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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책방/01 리틀 브라더

국정교과서와 ‘리틀 브라더’, 어디에서 만날까?


근래 한국 사회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가장 첨예한 이슈입니다. 이는 <리틀 브라더>가 아무리 한국 사회에 대한 기시감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인데요. <리틀 브라더>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미래의 위협’에 있지 ‘과거사’에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국정교과서 논란은 한국 사회가 가장 최첨단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따라갈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고루한 독재국가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본작 <리틀 브라더>에서도 ‘교과서 왜곡’ 문제를 유추할 수 있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잠깐 살펴볼까요.


“오늘 우리는 새로운 단원을 시작할 거야. 국가안보에 대한 수업이다. 너희 스쿨북에 새 교과서가 있을 게다. 스쿨북을 켜서 첫 장을 열어라.”


첫 장에 국토안보부 로고와 함께 제목이 박혀 있었다. ‘모든 미국인이 알아야 할 조국의 안보’.


스쿨북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p266)


마커스는 국토안보부가 실시간으로 시민들을 어떻게 검열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었기에, 소설 속에선 어떤 경로로 국토안보부가 교과서를 손질하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미국의 사회교과서가 국정교과서는 아니었겠지만, 국토안보부가 모든 종류의 사회 교과에 특정한 내용을 삽입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국정교과서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겠지요. 


다만 국토안보부가 삽입한 이 내용은 과거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변화된 세상에서 예전과는 달리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긴 합니다. 그러니 준비기간을 일 년 넘게 잡고도 ‘졸속’ 논란에 휩싸이는 우리의 역사교과서와는 다르게, 테러 발생 이후 몇 주 지나지 않아 신속하게 교과서를 고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또한 기본권 제약의 문제는 결국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리틀 브라더>의 어떤 부분은 보여줍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회가 역사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이야기’로서 소비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사회의 준칙을 정당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그 점을 보여주는 마커스와 새 사회선생님의 논쟁을 보실까요.


“연방정부는 어떤 경우에 권리장전에 나오는 기본권을 정지시킬 수 있을까?” 선생님이 칠판에 1부터 10까지 숫자를 써내려갔다.


“그런 경우는 없어요.” 나는 지목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이건 쉬운 문제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은 절대적이니까요.”


“그건 그다지 지적인 관점이라 보긴 힘들 것 같구나.” 선생님은 수업 자리배치도를 보더니 말했다. “마커스, 예를 들어 경찰이 부적절한 수색을 했다고 치자. 수색영장에 명시된 사항을 넘어서 수색을 한 거야. 그래서 너희 아버지를 죽인 나쁜 놈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아냈어. 그런데 그게 유일한 증거야. 그럴 경우 그 나쁜 놈을 풀어줘야 할까?” 


(...)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배우고 믿었던 우리나라는 이렇지 않았다. 내가 손을 들었다.


“응, 마커스?”


“이해가 안 됩니다. 선생님은 마치 권리장전이 경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계시잖아요. 이건 헌법이에요. 우리는 전적으로 권리장전을 따라야 합니다.”


“그건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거야.” 선생님이 내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헌법을 기초했던 사람들은 시대에 따라 개정하면서 살아있는 문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들은 정부가 시대의 요구에 맞춰 통치하지 않으면 공화국이 영원히 지속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했지. 그들은 헌법을 종교적 교리처럼 떠받들게 할 의도가 없었어. 어찌 됐든 그들은 종교적 교리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야.”


난 고개를 저었다. “뭐라고요? 아니에요. 그들은 왕이 자기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정책을 만들어 잔인하게 강제하기 전까지는 왕에게 충성하던 상인과 장인들이었어요. 종교적인 망명자들은 훨씬 전에 있었던 사람들이고요.”


“헌법을 기초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 종교 망명자들의 후손이었어.”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도 권리장전은 마음대로 고르고 선택하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헌법을 기초했던 사람들이 가장 증오했던 게 독재정치였어요. 권리장전은 그걸 막으려고 만든 거라고요. 그들은 혁명군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을 세우려고 했어요.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 압제자들을 타도할 수 있는 인민의 권리....”


“알았어, 알았어.” 선생님이 나한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들은 왕을 없앨 수 있는 인민의 권리를 믿었어, 하지만....”


