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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맛보기 - 1) 리알토에서

아작 책방/03 화재 감시원

by arzak 2015. 12. 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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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알토에서>는 양자물리학회가 헐리우드에 있는 ‘리알토’라는 호텔에서 열린 상황에서 펼쳐지는 각종 에피소드들을 양자물리학의 개념으로 버무린 45페이지쯤 되는 개그물입니다. 여기엔 가상의 학회와 가상의 학자들의 연설이 등장하는데요. 대략 훑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고의 진지함은 뉴턴 물리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전제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진지함이 양자이론을 이해하는 데에서는 걸림돌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1989년 국제양자물리학회 연례 학회에서, 

게단켄 박사의 기조연설 중 발췌 

캘리포니아, 할리우드“(p21)


소설은 위의 인용문으로 시작하는데,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진지하게 읽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이 소설에서 문제의 시작은 주인공인 물리학자께서 양자물리학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죠.


“내가 이 학회에 오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게단켄 박사 때문이었다. 비록 작년에 파동/입자의 이중성에 관한 그의 강의를 놓치긴 했지만, <국제양자물리학회 저널>에서 강의 원고를 읽어봤더니 내가 보기에도 진짜로 말이 되는 소리 같았다. 양자이론의 대부분이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그 정도면 실로 대단한 일이다. 게단켄 박사가 올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라서 나는 기어이 그 연설을 들을 작정이었다.”(p23)


“난 도무지 양자이론이 이해되지 않았다. 때로는 애비 필즈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단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슬며시 들기도 했다.”(p26-27)





그래서 주인공은 게단켄 박사의 설명을 들으려고 애를 쓰는데요. 리알토 호텔이 양자물리학의 지배를 받는 것인지 도무지 학회 행사 프로그램을 어디서 진행하는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양자이론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환 어려움은 EPR 역설이나 측정 능력과 관련된 내재적 한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모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양자이론에는 모델도 없고 이론의 특징을 적절하게 보여줄 은유도 없습니다.

-게단켄 박사의 기조연설 중에서 발췌"(p31)


“뉴턴 물리학의 모델은 기계였습니다. 밀접히 연관된 부품들, 기어와 바퀴, 원인 및 결과가 담긴 기계라는 은유 덕분에 사람들은 뉴턴 물리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게단켄 박사의 기조연셜 중에서 발췌“(p33)


그래서, 코니 윌리스 여사는 헐리우드의 리알토 호텔을 모델로 선정한 듯하네요. 하지만 리알토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정말이지 알듯 모를듯 합니다.


“전 게단켄 박사를 만나고 싶어요.” (...) “지금 농담하는 거죠? 게단켄 박사도 우리랑 마찬가지로 양자이론을 이해 못 해요.” “글쎄요. 적어도 게단켄 박사는 노력은 하잖아요.” “노력이야 저도 하죠. 문제는 말이죠, 어떻게 하나의 중성자가 자기 자신이랑 간섭을 하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트리거의 말발굽 자국은 왜 두 개밖에 없는 걸까요?” “8시 55분이에요. 전 카오스 세미나에 갈래요.” “당신이 세미나를 찾을 수 있다면야.” (p37-38)


주인공은 자신에게 연애를 걸어오는 남성 물리학자를 뿌리치기에 바쁘네요. 


“플랑크 상수가 발표된 이후 90년 동안 우린 양자 물리학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기술에 의한 발전이었지 이론적인 발전은 아니었습니다. 이론 분야의 발전은 시각화할 수 있는 모델이 있을 때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게단켄 박사의 기조연설 중 발췌“(p46)


플랑크 상수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소설에는 먹을 것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패러다임을 찾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뉴턴 물리학도 기계는 아니에요. 단지 기계가 가지고 있는 특성의 일부를 공유할 뿐이지요. 우린 가시적 세계 어딘가에서 양자 물리학이 가지고 있는, 종종 기묘하게 보이기도 하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모델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러한 모델은, 불가능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그 모델을 찾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게단켄 박사의 기조연설 중에서 발췌“(p55)


게단켄 박사는 결국 그 모델을 못 찾았다는 얘기네요. 리알토 호텔이 그 모델이 됐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세요. 


“모델/배우란 게 도대체 뭘까? 그녀가 모델 또는 배우라는 뜻일까, 아니면 모델 겸 배우라는 뜻일까? 그녀는 분명 호텔 직원은 아니었다. 어쩌면 전자가 미시우주의 티파니일 수도 있다. 그렇게 가정하면 전자의 파동/입자 이중성을 설명해 주었다. 어쩌면 실제로는 전자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단일항 상태 수업료를 내기 위해 전자 상태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던 것일 수 있다.”(p57)


헐리우드의 리알토 호텔은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부터가 도대체 무엇인지 불분명합니다. 


“우리가 양자이론의 논리적인 면과 터무니없는 면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그런 모델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전자의 충돌과 수학을 슬쩍 모른 척하면서도 놀랍고 아름다운 미시우주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게단켄 박사의 기조연설 중에서 발췌“(p62)





'놀랍고 아름다운 미시우주‘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아작출판사에겐 중복적으로 약을 팔 수 있는 대안이 있습니다! 우리는 양자이론의 현현을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소설도 알고 있거든요. 여러분, 양자물리학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화재감시원> 수록작 <리알토에서>와 함께 차이나 미에빌의 <이중 도시>를 읽도록 합시다! 단, 끝까지 읽지 않으신 경우엔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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