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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검문하면 어느 나라다?

아작 책방/01 리틀 브라더

by arzak 2015. 10. 9.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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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아빠는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마커스, 넌 피해망상이야.” 며칠 후 아침밥을 먹다가 전날 지하철역에서 경찰이 사람들 몸수색하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자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아빠, 이건 웃기는 짓이에요. 테러리스트는 한 명도 못 잡았잖아요. 잡았나요? 이건 그냥 사람들을 겁주는 것밖에 안 돼요.” 


아직은 테러리스트를 못 잡았을지 몰라도 거리의 불량배들은 확실히 없앴잖아. 마약상 봐라. 경찰이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벌써 수십 명을 잡아넣었어. 마약쟁이가 너한테 강도질했던 거 기억 안 나? 마약을 파는 놈들부터 없애야 돼. 그러지 않으면 더 나빠질 거야.” 난 작년에 강도를 만났었다. 강도들은 의외로 그다지 폭력적이지 않았다. 빼빼 마르고 냄새나는 놈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다른 놈은 지갑을 달라고 했다. 직불카드와 교통카드를 가져갔지만 신분증은 돌려줬다.

 

당시 나는 그 일을 겪은 후 몇 달 동안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다녔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경찰이 붙잡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한 게 전혀 없어요, 아빠.” 내가 말했다.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우리 아빠가! “이건 미친 짓이에요. 경찰은 범죄자를 하나 잡을 때마다 무고한 사람 수천 명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그걸 찬성하긴 힘들어요.”

 

무고하다고? 마약상이? 너는 그 사람들 편을 들고 있다만 죽은 사람들은 어떡하냐? 숨길 게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그러면 경찰이 아빠를 붙잡아서 조사해도 괜찮아요?” 아빠의 삶이 보여주는 도수분포도는 지금까지 재미없는 정상상태였다.

 

내 의무라고 생각해. 난 자랑스러울 거야. 더 안전한 느낌을 줄 테니까 말이야.”

 

아빠로서야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시겠지. (...)

 

- <리틀 브라더> 8허위 양성 반응의 역설중에서

 

소설 <리틀 브라더> 속에서 벌어지는 대립은 주로 온라인의 영역에 있습니다만, 당연히 오프라인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특히 안보를 지킨다면서 시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찰의 행동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요. 경찰의 과잉행동하면 또 한국 사회가 빠질 수가 없죠.

 

최근 몇 년 동안 불심검문 등 경찰의 치안행위가 강화되어 오는 모양새였는데요. 특히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의 피습 이후 경찰은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을 추진했고 정부 여당은 테러방지법 등의 입법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316일 강신명 경찰청장의 기자 간담회 내용을 보면, "이번 테러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이 현장에서 출입의 제한, 검색 등 범죄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령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고 하는데요. "현행 경직법(경찰관직무행정법)에 의해 소지품을 보자고 했을 때 당사자가 안 된다고 하면 볼 수가 없다"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등 시민의 기본권에 대한 인지가 부족해 보이는 발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에 경찰의 불심검문 권한을 강화하는 경직법 개정안에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고 합니다.

 

한편 미국 대사 피습 사건 이후 관심을 끌었던 국민보호와 국민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국가 사이버테러 방지법', ‘국가대테러활동과 피해보전 등에 관한 기본법안등은 국정원의 불법 해킹프로그램 구매 의혹 등에서 정치적 논란이 생기면서 국정원장이 군·경찰 병력과 수사까지 총괄 지휘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야당의 반발에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고 합니다.


사건이 하나 일어날 때마다 사건에 대해서만 걱정하는 게 아니라 경찰의 '오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한국 사회에선 'SF'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SF 장르 전문 출판사 <아작>의 첫번째 책은 코리 닥터로우의 대표작 <리틀 브라더>이다. 2008년에 나온 <리틀 브라더>는 미국 사회의 관점에서는 ‘근미래 SF’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1984년》의 ‘빅브라더’를 본딴 책 제목부터가 그 사실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국토안보부는 특정 소수에 대해 불법적 인신구속과 고문을 자행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해선 광범위한 인터넷 검열과 정보기기를 활용한 사생활 정보 수집 그리고 수집된 정보를 활용한 불심검문 등을 시행한다. 테러 직후 국토안보부에 억류됐다 풀려난 소년은 ‘특정 소수’로서 그들에 대해 분노하고 ‘불특정 다수’의 권익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일은 꼬여만 가는데... 마커스와 그 친구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긴장감 넘치면서도 통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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