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두 갈래의 조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때였습니다(제 또 다른 직업은 상담심리사이자 놀이치료사입니다). 아이들은 매주 학교와 시설 생활이 어떤지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보드게임과 장난감 놀이를 하지요. 이곳엔 여느 센터 못지않게 잘 관리된 놀잇감과 미술용품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일반 가정’의 아이들과 별다를 바 없이, 또는 그들보다 훨씬 조숙하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다음 지원 사업이 시작되기까지 얼마간 놀이를 중단하고 기다려야 하던 연말(시설에서의 세션 횟수는 정부의 예산안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진행되고, 다음 해 새로이 서류를 작성하여 행정 기관이 승인해야 놀이가 재개됩니다), 저는 아이들이 겨울을 보내며 읽을 만한 동화책을 선물하고 싶어 서점에 갔습니다. 기뻐할 아이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즐겁고 뿌듯했지요.
하지만 서점에 들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한 시간 내내 어떤 책도 고르지 못한 채 서가를 방황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매대에 놓인 수많은 책 대부분에서 가족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중심 소재가 달라도 꼭 엄마 아빠를 중간에 집어넣었어요. 마치 ‘아이들의 세계는 그래야 한다’는 듯이. 그 순간 책을 펼쳐 들 아이들의 표정이 떠올랐고, 어린이 코너를 둘러싼 많은 책들이 낯설어졌습니다.
제가 아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원만히 잘 지내고 모범생으로 인기가 좋지만, 오랜만에 면회가 허락된 부모에게 선물할 종이접기를 하다가 마음만큼 손이 따르지 않자 한 시간 동안 자신의 몸을 때리며 울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엄마 아빠를 기준으로 하는 ‘가족’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밀려나는 감각’ 속에서 태어나는 울음을 들어본 적 있나요. 이날부터 의문이 시작되었습니다. 평범함이라는 기준은 누구로부터 왔고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평균’은 정답이자 정상일 수 있는가. 오로지 한 종류의 기준만이 존재할 경우 그것은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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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들의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세상이 거꾸로 가더라도 내가 뭘 할 수나 있나’라는 염세적인 생각에 빠진 어른이었고 그곳에 모인 여성들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모인 시발점은 공권력이 일개 개인들을 억압하려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었고, 고루한 야만의 방식에 여성들은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싸우고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는 성과를 이루어 더 큰 촛불들로 번졌어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픈 이들이 탄생했지만, 어쨌든 참여자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이 시위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회의 끝에 낸 결론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곳엔 모든 사건과 모든 면을 기록한 자료가 있었기에 이걸 공개하여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럴 경우 누군가가 표적이 되거나,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이들이 영향을 받을 위험성도 있었지요.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 자리의 여성들은… ‘다 함께 무명으로 남기’를 선택하였습니다. 누군가는 영웅으로 주목받고 이익을 보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요. 대신 공식적으로 시위 종료가 선포되던 날 자정, 여성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상의 이야기’들을 적었습니다.
추천하는 맛집, 오늘 입을 옷, 연애 고민, 생활 꿀팁, 좋아하는 책과 영화 홍보 등…. 아, 이들에겐 개인적 이득을 얻는 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존재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다치지 않도록 지키려는 힘. 거대한 욕심보다 우리의 일상이 중요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일. 치료적 관점에서는, 체험들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방향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 안전하게 발설되어 고름을 짜내야만 일어나는 치유와 성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성들에게 사회는 안전하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의 친구가 다칠 바엔 함께 침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건 놀라운 종류의 숭고함이었습니다. 나만의 개인적인 욕심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선택이니까요. 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여성이 훌륭한 업적을 쌓고도 익명으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한 갈래의 이유가 이해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강제로 희생되고 이름을 뺏기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익명 되기를 선택했던 존재들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아직 세상엔 수많은 오독이 산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킨 진실의 얼굴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남아 세상과 공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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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시간을 통과했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른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도 매일 성장통을 겪어요. 언젠가 어른이 될, 어른으로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칩니다. 절박한 시절에도 미련하게 약속을 지킨 탓에 나도, 당신도 귀한 얼굴일 수 있었음을 기억해주세요. 당신들의 찬란한 얼굴 덕택에 불완전한 나도 비틀거리며 하루 더 연명합니다. 이 소설이 SF라 불려도, 그렇지 않아도 좋습니다. 문학이라 불려도, 그렇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건 그저 삶의 이면에서 탄생한 이야기니까요.
- 2022년 2월, 정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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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담. 심리학 학사 및 석사 졸. 상담전문기관에 근무하며 소설을 쓴다. 판섹슈얼. 장르의 구획을 넘나들며 심리적이고 환상적인 요소를 통해 가려진 목소리들의 세계를 드러낸다. 대표작으로 퀴어 로맨스릴러 《괴물 장미》, SF판타지 《불온한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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