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삭발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뭐든 시켜주십시오.”
신작 소설집 《공상연애소설》이 곧 출간되니 인터뷰를 하자는 편집부의 말에 홍지운 작가는 난데없는 삭발 선언으로 응답했다. 사진 촬영에 제법 진심인 편집부는 뒤집어졌다.
‘세계 3대 대작가 ― 알랭 드 보통,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리고 홍지운’과 같은 카피나, 광장시장에서 돼지머리를 들고 있던 메탈리카의 사진을 오마주하여 ‘한국 관광을 온 외계인’ 컨셉으로 가자는 투의 아이디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창간 이후 가장 웃음이 넘쳐났던 회의 테이블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인터뷰를 하러 등장한 작가의 머리는 편집부의 기대보다 조금 더 길었다. 장난 섞인 타박을 듣자 작가는 “생각보다 머리가 더 빨리 자라더라고요… 어디 가서 다시 밀고 올까요?”라고 물었다.
이 일화만큼 작가를 잘 대표할 수 있는 건, 아마도 그의 소설 말고는 없을 것이다.
첫 번째 단편집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에는 정말, 더러운 성격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어요. 그때를 후회하거나 잘못 행동했다고 여기는 건 아닌데, 나이를 먹고 나니까 아직도 변화 없이 그렇게 사는 건 꼴사나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젊어 보이고 발랄해 보이고 싶어 발버둥 치면 티가 나잖아요. 그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는 않아요.
더러운 성격이요? 되물었다. 눈앞에 보이는 작가는 지극히 깍듯하고 자신을 낮춰 주위의 사람을 높이는 데 익숙했으며 또한 자로 잰 듯 반듯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지망생 시절이 워낙 길었어요. 첫 번째 단편집에는 특히 작가라기보단 독자의 자아가 많이 담겨 있고요. 그때 저는 2000년대 초반의 문화적인 분위기에 완전히 젖어 있었어요. 사랑에 실패하고 성장에 실패하고, 무너진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정서를 담은 작품들이 진짜 예술이고 우월하다고 여겼는데, 개중 폭력적인 작품들도 많았죠. 지금 와서는 용인될 수 없는 형태의 혐오를 디폴트라 생각하고,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들이요. 그런 착취적인 면이 제 작품에 들어갔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지만, 그때의 저 자신이 가볍고 쉽게 그 소재들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20대 때 모르고 한 거죠.
이젠 절대 그래서는 안 돼요. 그때 저는 언더독이고 챌린저였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언더독 감성으로 작품을 쓴다면 기만이라고 생각해요. 언더독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돼요. 아, 물론 판매부수는 언더독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요!
《공상연애소설》의 작품 해설을 쓴 청강문화산업대 문아름 교수는 지면에 대고 단언했다. “홍지운은 나이가 들었다.”
예전에도 분명 다정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너무나 다정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의도하고 썼는데 읽은 이들이 다들 그랬죠. 이거 이상해, 감정이 되게 비틀려 있네, 변태적이야. 그런 지적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정함과 이상함을 조금 더 잘 분리해서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전 이상한 글이 나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데, 의식적으로 도구화하여 사용하지 않은 특성이 의도하지 않은 형태로 돌출되는 건 좋은 경험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 《공상연애소설》의 수록작인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이 작품집에서 가장 로맨틱한 작품이라 일컬을 만한데, 이야기가 될 씨앗을 10년 가까이 품고만 있었기에 비로소 지금 다정한 성장서사가 되어( ‘dcdc’란 필명을 쓰던 8년 전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이 작가는 성장서사를 쓰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그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에 대해 이미 언급해두었다.)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설은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게 된 사람의 이야기죠. 몇 년 전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사랑으로 인한 재앙을 다루는 글이 되었을 거예요. 파괴적이었을 게 분명해요. 저는 지금의 다정한 결과물이 좋아요. 묵혀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을 상대로 한 장르 작품이면 결말 역시 대중을 위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에선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하고 행복해지는 내용들도 많은데, 어렸을 땐 그 진가를 잘 몰랐어요. 요새 다시 곰곰이 보고 나서, 그런 작품이 훨씬 치열한 고민과 계산에서 나온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죠.
