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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트리 100주년을 기렸던 한국 SF 소설들 - 1) 정소연의 <앨리스와의 티타임>

아작 책방/06 체체파리의 비법

by arzak 2016. 3. 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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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출판사에서 내는 여섯 번째 SF인 《체체파리의 비법》을 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1915년에 태어나 1987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2015년은 팁트리의 탄생 100주년이었죠. 그간 팁트리는 국내에선 단편 몇 개만 다른 작가의 작품과 묶여서 나온 게 전부였기 때문에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SF 작가들은 달랐죠. 2015년에 출간된 한국 SF소설 중 몇몇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등장합니다. 먼저 팁트리가 아예 등장인물로 나와서 대화를 하는 정소연 작가의 <앨리스와의 티타임>을 스포일링 크게 하지 않는 선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2015년 10월에 출간된 《옆집의 영희씨》란 제목의 단행본에 함께 묶여 있는 소설입니다. 


“나는 일흔네 번째 세계에서 앨리스 셸던 부인을 만났다”(p29)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본명을 아는 SF팬이라면 이 문장만 보고도 단번에 이 소설이 평행우주에서 다른 팁트리를 만나는 이야기란 걸 알아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리는 없죠. 팁트리를 만나게 된 주인공은 여성이며, SF소설을 읽었고, 특히 팁트리를 감명깊게 읽었으며, 국방성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 안에 있는 다세계연구소는 평행우주를 탐험하여 우리 세계에서도 의미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게 일입니다. 





이 부분도 조금 재미있는 것이, 팁트리는 SF작가가 되기 전에 국방성과 CIA에서 일한 적이 있었죠. 평행우주가 존재하고 국방성이 그것을 관리한다는 설정을 보면 팁트리의 과거를 아는 이라면 ‘혹시 팁트리도??’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설은 거의 곧바로 그 부분으로 돌진해버립니다(스포일링은 이 영역까지만 하겠습니다). 다세계연구소에서 평행우주를 탐험하는 이들은 흔히 자신들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에 비유하며 앨리스란 가명을 쓴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본명이 앨리스였던 팁트리와 함께 두 앨리스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책 좋아해요?”


(...) “조금은요. 과학소설을 좋아하거든요.”


“과학소설? 나도 참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예요?”


(...) 나는 필사적으로 이 세계에도 있을 법한 작가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아이작 아시모프요.”


“아아.”


(...) “그래서, 칼 양은 어디에서 왔나요? 아니, 어느 시간에서 왔느냐고 물어야 하나?” (...) “칼 양, 여기에는 아시모프가 없어요. 어디에서 왔어요?”(p37-38)



이 소설에서 평행우주의 양상과 그로 인해 알게 되는 삶에 대한 통찰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개인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소설은 한 위대한 소설가에 대한 애정을 절절하게 고백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의 대부분은 팁트리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팁트리의 개인사를 전혀 모르는 이들도 평행우주라는 설정만 재미있게 받아들이면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써나갑니다. 


다른 우주에선 아작이 2014년 10월쯤 생겨서 팁트리 100주년을 기념하는데 공헌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우주를 사니까, 팁트리를 영접하기 전에 이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예방주사를 맞아두는 것이 어떨까요?  


*알라딘 <체체파리의 비법> 북펀드 주소  

http://www.aladin.co.kr/bookfund/bookfundview.aspx?pkid=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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