다녔다면, 좋은 때를 만나도 다시 글쓰기 민망해진다. 그러면 글쓰기가 곧 귀찮아지고 싫어진다. 소중한 의욕은 흩어진다.
나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절필한다고 했다가 혹시라도 먼 미래에 또 소설 쓰고 싶어지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만약을 대비해서 겉으로는 말을 안 하고, 대신 그냥 슬며시 소설을 더 이상 안 쓰고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고 불과 며칠이 지나자 그래도 소설을 쓰는 게 더 재미있고 보람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보는 사람도 없고 돈도 안 되는 소설을 써서 어쩐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그냥 생각나는 이야기를 생각나는 그대로 거침없이 바로 소설로 확 써서 부담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단편란에 올려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사연으로 2012년 7월 처음 올리기 시작한 것이 이미영 사장과 김양식 이사라는 사람이 우주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돈 되는 일을 하려고 한다는 소설 시리즈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 시리즈는 소설 쓰기 싫었을 때, 그래도 뭐라도 써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헤매다가, 그러니 뭐든 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이야기다.
이때만 해도, 한국 SF는 뭐가 문제다, 한국 SF는 이렇게 가야 한다, 무슨 SF가 진정한 SF다 등등의 말을 길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좀 많았다. 한국 SF는 하드 SF가 없다거나, 한국 SF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소프트함이 부족하다거나, 한국 SF는 아이디어만 던질 뿐 문학적인 치장이 없다거나, 한국 SF에는 과학적인 통찰력이 없다거나, 한국 SF에는 S는 있지만 F는 없다거나, 한국 SF에는 S는 없고 F만 있다거나, 한국 SF에는 한국이 없다거나, 한국 SF는 너무 한국적이기만 하다거나,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나름대로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그냥 그런 것 저런 것 다 무시하고 가끔 정말 소설 쓰기 싫을 때는, 생각나는 대로 확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마는 SF를 써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독 미영과 양식 이야기 시리즈에는 황당한 내용이 많고, 내용이 흘러가는 방향도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처음부터 계획 없이 쓰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질도 들쭉날쭉하다. 내가 봐도 한심해 보이는 소설도 여러 편이다. 전체적으로 무슨 거대한 구상이 있는 시리즈도 아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편이나, 세 번째 편쯤 되어서 공개하려고 했던, “두 사람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세웠던 목적”이라는 소재는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소설들을 쓰면서, 나는 계속 소설 쓰는 것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여전히 책도 별로 안 팔리는 작가이고 여태껏 무슨 대단한 평가를 받는 작가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작가인데, 왜냐면, 나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이 안 팔리고 글을 잘 못 쓰는 작가 인생의 늪지대를 헤치고 나아갈 때, 내가 던져서 어디인가 걸리면 그래도 붙잡고 한 발씩 나갈 수 있던 밧줄 같았던 소설들이 바로 미영과 양식이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소설들은 그중에서도 읽을 만하고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골라 엮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이야기 속에서 당장 회사가 망할 것 같아서 겁에 질리고 힘이 빠지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우주 끝까지 날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러다 보면, 두 사람은 신비로운 행성을 구경하며 놀라운 모험을 하게 될 때도 있고, 가끔의 삶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돌아보는 짧은 순간을 갖기도 한다.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나 싶은 날, 숨을 한번 돌리기에는 그런 이야기도 괜찮지 않나 싶다. 짧게 써서 얼른 끝내야지 하고 쓴 작가의 말이 괜히 구구하게 길어졌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그런 느낌으로 쓴 글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이 책의 소설들을 돌아본다면, 또 색다른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2021년, 교보문고 앞 햄버거 가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