마침내 성장을 다정하게 다루게 된 이유가 오로지 나이 때문일까?
장편을 써서 달라진 것도 분명 있어요. 단편소설에서는 강한 사건 하나에 인물이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분량이 채워지죠. 그러면 원고지 70매가 딱 나와요.
데뷔 초창기, 공모전이란 오로지 순문학 공모전밖에 없던 시기에 단편 기준 분량이 원고지 70매였어요. 그 70매에 저 역시 익숙해져버렸고요. 그런데 장편을 써본 후 확 달라졌죠. 인물을 성장시키고 활동하게 연료를 주지 않으면 장편의 분량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SF가 독자들의 사랑을 점점 더 많이 받으면서 150매, 200매짜리 공모전들도 여럿 등장하고 있잖아요? 그 정도 분량에서는, 성장을 시키지 않으면 끝을 맺을 수가 없어요.
작가 자신 역시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특히 현재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웹소설 창작 전공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므로 분명 ‘가르치는 경험’의 영향을 작품이 받지 않을 리 없을 터였다. 흔히들, 가장 빨리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타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예전에는 소재에 집중했어요. 만약 ‘좀비’라고 예를 든다면 좀비란 뭘까, 좀비에 대해서 내가 다른 창작자와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이야기에 반영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치열하게 했죠.
그런데 지금은 형식적인 실험이 우선이 되었어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플롯 구조를 시도하는 식이죠. 예컨대 〈공상연애소설〉은 제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구조적인 글쓰기 실험의 완성판이에요. 장면의 배치와 반복, 대칭, 전복 등을 다 의도해서 썼어요.
그 소설에는 재미난 탄생 비화도 있었다.
사실 그 소설은 학생들 덕에 나왔어요. 단편소설 쓰는 과제를 줬는데 학생들이 분량을 도저히 지키지 못하는 거예요. 3만 년 전의 세계관부터 나열해요. 1년당 한 글자만 써도 3만 자인데! 그래서 보다 못해 제가 직접 보여주기로 했어요. 문제집에 딸린 해설지처럼. 딱 3일간 일어나는 이야기. 3만 년 간의 대서사시를 쓰고 싶어 하던 학생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게다가 장면은 일곱 개뿐이에요. 그 소소한 재료를 배치했더니 단편소설 하나가 뿅 나왔어요. 수업 자료로 썼습니다.
아무리 곱씹어도 멋진 비하인드가 아닌가. 마치 제자 앞에서 직접 대련을 선보이는 무술 사범과 유사하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인터뷰 내내 학생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편하게 수다 떨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은데, 그런 면에서 볼 때 교육자로서는 실패했죠. “야, 너희들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고수가 되는 비법이 있어”라고 카리스마 넘치는 일타 강사처럼 단언할 수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작가로서 잘 나가서 학생들이 그 기운에 감탄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싫었어요. 과도한 자신감과 기싸움 같은 것. 저는 이거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이러면 어떨까? 같이 한번 해보자! 라고 말하며 가르치는 식이에요. 학생들한테 미안하죠.
그러나 강사와 선생은 다르다. 강사는 어디든 존재하고 닿기 쉽다. 작법서로, 동영상 강의로(물론 작가도 작법서 《시나리오 레시피》를 썼다. 인터넷 서점 여기저기서 높은 별점을 자랑한다!). 그러나 선생은 만나기 어렵다. 평생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가르치고 있는 학과의 학생 정원이 늘어났어요. 이번 학기에만 학생 기획서를 500개쯤 피드백했죠. 1인당 총 네 번씩 피드백을 하는데 가면 갈수록 퀄리티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올라가요. 그러니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친구들이 빨리 시장에 나와서 완성된 작품으로 독자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학생들 보는 게 진짜 신나요.
누가 들어도 선생의 말. 갑자기 작가가 SF계에서 오랫동안 ‘덕질의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작가는 이제 학생들을 덕질하고 있는 걸까?
