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체체파리의 비법' : 추천사(듀나 작가님)

아작 책방/06 체체파리의 비법

by arzak 2016. 3. 22. 16:11

본문

듀나 / SF소설가, 영화평론가 


  몇 개월 전, 전 마감에 쫓기면서 다소 어처구니없는 초능력을 가진 남자에 대한 짧은 단편을 하나 썼습니다. 전 그 이야기의 화자를 번역가로 설정했습니다. 번역이야말로 제가 절대로 하지 않기로 맹세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죠. 저랑 화자를 구분하는 건 저에게 언제나 중요한 일입니다.

 

  번역가였으니 일을 주어야겠죠. 전 막판에 그 사람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선집의 일부를 번역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2015년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으니 그건 지극히 논리적이었습니다. 전 그 이야기를 쓰기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만난 수많은 출판사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어요. "혹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집을 번역해 내실 생각이 없나요? 곧 백 주년이 되는데?" 아무도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지 않았고 실망한 전 (늘 그렇듯) 제가 만든 허구의 세계에서 그 책을 창조해내야 했습니다.


  그 가상의 단편집이 《Her Smoke Rose Up Forever》였다면 참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전 그 책이 한국 출판사가 다루기엔 지나치게 큰 책이란 걸 알았습니다. 장편은 분책해서 팔면 되지만 단편집에도 그런 취급을 해주는 곳은 얼마 없죠. 그래서 전 좀 짧은 단편 위주의 다른 선집을 상상했는데 상상 속에서라도 조금 더 막 나가도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지금 제가 추천의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이 바로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선집 《Her Smoke Rose Up Forever》의 첫 번째 책이니 말입니다.


*

  팁트리 쇼크에 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1970년대 말 미국 SF 세계라는 작은 동네에서 일어난 소동입니다.


  시작부터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란 SF 작가가 있었습니다. 60년대 말부터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불꽃 같은 스타일과 다양한 소재 폭과 흥미진진한 주제의식을 과시하는 놀라운 중단편들을 썼지요. 하지만 SF 세계의 어느 누구도 이 작가를 직접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친구들과도 오로지 편지로만 소통을 했고요. 그 이유에 대해선 다들 그러려니 했습니다. 편지에 따르면 신분을 감추고 글을 써야 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 같았어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흥미진진한 점은 그가 페미니스트였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남성적인 톤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놀랄 만큼 통찰력 있는 작품들을 썼습니다. 단순히 통찰력이 있음을 넘어서서 당대를 사는 여성의 분노와 고통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들이었죠. 70년대 페미니스트 SF를 파는 독자들이라면 온화하고 사람 좋은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들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전투적인 작품들이 훨씬 더 와 닿을 거라 생각합니다. 





  몇몇 독자들은 이 작가가 혹시 여자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아이디어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의 스타일이 여자가 쓴 작품치고는 너무나도 남성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작품 속에 녹아있는 여성에 대한 강렬한 성적 욕망을 읽었는데, 이 역시 그가 남자라는 증거였습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집에 서문을 쓴 로버트 실버버그는 팁트리가 여자라는 가설이 어처구니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진상이 밝혀진 건 1976년이었습니다. 실버버그의 선언이 있은 지 1년 뒤였죠. 팁트리는 그해에 몇몇 편지에서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그중 몇 명이 시카고 신문을 뒤지다가 그에 맞는 사람의 부고를 찾아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메리 헤이스팅즈 브래들리라는 소설가 겸 여행작가 겸 모험가로, 유족은 앨리스 브래들리 셸든이라는 딸 하나뿐이었습니다. 

 

 1977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자신이 앨리스 브래들리 셸든이라고 커밍아웃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SF 팬덤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고 사람들은 이를 팁트리 쇼크라고 합니다. 


*

  전 종종 이 쇼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남자 필명을 쓴 작가가 여자로 밝혀진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었던 걸까요? 조르주 상드에서부터 조지 엘리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남자 이름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심지어 《해리 포터》의 작가도 중성의 J.K. 롤링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성공적인 방식으로 남자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여성작가들도 많습니다. 20세기 중반에 펄프 시장과 영화계에서 활동했던 여성작가들이 얼마나 마초스러울 수 있었는지 아시나요? 남자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들은 디폴트 성이고 감추어진 게 없습니다. 반대는 그보다 조금 힘듭니다. 하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투리 사용자와 그 반대를 생각해보세요.

