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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이지 않은 정자는 어떻게 되지?", 팁트리 중편 '덧없는 존재감' 리뷰

아작 리뷰/06 체체파리의 비법

by arzak 2016. 5. 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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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트리 걸작선 <체체파리의 비법>에 여러 좋은 작품이 실려 있지만, 나는 그중 '덧없는 존재감'이라는 중편이 손꼽힐 만큼 인상적이었는데, 도입부 주인공의 꿈에 "몇 파섹 길이의 남근은 견딜 수 없는 내부 압박에 진동하며 맹목적으로 주위를 찔러댄다"는 구절에 이어 “슬픔에 잠긴 남근”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주인공 애런은 “위대한 판이 죽었도다”고 흐느끼며 한탄을 한다.


역자는 판(Pan)에 관한 이 구절에 “플루타르코스가 처음 적은 이후 많은 시와 노래에 쓰인 구절. 예수가 태어나자 세상의 비탄 속에서 이전 시대의 신인 판이 죽었다는 뜻이며, 이 판은 목동의 신이 아니라 고대 신 전체를 대표하며, 그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을 선포한다”고 주석을 붙였다. 간략히 잘 정리한 주석이고, 주석이 너무 길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더 자세한 설명을 붙일 수는 없었지만, 이 구절은 ‘덧없는 존재감’뿐만 아니라 어쩌면 책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는 한 마디 문장이 아닐까, 책을 만들며 생각했다. 팁트리가 작품을 통해 종료를 선언하고 싶은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위대한 판이 죽었도다”는 외침은 이후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며 또 다른 시대의 끝을 선포하기도 하지만, 팁트리가 굳이 “판의 죽음”을 끌어온 까닭을 살피려면 먼저 예수 이전의 고대 신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목동의 신 ‘판’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목동의 신’이라고 하니 뭔가 대단히 목가적인 존재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모든 낭만적인 일들의 이면에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들이 숨겨져 있다.


목동의 신 판에 대한 여러 문헌의 아주 순화된 설명을 잠깐 요약하자면, 헤르메스의 아들 혹은 목인과 암염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판은 작은 동굴에 살면서 산과 들을 누비며 가축을 지키는데, 음악과 연애를 즐겨 그의 사랑을 받은 님프인 에코는 몸을 숨겨 메아리로 변했으며 시링크스는 그에게 쫓겨 갈대로 변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낭만적인 구절 뒤에 숨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판은 24시간 내내 ‘발기 상태’였다고 한다. ‘덧없는 존재감’의 도입부에 나오는 구절대로 “견딜 수 없는 내부 압박에 진동하며” 산과 들을 누비며 눈에 띄는 모든 여성에게 덤벼들었다는 뜻이다. 영어 패닉(panic)의 어원이 이렇게 24시간 발기 상태인 판이 덤벼들자 혼비백산하고, 당황하여 ‘메아리’나 ‘갈대’가 되고 만 여성들의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자, 그러면 판의 시대는 과연 예수의 등장과 함께 종료를 고했는가. 니체의 선언과 함께 우리는 신을 죽였는가. 


팁트리의 소설 ‘덧없는 존재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이렇다. 200억 명의 인구로 자원이 고갈되고 멸종 직전인 미래의 지구, 남은 자원을 탈탈 털어서 인류는 모든 국가가 힘을 모아서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려고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 그 우주선이 10년의 항해 끝에 마침내 발견한 행성 하나. 그리고 그곳에 정찰대로 파견되었다가 다른 사람들을 행성에 남겨두고 홀로 돌아온 애런의 여동생 로리와 그녀가 행성에서 가져온 외계 생물. 로리가 돌아온 후, 우주선의 사람들은 끝없는 악몽에 시달리고 헛것을 본다. 과연 그 행성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새로운 신세계를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은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가. 


소설을 읽을 독자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새로운 행성이 인류가 살만한 곳이라며 지구에 녹색 신호, 즉 이 행성을 향해 날아오라는 사인을 보내라고 주장하는 로리지만, 그녀는 오빠 애런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이 신세계도 지구 같은 생지옥으로 만들 거야.” 그리고 주인공 애런과 우주선은 소설 내내 “슬픔에 잠긴 남근”처럼 보인다. 비록 “슬픔에 잠긴 남근은 해방을 찾아 덩치를 부풀리고 길이를 늘이”지만 말이다.


나는 팁트리가 이 소설에서 선언한 “판의 죽음”, 그리고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 중의 하나가 ‘남근 시대의 종료’라고 읽었다. 비록 40년 전에 미국에서 쓰여진 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더 생생하게 읽히는 팁트리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동시대성’은 바로 ‘남근의 죽음’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페미사이드를 다룬 작품 ‘체체파리의 비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덧없는 존재감’의 한 구절 ‘위대한 판이 죽었도다’는 1976년이 아니라 2016년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한다.


국가가 낡은 배를 규제 없이 운행하게 하여 아이들을 죽이고, 통제받지 않은 기업이 화학물로 아기들을 죽이고, 혐오에 찌든 남자들이 여자들을 죽인다. 그러면서도 아무 대책 없는 국가, 발뺌하는 기업에 이어 남자들은 이 일이 그저 “정신병자 한 사람”의 소행일 뿐이라며 억울해한다. 억울해하는 데 그치지 않은 어떤 남성들은 인형탈을 뒤집어쓴 채 살해 현장이자 추모 현장에 나타나 추모객들과 피해 여성을 조롱한다.


“여자가 나를 무시했다”며 슬픔에 잠긴 남근들이 인형탈을 뒤집어쓰고 여자들을 죽이는 사회, 이 사회는 이미 스스로 문명이기를 포기했으며,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공동체라면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2016년 대한민국의 판은 인형탈을 뒤집어쓰고 죽었다. 슬픔에 잠긴 남근들은 무시의 대상이 아니라 멸시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굳이 그 일이 슬프지는 않다. 


“쓰이지 않은 정자는 어떻게 되지? 고환 속에 갇혀서 과열로 죽지. 재흡수돼.”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체체파리의 비법> ‘덧없는 존재감’ 중에서


@Pas_Mè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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