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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리뷰] 아작의 첫 책, 리틀 브라더에 관해

아작 리뷰/01 리틀 브라더

by arzak 2015. 11. 1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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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아작출판사와 문학동네와 함께 진행한 <1984>와 <리틀 브라더> 리뷰대회 1등 수상작 두 편 중 한 편입니다. 


http://blog.aladin.co.kr/altyourself/79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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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부흥회에서 박상준 대표의 SF 관련된 발표가 끝난 후에, 한 독자가 질문 전에 이렇게 운을 뗐던 기억이 난다. "저는 SF를 읽지 않지만..." 이라고.


한국에서 책을 읽는 사람 중 장르소설을 읽는 사람도 소수지만, 그중에서도 SF를 읽는 사람은 더 적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내 주변의 책 좋아하는 친구 중에도 "음, SF는 좀..."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는 장르소설 중에서도 미스터리에 환장하고 SF라면 사족을 못 쓰는 독자지만, 내게도 분명히 선호하지 않는 장르가 있으므로 그건 취향의 문제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단지 SF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아쉬운 건, 안 그래도 크지 않은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SF 장르가 특히나 작은 파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 많은 책을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 가시밭길을 알면서도 걸어가려는 용기 있는 출판사가 잊을만하면 하나씩 나타나곤 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최근 하나가 더 나타났다. 바로 이 책을 낸 '아작'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솔직히 걱정이 더 앞설 때가 많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또 없어질까 봐... 그나마 이번에는 북펀드라는, 어려운 길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창구가 있어 감사했다. 이 북펀드를 모집할 때, 반쯤 우스갯소리로 아작 북펀드에 참가한 약 400명의 사람이 한국 SF 독자의 대부분이 아닐까? 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는데, 뭐 그러면 어떤가. 규모가 작은 집단이 충성도는 높기 마련이니, 이번 일이 한국의 SF 시장에 작게나마 활기를 불어넣는 이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SF를 좋아하긴 해도 몇십 년간 SF를 들이판 건 아니라서, 이 책의 저자인 코리 닥터로우는 내게도 생소했다. 처음 이 책 소개를 접했을 때, 제일 흥미롭게 봤던 문구는 '근 미래 SF'라는 부분이었다. 이 책이 쓰여진 2007년에 가까운 근 미래라면 대체 언제를 배경으로 하는 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너무나 가까워서 전혀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 현실적인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체감거리가 가까운 건 시간만이 아니다. 공간도 거기에 포함된다.


이 책의 배경은 분명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다. 하지만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 미국은 꽤 닮아 있다. 미국은 언제나 테러의 위협에 노출된 나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은 비록 많은 한국인이 잊고 살지만, 세계에 하나만 남은 분단국가이고, 한국 정부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 사실을 표면으로 끌어올리곤 한다. 한국이 잠재적 테러 위험이 있는 국가 리스트에서 단 한 번도 제외된 적 없는 국가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이런 유사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실제 테러가 발생하면 어떨까? 바로 그 가정에서 근 미래 SF인 리틀 브라더가 출발한다.


911을 연상케 할 정도의 대규모 테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금문교를 떠올리겠지만, 이 책에서 테러가 일어난 장소는 베이교다. 상대적으로 금문교보다 보안은 취약하지만 실제로는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이 다리의 폭파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종된다.