그렇죠. 학생 말고도, 덕질할 거야 넘쳐나요! 시간은 변함없이 24시간인데 작가인 동시에 오타쿠인 저는 점점 힘들어져요. 봐야 할 게 너무 많거든요. 예전엔 서울아트시네마나 영화제 가서 영화를 봤는데 이제는 OTT에 봐야 할 영화가 수두룩하게 올라오죠. 몇 년 전만 해도 한 달에 한 권 정도 사면 한국 SF는 다 읽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였어요. 지금은 절대 불가능하죠. 볼 게 많아서 정말 행복해요.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너무 초조해요.
그렇게 좋은 작품이 많은 거냐 물었더니 그뿐 아니라 엉망진창인 작품에서도 얻는 게 많다는 대답이 왔다. ‘반면교사’ 같은 게 아니었다.
OTT에서 아무도 안 볼 법한 영화를 찾아 틀어보세요. 저예산에 각본이 엉망진창일수록 의외로 플롯 구조를 들여다보기에 좋아요. 그리고 반대로, 정말 마이너한 B급 소재에 무드인데 구조적으로 얼마나 깔끔하게 완성시켰느냐에 따라 대중을 납득시킬 수 있는 작품도 있고요. 그러면 얼른 그 방식을 기억에 넣고 체화하는 거죠.
소설을 볼 땐 좀 달라요. 작가를 주로 파악하죠. 소설은 창작자가 외부의 개입이나 간섭에서 가장 자유로운 매체 중 하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고유성을 소설이란 매체의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구조적 완전성이나 캐릭터성은 영화나 게임이 훨씬 낫죠. 소설에서는 그게 무너지는 순간들이 훨씬 중요해요. 이게 더 재밌고 구조적으로도 맞고 잘 팔리겠지, 하지만 나는 지켜나가고 싶은 고집이 있어. 그걸 보여주는 순간이요.
아무래도 그냥, 이야기의 형태를 띤 창작물이라면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작가는 ‘시간이 없어서 분하다’고 말했다. 읽을 책도 볼 영화도 할 게임도 너무나 많다면서. 그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는 식기세척기랑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입니다!”
창작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좋아하고 즐기면서, 또 너무나 재미있게. 팔순이 되어서도 저는 이걸 할 수 있어야만 해요.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
오래 나눈 많은 이야기를 한정된 분량 안에 다 녹여내지 못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확신이었다. 지치지 않는 덕심과, 스스로에 확신을 주는 자신만의 고유한 틀, 자신을 옳은 방향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기민함, 그리고 작품에 대한 책임감. 그런 성질들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유지되기 힘든 것인지를 명확히 알고 관리하는 이였다. 그를 선생(혹은 사범)으로 둔 제자들은 얼마나 건강한 창작활동을 하게 될까? 생각하니 조금 부러워졌다.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작가란 직업에서 ‘간지’를 찾을지 모른다. 자기파괴적인 생활방식이나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기벽,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 옹고집, 그리고 원고를 쓰며 하염없이 피워대는 담배와 마시는 술 같은. 한때 예술가란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작가를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자신이 그린 지도대로 건강하게 뚜벅뚜벅 나아가는 작가를 보고 싶다. 함정 같은 건 이미 다 파악해놓았기에 쉽게 넘을 테지. 촬영컷을 보며 “완전 대작가처럼 나왔어요!”라고 박수를 치던 편집부의 말이 그의 미래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 작가는 작법서 계의 홍성대(《수학의 정석》의 저자)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뭐,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면 더 즐거운 법 아니겠는가.
어션 테일즈 No.4 Interviewed by Seol Jaein, Photo by Augustine Park
《공상연애소설》 구매하러 가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477884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가 자기인 걸 확신하죠?" 윤이안 인터뷰 by 설재인 (0) | 2022.10.28 |
---|---|
세상을 이루는 작고 반짝이는 것들: 전삼혜 소설집 《토끼와 해파리》 리뷰 by 이서영 (0) | 2022.10.27 |
연애를 글로 배울 거라면: 홍지운 소설집 《공상연애소설》 리뷰 by 문아름 (0) | 2022.10.27 |
21세기 판 ‘멋진 신세계’, 그 벽 너머에서: 박문영 장편소설 《세 개의 밤》 리뷰 by 정보라 (0) | 2022.10.27 |
“쉿! 죽은 뒤에 입학하는 학교가 있대” 죽어야만 가는 학교, 이계학교 (0) | 2022.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