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아이들》은 어딘가 독특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그래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실제로 소외된 아이들이 모여 세상에 대고 외치는 이야기를 옮긴 소설이다. 이번 문윤성 SF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외침을 전달하는 나 또한 그간 비슷한 외침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십여 년 전, 장애로 인한 체력적인 문제로 학교를 그만둔 이후, 나는 사실상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채 살아왔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냥 모른 척할 수만은 없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고 지금 여기에 나를 있게 한 것일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SF를 의식하며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이전부터 나는 마인드 업로딩이나 가상현실 같은 미래 기술에 관심이 있었다. 사람의 뇌 활동을 스캔해 고유의 전기적 패턴을 복제한 전자 의식과 그 새로운 인격체들이 살아 숨 쉬는 전자적 세계는 내게 있어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그 세계를 설계할 누군가가 지나치게 리얼리즘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그곳에는 신체적 손상으로 인한 사회적 불편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곳은 장애가 없는 세계일 것이다.
미국의 한 미래학자는 그러한 세상이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수백 알의 약을 복용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그의 의식은, 복제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꽤나 높은 확률로 그 신세계에 입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 반해 나는 매우 높은 확률로 그러지 못할 텐데, 그래서인지 그 신세계의 실루엣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다가오지 싶다.
그 실루엣을 배경으로 막연하지만 분명한 설정 하나를 적어두었던 것이 있다. 가상 현실에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 그때는 그냥 떠오르는 대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이름을 따와 가제를 붙이고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마치 처음부터 짝이었다는 듯 달라붙기를 기다리며 잊어버렸다. 그러다 막상 튀어나온 나머지 조각의 정체를 마주하고 나는 내심 놀랐다.
그 ‘아이들’의 정체성이 다름 아닌 장애인이라니. 슈뢰딩거의 아이들이 유령처럼 떠도는 쓸쓸한 존재임은 어느 정도 자연적인, 개연적인 설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내 앞에 나타나 날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일지도. 아닌 게 아니라 그 나타남이 조금만 일렀어도 나는 못 본 체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장 거울 속 장애인, 나를, 나는 이제야 겨우 힐끔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역량을 의심하며 나는 내 앞에 나타난 아이의 말에,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그리고 옮겨 적었다. 그 아이, 하랑이와의 소통은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다.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부족해서 꽤 자주 하랑이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고, 몇 번은 부끄럽지만 하랑이를 배제하기도 했다. 그것을 뒤늦게 깨닫고 실제로 얼굴을 붉히며 나는 사과하는 마음을 시현이를 통해 표현했다. “적절한 사과를 했는지, 사과를 한 것은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걸 내가 평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몇몇 분들(심사위원)은 그것을 나쁘게 보시지는 않은 것 같아서 한숨 돌릴 따름이다. 나와 하랑이, 그리고 그 밖의 아이들과의 소통이 여러분에게도 나빠 보이지는 않기를 바라본다.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을 이끌고 내가 합류할 수 있는 지금 여기까지 와주신 전자신문의 김용주 기자님, 나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해주신 김초엽 작가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님들, 융통성 없고 소통에 서툰 나를 데리고 차분하게 지도해주신 아작 출판사의 최재천 편집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런 부족함 많고 모르는 것투성이인 나를 무턱대고 내맡기고만 그린북 에이전시의 김시형 실장님과 임채원 매니저님께도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와 닿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상에, 나의 주변 사람들(가족, 친척)이 너무나 좋아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한동안 부모님이 당신들의 지인에게 들은 축하를 내게 전해줬는데, 그것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놓친 또 하나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의 친구들은 나를 축하하는 동시에 부모님을 축하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식의 경사에 대한 축하가 아닌, 자식의 경사가 가능한 토대를 마련한 부모님의 노고에 대한 응원과 격려였다.
내가 글을 쓰는 일을 가능케 하는 거의 모든 것은 부모님의 지원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고, 사실 그것은 글 쓰는 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혼자서는 정말이지 그 어떤 행동도 불가능한 내가 마침내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해준 나의 부모님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다른 놓친 것이 없는지 고민하며
최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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