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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 <사소한 정의> 리뷰

아작 리뷰/08 사소한 정의

by arzak 2016. 5. 1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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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 사소한 정의 리뷰 

http://www.tor.com/2013/09/06/book-review-ann-leckie-ancillary-justice/

리즈 버크 (2013. 09.06)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의 데뷔작을 읽다 오후가 통채로 날아가 버리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사소한 정의’가 도착했을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실제로는 내 마음속 ‘최고의 스페이스 오페라’ 자리를 치고 올라가 상위권에 자리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사소한 정의’는 새된 목소리로 “어머 이건 꼭 읽어야해!”라고 외치지 않게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는 이야기다. 


엣헴. 


‘사소한 정의’는 여러 면에서 아주 훌륭하다. 일인칭 시점에서 두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재 시점에서는 파괴된 저스티스 토렌 호에서 온 주인공이 라드츠의 지배자를 죽이기 위한 무기를 찾아다니는 스릴러 같은 줄거리(와 여러가지 다른 장치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과거 시점에서는 어떤 사건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돈키호테적이며 불가능할 것 같은 복수를 찾아 떠나게 만들었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레키의 서술 방식은 명료하고 단단하며, 최고의 스릴러물들이 그런것처럼 강한 힘으로 치고 나간다. 이야기가 당신을 붙잡고 앞으로 끌어 당기는 느낌이다. 과거와 현실을 반복해서 배치한 서술방식은 영리한 동시에 훌륭하게 소화되었다. 영리한 것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라는 궁금증을 단계적으로 고조시켜 소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때문이고, 훌륭히 소화한 것은 과거와 현재를 맺고 끊는 부분이 강제적이라기 보다는 아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사소한 정의’는 한편의 훌륭한 스릴러다. 몇몇 사건의 경우 너무 우연에 기대고 있는듯 보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결말의 완급을 충실히 조절하고 있다. 


또한 글에서는 포스트 휴먼 시대의 등장인물에서 일인칭 시점을 어떻게 서술할 수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정신을 여러개의 몸에 공유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렇다. ‘나’(분명 의도적인 말장난이기도 하겠지만)라는 화자 속에 녹아든 관점을 새로이 열어준다. 포스트 휴먼(하지만 신체에서 벗어나지는 못한)의 관점은 ‘사소한 정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주인공은 보조체 병사로서 합병된 지역 사람들의 죽은 신체에서 만들어졌다. 동시에 저스티스 토렌 함선의 정신을 공유하는 일부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복수를 꿈꾸는 라드츠의 지배자는 여러개의 신체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분열하여 지배자의 정신 중 일부가 다른 일부에 대항하는 비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세계관 구축에 있어 저자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제국의 내부, 혹은 변방에 놓인 3개의 행성계, 혹은 외행성계를 방문하게 된다. 하나는 최근 합병되었으나 말살되지는 않은 곳이다. 다른 하나는 제국의 테두리 안에 놓여있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하나는 라드츠 지배와 문화의 심장부에 놓인 중심지다. 각각의 배경은 개별적 문화를 그리고 있을 뿐 아니라, 내부적인 차이와 갈등 또한 선명하게 드려내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팽창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제국의 목적과 본성에 대한 주제를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사소한 정의’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바로 대명사다. 


라다츠 언어에는 대체로 성별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쓰지 않는다. 주인공의 문화적 기반이 라다츠에 있기 때문에, ‘사소한 정의’에서는 등장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하나만 사용한다.(주인공이 문화적 감수성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아니라면)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여성 대명사를 사용한다.(‘어둠의 왼손’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흥미로운 선택인데, 다른 문화에 대해 읽고 있다는 느낌을 더해준다는 사실 뿐 아니라, 현재 우리의 언어와 문화 속에 있는 젠더 구분문제를 다루게 된다는 위험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이는 대범한 장치였으며, 내 생각에는 훌륭하게 먹혀들었다. 저자가 성별이 특정되지 않거나 남성으로 특정된 대상에게 여성 대명사를 사용할 때마다,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나 젠더에 내 가정들을 짜맞추어 왔는가를 다시금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젠더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성별, 혹은 성별이 없는 대명사가 있는 문장에 내가 어떻게 반응해 왔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절반은 “와 이거 진짜 대단하다”였고, 절반은 “왜 내 첫번째 반응이 이랬을까?”였다. 


마무리하자면, ‘사소한 정의’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면서, 동시에 야심찬 세계관을 선보이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소한 정의는 여러 면, 그리고 여러 단계에서 즐길거리들이 충분하다. 그리고 다음 권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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