이 사건이 벌어질 때 마커스는 게임 중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퍼즐을 푸는 대체현실게임의 팀원이었던 마커스는 오프라인의 단서를 찾아 이동하던 중 누군가에게 체포된다. 휴대폰의 암호를 풀라는 요구에, 그 안에 담긴 개인적인 정보들과 해킹 프로그램이나 모듈들을 기억해낸 그는 이 제안을 거부하는데 그 때문에 미운털이 박힌 마커스는 며칠 더 그 장소에 억류되고 절대로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풀려난다. 하지만 팀원 넷 중 하나였던 대릴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이 책에서 내가 느끼기에 거의 유일한 근 미래적 배경은 초반에 잠시 나온다. 고등학생인 마커스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스쿨북을 나눠주는데 거기엔 감시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감시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이 하는 메신저와 접속하는 사이트를 감시한다. 학교의 곳곳에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카메라는 보행인식을 한다. 근 미래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익숙하긴 했다. 내가 직장에서 쓰는 컴퓨터에는 이미 이런 프로그램들이 깔려있어 특정 사이트를 차단하며, 아마 메신저 내용은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메신저 내용으로 직장 내 불륜을 잡아낸다거나, 메신저에 퇴사와 이직 같은 단어를 자주 쓰면 인사고과에 불이익이 간다거나, 하는 흉흉한 소문은 언제나 있었다. 물론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메신저 내용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만 회사에서 찍히면 메신저 내용은 언제든 증거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신만이 알 일이다. 사무실에는 언젠가부터 CCTV가 설치되었는데 물론 표면적으로는 도난 방지나 보안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 용도가 무엇일지는, 역시 신만이 알 일이다. 변화란 실제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간과되지만, 이렇게 소설 밖에서 소설 안을 들여다보는 독자가 되고 보니 이런 현상이 보다 확실히 보였다. 개인에 대한 감시는, 그 주체가 직장이건 정부건, 생각보다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지금 다시 읽으면 상당히 원론적인 SF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읽어도 무섭고 끔찍하다. 하지만 오웰이 상징적으로 묘사했던 세상은 이미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리틀 브라더는 1984의 직설적인 21세기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걸 암시하듯, 학교에서 감시당하는 마커스의 아이디는 w1n5t0n(윈스턴)이다. 그리고 빅 브라더를 연상케하는 정부에 대항하는 온라인상의 집단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리틀 브라더로 불리기도 한다.


감시를 우회하기 위해 마커스는 다양한 네트워크와 암호화 기법을 활용한다. 이렇게 말하면 뭐 대단한 천재 소년이 나와서 상황을 주도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테러리스트를 잡아야 한다는 명목하에 이상 행동 패턴을 보이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억류하고 협박하고 체포하는 정부에 맞서, 억류에서 풀려난 이후 마커스는 친구들과 함께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감시를 피해 접속할 수 있는 웹 환경인 엑스넷을 만든다. 이 일들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은 전혀 황당무계하지 않다. 여기에 동원되는 IT 기술들은―저자는 무척 공들여서 이 기술들을 열심히 비유해가며 설명한다, 그리고 수학 이론도―대부분 실제로 존재하는 기술과 이론들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마커스는 그 나이 또래의 소년 소녀들이라면 경험하는 모든 일들 역시 겪는다. 부모님과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학생을 관리하는 방식에 저항하다 불이익을 받기도 하고, 무모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나중에는 그저 평범한 실제의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져 버린 온라인상의 자신의 자아 때문에 가벼운 혼란을 겪기도 한다.


베이교가 폭파되는 테러가 일어난 이후, 세상은 전과 같지 않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모두 힘을 합쳐 테러에 대항해야 한다는 명목상의 대의 앞에, 개인 사생활 침해는 정당화되며 시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해서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에 맞서 각종 기술로 무장한 온라인상의 비밀 공간인 엑스넷의 회원들은 오프라인에서 RFID 태그를 교란시켜 데이터를 뒤섞어서 시민들을 감시하는 경찰을 혼란에 빠뜨리는 등 여러 활동을 한다. 정부에 대항해서 많은 밴드가 참가한 공연에는 다수의 사람이 몰려서 자유를 외치는데, 일반인들을 잠정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것이 옳은가를 고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불법 집회로 간주하고 최루액을 쏘며, 다음날 신문에 이들은 잘 세뇌당한 젊은 폭도들로 보도된다. 마커스는 적어도 자신과 생각을 같이할 누군가가 나타나리라 믿고 기자회견을 열어 온라인상의 게임 안에서 캐릭터 대 캐릭터로 기자들과 만나지만, 곧 그것이 순진한 기대였음이 드러난다. 엑스넷의 회원들은 테러리스트이거나 테러리스트의 앞잡이로 알려진다. 마커스는 다시 체포당해 끌려가고 물고문을 당한다.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을 외부 세력과 결탁한 반정부 지하조직으로 규정해서 명분을 만들고, 이들을 본보기로 삼아 정부의 방식을 정당화하고 공포를 만들어내려는 이런 시도는, 한국의 인혁당 사건과도 닮아 있다.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일정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허용될 수 있다고 믿는 기성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와의 갈등도 잘 그려진다. 마커스의 아버지는 하나도 꿀릴 것이 없는 사람으로, 정부의 단속이 단지 테러리스트뿐만 아니라 마약상과 같은 사회의 악을 뿌리 뽑는데 기여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다. 버네사의 '경찰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정상적인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말이나, 앤지의 '어른들은 감시당하는 사람들이 자기와 상관없는 나쁜 사람들이고, 붙잡혀서 비밀 감옥에 보내지는 사람도 자기와 상관없는 유색인종이나 젊은이, 외국인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은,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원래 이피들이 사용하던 '30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마'라는 구호는 이 책에서 '25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마'라는 문구로 변주되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RFID 데이터 교란으로 경찰에게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결정적으로 마커스의 일시적 실종이 정부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 마커스의 아버지는 정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세금이 안전을 지키는데 쓰인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졌던 기성세대가, 그 믿음이 무너지면서 낙담하는 모습을 보고 마커스는 이렇게 생각한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희망 없이 사는 삶과 바보로 천국에서 사는 삶 중에 어느 게 나은지 잘 모르겠다고.


