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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F 완전사회. 12] 우리가 선택해야 할 속도 by 강현

아작 미디어

by arzak 2021. 1. 2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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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택해야 할 속도

 

태초에 기술이 세상을 더 행복하게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기차가 생겼으니 먼 곳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갈 수 있고, 약이 발명되었으니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떨어진 가족과 죽어가는 환자들이 있다.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없어서 그런 것뿐일까. 아니면 우리는 욕심이 많아 물리법칙이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불가능한 소망을 원하는 것일까.

 

김초엽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시간이 지나 우주를 여행하는 항법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수익을 따져보던 우주연방은 이전의 항법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전의 항법을 통해야만 갈 수 있던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들이 끊겼다. 우주를 사이에 두고 헤어진 가족들이 만날 수 없는 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지속할 필요 없는 자본시장의 당연한 결정이라고 했다. 시장이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노인을 배려해 줄 의무는 없다고. 이 소설은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발붙이고 있는 관념은 21세기 지구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의 지구로 돌아와 보자. 딜런 모한 그레이의 다큐멘터리 <피 속의 혈투(2013)>는 시장의 논리로 에이즈 치료제의 접근이 제한된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다룬다. 1987HIV/AIDS 치료제가 발명되었다. 연간 15천 달러가 넘는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생존할 기회가 있었다. 세상이 에이즈 치료제가 나왔다고 희망을 노래하는 동안 아프리카와 남반구의 대다수 사람들은 지불 능력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1996년 이후, 에이즈 치료제의 특허권들이 하나둘 만료되었다.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저렴한 카피 약들을 구입할 능력이 있었고 생존의 기회를 절박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제약회사의 방해로 그 시도는 무산되었다. 제약회사는 거의 영구히 독점 판매 권한을 연장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적법하고 공정한 시장경제의 절차를 거쳤다. 그들은 그래야 할 이유도 찾아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약 복용을 철저히 지키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에는 에이즈 환자가 너무 많다.

(1)(2)의 이유로 수천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당사의 치료제를 복용한다면 변이 에이즈가 생길지도 모른다.

당사는 에이즈 변이가 나타나면 신약 개발에 또 돈을 투자해야 한다.

그들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당사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 경제적 판단으로 천만 명 이상이 치료의 기회를 얻지 못해 죽었다.

 

이런 경제적 판단은 왜 당연하게 받아들여질까. 사회가 동의한 시장경제 안에서의 합리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은 이익추구 집단이다. 봉사활동 단체가 아니다.’ 시장경제가 필연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배분과 결정을 낳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시장경제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면 합의 과정도 공정하므로 소득분배도 공정하다.’ 인도적 차원에서 사회의 사각지대를 살펴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면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신의 몫이 부당하게 빼앗긴 것, 다른 하나는 시장이 당신을 원하지 않았던 것. 전자는 재산권 침탈이고, 정부가 재산권을 더 잘 보호하면 된다. 그러나 나머지는 당신의 능력 부족이다. 빈곤한 사람, 시장경제에서 배제된 사람, 실패한 사람이 우리의 시스템하에서 불행한 것은 그 자신의 책임이다. 탈락자들을 구제하는 사회복지가 있다면 가진 자들이 인도적으로 배려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는 시장경제의 경쟁 탈락자들이 누릴 당연한 권리는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두 가지 이야기는 그들의 주장하는 이상적인 현실과 사뭇 달랐다. 시장경제에서는 부당하게 자기 것을 빼앗기는 것만이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제약회사는 에이즈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재산권(특허권)을 침해당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에서 공정하지 못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경쟁시장에서 본인의 능력 부족이라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약을 사고 없으면 못 사고, 돈을 벌고 싶으면 약을 파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본인이 약을 못 산 건 돈이 없어서라는 논리다. 그러나 제약회사는 아프리카에 약을 판매하는 것이 오히려 잠재적 리스크라는 이유로 약을 팔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의 그 생존과 사랑, 열망을 해결할 기술이 이미 있어도, 기업이 자신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그들이 죽건 말건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게 시장경제가 말하는 공정이다. 우리는 이렇게 공정한 사회에서 기술이 발전하면 모든 사람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누군가의 불행이 늘 그 사람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이 최선을 다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선 공정하지 못한 결과, 시스템상의 사각지대가 생긴다.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긴다. 여전히 경제적 합리성 때문에 당신의 불행은 어쩔 수 없어요. 그런 답을 우리 모두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시장경제를 좀 더 잘살기 위해 선택했다. 개개인이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결정한다면 개개인이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는 계급에 따라 평생의 빈부가 결정되는 것보다 더 공정하기 때문에 능력으로 경쟁하기를 선택했다. 우리는 지금의 시스템을 더 행복하기 위해서, 더 잘 살고 더 공정하기 위해서 선택했다.

 

<피 속의 혈투>에서 논쟁의 쟁점이 되는 특허권을 살펴보자. 특허권은 단순히 발명자에 대한 보상의 문제가 아니다. 지적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 이익을 증진 시킬 것이란 생각에서 국가는 발명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그 법은 발명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을 만큼의 특허권 보호를 해야 그 법이 제정된 목적에 부합한다. 그러나 우리의 특허권 시스템은 천만 명이 죽으면서도 발명자의 이익 증대를 우선했다. 우리가 그 시스템을 선택한 이유는 잊히고 시스템만이 남았다. 본말전도다.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도 우리 사회시스템에 대한 비슷한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소설 자체는 한 사람의 삶에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시련에 대해 공감과 연민, 안타까움, 주인공이 한 선택에 대한 감탄이 이어지는 단편이다. 책을 덮고 잠시 감상을 음미하다가 나는 주인공에게 닥친 게 어쩔 수 없는 시련이었나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금의 시스템을 더 행복하기 위해서, 더 잘 살고 더 공정하기 위해서 선택했다. 그러나 시스템이 개개인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뒤에 계속해서 소외된 자들이 생겨난다. 이 사람들이 소외되는 게 필연적인 운명이나 세계의 물리법칙인가. 아니다. 주인공이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갈 수 있는 기술도, 자원도, 이유도 모두 있다. 세계의 물리법칙은 이를 막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사회시스템의 논리가 이를 막았다.

 

이미 일어난 일에서 사회적 의미를 찾아내고 취재해 보도한 것을 르포라고 부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서 현실을 포착하는 것은 SF라고 부른다. SF는 과학과 기술을 다룰 뿐만이 아니라 그 기술이 담겨있는 사회라는 그릇 또한 다룬다. 따라서 우리가 SF에서 현실사회의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발견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물리법칙을 선택하진 않았으나 우리가 담긴 사회 시스템은 우리가 선택했고,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속도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강현, 소설가

1996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소설 <나는 바나나다>를 썼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글을 쓴다. 근래 생각하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글을 쓰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누가 알아주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사악한 생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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