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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 엔진(Odd Engine) 체체파리의 비법 리뷰

아작 리뷰/06 체체파리의 비법

by arzak 2016. 4. 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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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 엔진(Odd Engine) 체체파리의 비법 리뷰 


https://oddengine.wordpress.com/2013/09/20/tiptree-in-context-the-screwfly-solution-part-5-of-5/


피터, 2013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들을 최고로 꼽는다. 네뷸러상을 수상한 단편 <체체파리의 비법>은 정말 훌륭한 소설이다. 단지 기발한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작품을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써내려 갔다는 점에 눈여겨 볼만 하다. 그녀는 이 소설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어린 시절 친구로 꾸며낸 라쿠나 셸던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다. 당시 ‘남자’로서 팁트리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들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라쿠나라는 가짜 신분을 또 만들어야 했다. 


<체체파리의 비법>은 팁트리의 작품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다. 젠더 문제를 다루면서도 과학과 훌륭하게 엮어내어 독자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야기는 과학자(앨런)와 아내(앤) 사이에 오고간 일련의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앨런은 콜롬비아에서 기생충 박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멸 사업에서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는 바로 체체파리의 비법(Screwfly solution)이다. 이 기법은 대량의 거세된 수컷을 집단 내에 방생하여, 다른 정상 수컷들이 암컷들과 짝짓기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식이다. 따라서 지역 내 파리 숫자는 줄어들게 된다. 다른 화학적 방법도 고려되었는데, 예를 들어 특정 약품을 통해 수컷이 암컷의 머리와 짝짓기를 하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앤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 집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들이 갑자기 여성들을 살해하기 시작하고, 사교집단들이 튀어나와 이런 인종청소를 정당화한다. 결국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기 전까지 남성들은 낙원에 살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앨런은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자신도 이들을 죽이고 싶은 강력한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내가 이 소설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팁트리가 이 소설을 통해 과학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나란히, 그리고 아주 정교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이 여성을 죽여야 할 명확한 이유는 없지만, 앤이 피난처를 찾으면서 마침내 그녀는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앨런은 과학적 지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남성들이 여성을 박멸하고 싶어 하는지 깨닫지 못한다. 앨런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이 있을지 몰라도, 그는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외부적 영향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팁트리가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여성 차별이 단지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앨런의 경우 특히 그렇다. 반대로 사이비 교주는 상황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기 합리화를 추구한다. 앨런은 아내를 해하기를 원치 않지만, 다른 이들은 혐오스러운 범죄를 신의 섭리로 승격시켰다. 


결말을 누설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기가 막힌다는 점은 꼭 말해두고 싶다. 숨이 멎을 듯 한 결말을 읽고 나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팁트리는 내가 읽은 많은 단편 소설들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는데, 팁트리의 글은 아름답고 영리하며 글의 메시지는 종이를 넘어 전해져 온다. <체체파리의 비법>의 집필을 마쳤을 때, 팁트리는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분을 감춰왔다. 하지만 출판사에 이 원고를 부치러간 우체국에서 그녀는 친구에게서 도착한 편지를 발견했다. 


“사랑하는 팁에게, 


그래, 그냥 다 털어 놓고 이야기 할게. 하지만 너도 ‘똑같이’ 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네 진짜 이름이 앨리스 셸던이라는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져가고 있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비밀스런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는 그녀의 저작을 반쪽 밖에 즐길 수 없다. 하지만 젠더 문제를 위해 투쟁해온 모습을 알게 되면, 독자들은 단지 등장인물에 공감하는 것 뿐 아니라, 저자에게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당시의 첨예한 사회 문제를 유려하게 다룰 뿐 아니라, 그녀의 글은 생동감이 넘치며, 풍부한 감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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