이런 주제들보다 다소 약하긴 해도 인종 문제도 이 책에서 언급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억류된 대릴을 제외한 원래의 팀원인 졸루와 버네사는 백인이 아니다. 마커스는 처음에 대릴을 찾아내기 위해 정부와의 전쟁을 시작하지만, 이 둘은 마커스의 행보에 마지막까지 함께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인종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졸루는 자신이 포기할 때 마커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인들은 마약 하다 잡혀도 잠깐 중독치료만 받으면 끝나지만 피부가 갈색인 사람들은 마약으로 잡히면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고. 백인들은 경찰을 보면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갈색인 사람들은 몸수색을 걱정한다고. 국토안보부가 위기 상황에서 마커스를 다루는 방식은 평상시에 피부색이 갈색인 그들을 다루는 방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한국계 소녀인 버네사는 가족의 반은 북한에 여전히 남아있고 그녀의 부모님은 미국으로 탈출한 소녀로 그려진다. 버네사가 미국 사회에서 겪는 인종 문제는 언급되지 않지만, 북한 정부의 압력에 대한 공포를 가까이에서 겪었거나 전해들었기에 그녀가 실감하는 공포는 보다 더 구체적이고 위협적일 것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영미권 저자가 쓴 소설이니 한국하면 북한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남한에 살고 있는 나는 만약 버네사가 남한의 유신정권을 겪은 부모님을 가진 소녀로 설정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군사독재 시절의 공포는 이 소설의 마커스가 마주하는 공포와 무척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아마 한국의 독자들은 그런 면에서 이 책에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이 나라를 통치했던 독재자의 딸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되돌아온 지금의 한국에 살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두 사람에 비해 마커스가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화장한 아가씨들(알라모스퀘어 근처의 Painted Ladies를 말하는 거 같다) 근처에 사는 백인 소년임을 생각해보면 이 차이는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물론 마커스는 미국 정부에 의해 부당한 취급을 당하지만, 그나마 미국 사회에서 가장 상층에 있는 백인이었기 때문에 가장 앞서 행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묘한 아이러니다.


이런 여러 가지 화두와 함께 각종 IT기술과 수학 이론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지만, 이 책의 화자는 십대 소년인 마커스로 설정되어 있어 매우 쉽게 쓰여져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인터넷의 각종 용어에 익숙한 젊은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덕후라면, 아주 즐겁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샌프란스시코를 여행했기에(그리고 이 책에서 험악한 동네로 언급되는 텐더로인에서 며칠을 지냈다. 샌프란시스코의 숙박비가 살인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숙소 입구는 텐더로인의 뒷골목으로 향해 있어서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집주인 아저씨는 거긴 위험할 수 있다며 큰 거리에 면한 식당 문을 통해 부엌을 지나 숙소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줬는데, 숙소로 돌아올 때마다 마치 홍콩 영화를 찍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IT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더 재밌게 읽은 부분도 많았다. 책 끄트머리의 두 편의 덧붙인 글과 참고문헌도 무척 흥미롭다.


1984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 책의 분위기는 그보다 훨씬 밝다. 결말까지도. 비록 픽션이지만 이런 사건이 만약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이라고 생각해보며 암울한 결론을 예상하고, 이 책의 밝은 논조를 조금쯤 부러워하지 않았다면 아마 거짓일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여전히 믿을만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관한 투쟁이 반정부적 움직임으로 조작되기는 매우 쉽다. 국내의 전쟁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곤 한다.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으므로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비롯된다'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문구는, 자주 자신의 권력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망각하는 현재 한국 정부에도 일침을 놓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결코 스스로 그 사실을 자각하진 않을 것이다. 마커스의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상황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가 된다.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이 투표로 선출되었을 때 스스로에게 했던 말인데, 이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문득 다시 떠올랐다. 설령 정권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더라도, 이미 25살을 넘은 내가 믿을 수 없는 기성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까지나 되뇌어야 할 주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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