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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맛보기 - 2) 나일강의 죽음

아작 책방/03 화재 감시원

by arzak 2016. 1. 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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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쌍의 부부가 함께 떠난 세계여행. 유럽을 지나서 이집트로 향하는 중이다. 조이라는 여성은 어디를 가든 여행안내서를 사서 시끄럽게 낭독하고, 조이의 남편은 말이 많은 아내에게 막혀 말 한마디를 제대로 맺지 못한다. 나의 남편 닐은 다른 사람의 아내인 리사와 대놓고 썸을 타고 있다. 리사의 남편은 어디를 가든 술을 퍼마셔 그 상황을 보지도 못한다. 혹은 보기가 싫어서 술을 마시는 건지. 나는 조이가 낭독하는 안내서와 리사와 닐의 애정행각 때문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집트로 향하고 있다. 


“이번 여행 내내 그녀가 우리에게 읽어 준 안내서만 삼사백 권에 달한다. 나는 그 책들의 무게가 이 비행기를 기우뚱거리게 만들다가 머지않아 우리를 죽음으로 곤두박질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p72)


그리고 갑자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게다가 아테네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나일강의 죽음>을 구매했다. 


"어쩌면 에르퀼 푸아로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일강의 죽음>을 펴고는 기를 쓰고 읽어보지만, 비행이 영 평탄치가 않다.“(p75)


물론 구매했다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살인 동기를 가지고 있다.“(p76)


여행 내내 살인 충동이 치미는 상황이다. 


"나는 좀 더 기분 좋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만약 우리가 카이로로 가는 게 아니라면 어쩌죠?’ 내가 말한다. ‘만약에 우리가 죽었다면요?’ “(p80)





이미 죽었고 우리는 모두 유령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 '전에 어떤 영화를 봤어요.‘ 내가 말한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죽었죠.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그들은 배를 타고 있었는데, 자기들이 미국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안개가 너무 짙어 그들은 바다를 볼 수 없었어요.' “(p81)


코니 윌리스라는 저자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소설에서 언급되는 영화를 봤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보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그 배에 탔던 사람들도 자기가 죽은 상태라는 걸 처음에는 몰랐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에야, 그들은 비로소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p84)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SNS에 글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오는지를 확인하라. 어쩌며 당신이 쓰는 글은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가닿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리사의 남편도 더 이상 이 짓을 참아줄 수가 없어서 우리 모두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생각을 한다.“(p100)


그냥 술주정뱅이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어쩌면 조이의 남편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대화 하나라도 제대로 끝내기 위해, 결국 조이를 입 다물게 하기로 결심했고, 그 뒤 붙잡히지 않기 위해 우리들까지 차례차례 죽여야만 했을지도 모른다.“(p101)


주인공은 에르퀼 푸와로를 흉내낸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지 않았더라도, 에르퀼 푸와로를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우리, 살아는 있는 것일까? 만일 나일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다른 곳에서의 죽음과 뭐가 다를까?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불확실한 어떤 것이다. 흘낏 보이나 확실히 포착할 수 없는 움직임, 잠에서 깼을 때 명확히 기억해 낼 수 없는 악몽,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듯한 문소리. 그중에서도 우리가 상상한 건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 우리를 미치게 한다. 콕 집어 말하지 못하고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이름 없고 모호한 일들.


바로 그게 죽음이 무엇보다 두려운 이유이다.“(p125-126, 작가가 덧붙인 <나일강의 죽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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