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트리 100주년을 기렸던 한국 SF 소설들 - 2) 듀나의 <큐피드>

아작출판사에서 내는 여섯 번째 SF인 《체체파리의 비법》을 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1915년에 태어나 1987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2015년은 팁트리의 탄생 100주년이었죠. 그간 팁트리는 국내에선 단편 몇 개만 다른 작가의 작품과 묶여서 나온 게 전부였기 때문에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SF 작가들은 달랐죠. 2015년에 출간된 한국 SF소설 중 몇몇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등장합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작품으로 듀나 작가의 <큐피드>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엔 팁트리가 등장하지만 소설의 설정 및 내용에 필수불가결하진 않기 때문에, 스포일러 걱정하지 않고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2015년 10월에 출간된 《조커가 사는 집》이란 소설집에 실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에는 결혼을 고민하는 삼십대 여성(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그 정도로 추정되는)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죠.

가장 심각한 건 보다 현실적인 문제점이었다. 난 겉보기엔 꽤 그럴싸하다. 지금은 토론토에 사는 엄마 아빠가 떠나기 전에 넘겨준 집도 한 채 있고 번역서를 빼고도 책을 네 권이나 냈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공중파 방송출연 경험도 있다. 하지만 내 별 것 아닌 수입 중 내가 직접 버는 돈은 4분의 1도 안 된다. 아직도 내 인생의 책임을 제대로 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미래도 암담하긴 마찬가지다. 책을 네 권 냈다고 했지만, 소재 폭이 너무 넓어서 나도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요새 일주일에 한 번씩 내 칼럼을 실어주는 허핑턴포스트는 아직도 나를 ‘문화평론가’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정도면 인문학 파는 사람으론 자폭한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어떻게 버티지만 마흔이 넘으면? 쉰이 넘으면?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p145)

소설은 2년 정도 연애한 남성과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하다가, 남자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남자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과정을 밟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읽어보셔야 할 것이구요. 유학파 저술가이자 번역가인 이 여성이 팁트리 소설을 번역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소설 중에 나옵니다. 

나는 번역일을 받아들였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 선집으로, 다른 역자 세 명과 네 편씩 맡아서 탄생 백 주년인 2015년이 가기 전에 내는 게 목표였다. 다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그중 한 편인 <And I Awoke and found Me Here on the Cold Hill's Side>는 대학교 다닐 때 미리 번역해둔 것이 있어서 조금 수정만 하면 되었다.(p163)

아마도 이러한 서술은 여성 주인공의 성향을 드러내주기 위한 장치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필 선택된 게 팁트리였다는 부분에선 저자의 판단과 소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팁트리는 번역되어 나왔어야 마땅한 작가라는 판단, 하지만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으니 탄생 100주년을 핑계삼아서라도 계획을 잡는 출판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 말이죠. 실제로 한국에선 2015년이 지나기 전에 팁트리의 단편 선집이 출간되지 못했습니다만, SF작가들에겐 저런 설정이 전혀 무리하게 느껴지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사실. <큐피드>에서 주인공이 번역하기로 한 단편 선집이 바로 아작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되는 그 단편선집인 듯 합니다. 주인공이 대학교 다닐 때 번역했다는 <And I Awoke and found Me Here on the Cold Hill's Side>가 포함되어 있는 《Her Smoke Rose Up Forever》가 아작에서 내는 책의 원서니까요. 다만 아작에선 이번에 이 소설집에서 7편을 뽑아서 《체체파리의 비법》이란 제목으로 내게 된 것이고, <And I Awoke and found Me Here on the Cold Hill's Side>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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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adin.co.kr/bookfund/bookfundview.aspx?pkid=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