(...)


“선생님은 국가안보가 헌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오늘따라 우리 반 친구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내가 말했다. “기본권을 막으면서 자유를 보호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죠?”


앤더슨 선생은 우리가 구제불능의 멍청한 놈들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국의 ‘혁명적’ 창설자들도 배신자와 간첩을 총으로 쏘아 죽였어. 그들도 공화국이 위협당할 때는 절대적인 자유를 신봉하지 않았어. 지금 너희들은 이 엑스넷 놈들의 말을 듣고....” (p278-282)


사실 ‘역사전쟁’도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닙니다. 호주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은 개척자들이 원주민들에게 폭력적이었단 서술은 좌익 역사가에 의해 광범위하게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하곤 하니까요. 


그리고 마커스와 반 친구들을 향한 사회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은 ‘역사왜곡’이란 것이 어떤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죠. 먼저 사회선생님은 ‘헌법’을 ‘종교적 교리’와 같은 불가침의 지위에서 내려놓기 위해 “헌법을 기초했던 사람들은 (...) 종교적 교리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쳤던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커스가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지적하자 “헌법을 기초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 종교 망명자들의 후손이었어”라고 슬쩍 수정하죠. 현재의 정치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을 왜곡하는 수법입니다. 우리로 치면 3.1운동이나 임시정부의 의의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에 해당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사회선생님은 실제 역사의 냉엄한 면을 지적합니다. 일종의 ‘현실주의’죠. 헌법과 기본권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미국의 ‘혁명적’ 창설자들도 배신자와 간첩을 총으로 쏘아 죽였어. 그들도 공화국이 위협당할 때는 절대적인 자유를 신봉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우리로 치면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대한민국이란 정치공동체를 위해 공산당이나 민주화 운동가를 죽이고 가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정당한 일이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실제로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헌법을 기초했던 이들의 성격이 어떠했는지, 국가의 창설자들이 어떤 경우에 사람을 쏘아 죽였는지 여부는 다각도로 고찰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복잡한 논의를 한쪽으로 결론 지어놓고 그 결론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겠다는 행동의 의도는 뻔할 수밖에 없지요. 마커스가 사는 가상의 미국 사회에서 그 의도는 국토안보부의 기본권 제한은 정당하다는 그릇된 정치적 주장을 강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정리가 가능하겠습니다만, 지금까지 <리틀 브라더>에 비추어 본 국정교과서의 의도를 가장 잘 간파한 것은 외부의 시선이 아니었나 합니다. 네덜란드 라이든대의 한국학 전임교수인 군 드 괴스트르(52) 교수는 “지금 목격하는 상황은, 역사 교육의 성격과 목적을 둘러싼 일종의 대결”이라면서, 역사 교육을 “아무 의심 없이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는 젊은이들을 찍어내는 것”으로 보는 쪽과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책임 있고 주체적인 비판적 시민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보는 쪽의 대결이라 주장했습니다. (링크)


그와의 인터뷰를 보도한 한국일보는 그의 의견을 “결국 국정화 추진 세력이 역사 교육을 ‘권력에 복종적인 학생 양성’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라고 정리했는데요. 다소 맥락이 달라 보이는 <리틀 브라더>의 ‘새로운 사회교과서’와 한국 정부가 만들려는 국정교과서의 의도는 바로 여기에서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SF 장르 전문 출판사 <아작>의 첫번째 책은 코리 닥터로우의 대표작 <리틀 브라더>이다. 2008년에 나온 <리틀 브라더>는 미국 사회의 관점에서는 ‘근미래 SF’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1984년》의 ‘빅브라더’를 본딴 책 제목부터가 그 사실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국토안보부는 특정 소수에 대해 불법적 인신구속과 고문을 자행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해선 광범위한 인터넷 검열과 정보기기를 활용한 사생활 정보 수집 그리고 수집된 정보를 활용한 불심검문 등을 시행한다. 테러 직후 국토안보부에 억류됐다 풀려난 소년은 ‘특정 소수’로서 그들에 대해 분노하고 ‘불특정 다수’의 권익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일은 꼬여만 가는데... 마커스와 그 친구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긴장감 넘치면서도 통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