 

  전 팁트리가 그때까지 쓴 작품들을 읽고도 대다수 사람이 이 작가가 여성일 가능성을 부정했다는 사실이 더 재미있습니다. 이건 작가가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잖아요. <보이지 않는 여자들>를 보죠. 매우 남성적인 어조로 말하는 남성 내레이터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읽어도 이 남성 캐릭터는 허수아비이고 놀림감이며, 이 이야기에서 진짜로 작가의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는 그와 함께 멕시코의 밀림을 여행하는 중년 여성 루스 파슨스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가 썼을 수도 있습니다. 남성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요. 유쾌하고 친절한 존 발리 같은 사람들이 있었죠. 하지만 발리는 팁트리처럼 냉정하고 단도직입적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팁트리의 직설적인 공격성은 남자들이 멸종한 미래의 지구에 도착한 남자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인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에서 절정을 이루죠. 


  물론 팁트리가 그린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에 나오는 평화롭지만 정체된 여성 사회가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곳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팁트리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남성적인 것으로 봤던 걸까요? 아니면 과학 기술의 정체가 멸망 직전까지 갔던 그 특정한 문화의 특성이었던 걸까요? 여자들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내레이터를 놀려대는 건 쉬운 일이지만, 팁트리가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작가가 여성일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서가 되는 건 아니죠. 페미니스트 작가가 반드시 유토피아물이나 디스토피아물만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은 남편과 평온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60대 가정주부도 얼마든지 다른 여자들에 대한 성적 욕망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여성적 목소리와 남성적 목소리의 경계는 훨씬 흐릿한 법이고 그 경계선을 나누는 것은 개별 목소리가 아니라 그들을 보는 편견입니다.


  가면으로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남성은 디폴트 성입니다. 사용방식에 따라 여성에 대립하는 성이 아닌 중립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는 것이죠. 앨리스 셸든이 팁트리라는 가면을 쓰면서 얻은 것도 그런 중립적인 자유였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셸든은 남자를 흉내 냈다기보다는 여자들에게 주어진 제한과 불필요한 관심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썼던 것이죠. 셸든은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자긴 자기 직업의 첫 번째 여성이 된 경험을 지나치게 많이 했기에 이를 피하려 했다고요. 물론 여기엔 퀴어적인 의미도 있었습니다. 앨리스 셸든에게 새 남자 이름은 한 번도 여자들과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늘 간직하고 있던 동성애 욕망을 편안하고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는 도구였지요.


  이런 가면이 필요하지 않았고 쓸 생각도 없었던 동시대 여성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어슐러 르 귄이 그랬고, 페미니스트와 퀴어 액티비스트로서 전투력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몇 배 능가했던 조애나 러스도 그랬습니다. (여담이지만 두 사람 모두 팁트리의 펜팔 친구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모든 작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조건과 환경이 있기 마련이고 앨리스 셸든에게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가면은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도구였습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자신의 탐구를 막는다면 새로운 작품에 어울리는 또 다른 작가를 만들어 내면 되었습니다.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체체파리의 비법>은 그렇게 만든 새로운 아이덴티티인 (이번엔 여성이었습니다) 라쿠나 셸든의 작품이었죠. 


  이런 식으로 만들어낸 가상 아이덴티티의 레이어를 거쳐 작품을 써가는 작가의 모습에서 <접속된 소녀>의 이야기를 읽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이런 행위를 남성 아이덴티티를 더 매력적으로 보는 SF 팬덤을 유혹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전 그 표면적인 동기만큼이나 가면극 자체의 매력 역시 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가면극의 적극적인 참여 과정에서 젠더와 아이덴티티와 같은 팁트리 소설의 중요한 주제들이 이야기 속에서 꽃피웠다고도요. '커밍아웃' 이후 앨리스 셸든이 그처럼 힘들어했던 것도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가면극과 꼭두각시극의 전문가에게서 가면과 인형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앨리스 셸든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이름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습니다. 당시 셸든의 작품 활동에 '커밍아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마지막으로 멋지게 할 만한 일> 같은 단편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이름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 작품은 라쿠나 셸든의 몫이었을까요?


  1991년, 카렌 조이 파울러와 팻 머피에 의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젠더에 대한 이해의 확장과 이해에 이바지한 SF와 판타지 책들에 주는 이 상의 수상작으로 국내에 출판된 작품으로는 메리 도리아 러셀의 《스패로》, 캐서린 M. 벨몬트의 《소녀와 비밀의 책》과 같은 책들이 있지요. 하지만 정작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자신의 작품만을 수록한 책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출판된 적이 없었습니다. 몇몇 단편들만이 앤솔로지의 일부로 소개되었을 뿐이죠. 이 책 《체체파리의 비법》과 그 후속편은 이 멋진 작가를 소개하는 첫발입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마지막이 아니길 빌 뿐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