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리틀 브라더’를 읽고 수학을 다시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

아작 리뷰/01 리틀 브라더

by arzak 2015. 10. 5. 23:36

본문

어느 날 도시가 공격을 받았다. 특수한 군이 도시를 장악하고 법은 정지한다. 의심을 받는 소년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고 고문을 받는다. 풀려날 때 자신이 당한 일에 침묵을 지킨다는 서약을 한다. 처음엔 공포에 떨다 곧 이 말도 안 되는 ‘위헌적’ 상황에 맞선다. 그 방식은 저들의 정보망을 교란시키는 것이다. 게임과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답게. 그들의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게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이야기는 ‘발가벗겨진 삶’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든 삶은 발가벗겨질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고, 위계가 높으면 발가벗겨질 수 있는 위험은 줄어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최고 존엄’의 후원자이자 고모부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혁명의 배신자가 되어 눈에 멍이 들 정도로 얻어터지고 끌려나오는 것은 더 이상 그 나라에서‘만’ 이상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궁금하면 책을 보시라. 장군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삶을 발가벗기는 것을 아감벤은 ‘예외상황’이라고 불렀다. 예외상황에서 모든 법은 정지된다. 법이 정지된다는 것은 무슨 행위를 하더라도 그 행위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용할 법이 없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가능하다. 살인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살인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살인이란 이미 법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살인을 물을 법이 없다면 그 행위는 ‘살인’이 되지 않는다.


예외상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법의 정지 혹은 유보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이 법을 정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9.11 이후에 만들어진 ‘애국법’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법은 그 이전에 법으로 알고 있던 법을 정지시키는 법이다. 법을 정지시키는 법이니 이것은 여전히 법이지만 법을 텅 비게 만드는 법이 된다. 그 법은 법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적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공간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에, 시간적으로는 테러범을 잡을 때까지로 한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외는 예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예외의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그 예외가 끝나는 시간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유예된다. 소위 말하는 ‘항구화된 예외’다. 예외는 그것이 예외라는 ‘이름’으로 ‘곧 끝날 것이야’라는 위로만 줄 뿐이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예외적 공간은 점점 더 확장된다. 위험한 사람들이 출몰하는 골목에서 시작하여, 구역으로, 도시 전체로, 그리고 그 도시를 둘러싼 지역으로, 그리고 전세계로 확장된다. 전세계 전체가 모두 예외적 공간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외적 공간이 없는 공간은 없다는 의미다. 어디에나 씽크홀처럼 언제 빠질지 모르는 예외적 공간이 쑹쑹 뚫려있다.





시민들은 이 법의 예외에 대해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안전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그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좌파든, 우파든, 심지어 젊었던 시절 히피였던 사람도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앞에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자발적으로 헌납한다. 언제 나의 삶이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법의 정지, 즉 권리의 정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24시간 감시받는 삶에 대해 그것을 ‘보호받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공포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시간과 장소뿐만 아니라 ‘누구’에 있다.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포는 불안이 되었다. 


통치 권력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불안이 된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바우만은 불안과 공포를 나눈다. 행위의 파국적인 결과가 보일 때 느끼는 감정이 공포다. 반면 결과가 불투명할 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다. 테러가 터진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렇기에 테러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테러는 전쟁과 달리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테러에서 야기되는 공포는 불안이 된 공포라고 할 수 있다. 결과는 죽음인데, 그 죽음이 도처에 있지만 누구에 의해,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기에 불안하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헌납하는 상황에서 누가 맞서 싸울 것인가? 민주주의의 영웅? 공화주의의 수호자? 아니다. 자유를 공기처럼 마시던 사람들이다. 자유가 싸움으로 쟁취한 숭고한 어떤 것이 아니라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이지만 자신의 일상인 사람들이 이 상황에 맞설 수 있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온라인은 바로 이 엉망진창인 ‘자유’의 원체험 공간이다. 이 공간이 공격받을 때, 그들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식(수학, 암호와 프로그래밍, 게임을 돌리는 방식 등)을 무기로 맞서 싸운다.




그러나 그들에겐 다른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저 무정부적인 자유를 위해 맨 바닥에 헤딩하는 것은 아니다. 이 법의 유보, 예외의 법제화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유보될 수 없고 파괴될 수 없는 법에 의지하는 것이다. ‘헌법’이다. 헌법은 모든 법의 상위법이자 동시에 그 사회의 바닥이다. 따라서 헌법을 아는 자만이, 헌법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만이 삶과 세계의 파괴에 맞서는 ‘언어’를 가지고 분명하게 맞설 수 있다.


그러므로 앎이 세상을 구원한다. 헌법을 알고 수학을 알아야한다. 헌법(으로 대표되는 인문사회과학)을 알아야 무엇이 위협당하고 파괴되는지를 알 수 있고 수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과 공학)을 알아야 맞설 수 있는 기술을 가질 수 있다. 이 둘이 마주쳤을 때 앎은 자유의 기술이 된다. 헌법을 알고, 수학을 다룰 줄 아는 자, 그가 자유인이다. 문과와 이과가 통합되어야 한다면, 바로 이 이유일 것이다.   



  


------


엄기호: 문화학자, 저술가. 대표적인 저술로는 <단속사회>(2014),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2013),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2010) 등이 있다. 




SF 장르 전문 출판사 <아작>의 첫번째 책은 코리 닥터로우의 대표작 <리틀 브라더>이다. 2008년에 나온 <리틀 브라더>는 미국 사회의 관점에서는 ‘근미래 SF’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1984년》의 ‘빅브라더’를 본딴 책 제목부터가 그 사실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국토안보부는 특정 소수에 대해 불법적 인신구속과 고문을 자행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해선 광범위한 인터넷 검열과 정보기기를 활용한 사생활 정보 수집 그리고 수집된 정보를 활용한 불심검문 등을 시행한다. 테러 직후 국토안보부에 억류됐다 풀려난 소년은 ‘특정 소수’로서 그들에 대해 분노하고 ‘불특정 다수’의 권익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일은 꼬여만 가는데... 마커스와 그 친구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긴장감 넘치면서도 통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