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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세계에 쏟아진 15만 달러어치 젤리빈 폭우

아작 미디어

by arzak 2018. 1. 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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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에서 연재 중인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코너, 2017/8/16.









디스토피아 세계에 쏟아진 15만 달러어치 젤리빈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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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할리퀸!" 째깍맨이 말했다'. 참으로 할란 엘리슨다운 제목이다. 그는 제목 짓기의 천재이며, 나처럼 제목 짓는 재주가 없어 늘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와 같은 제목을 볼 때마다 '어떻게 머리를 굴려야 저런 포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며 진심으로 감탄하게 된다.

그렇다면 할리퀸과 째깍맨은 도대체 누구인가? 엘리슨은 그들을 소개하기 전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에서 한 페이지 넘은 인용구를 뽑아온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참다운 의미에서의 영웅, 애국자, 순교자, 개혁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국가에 이바지하고, 그럼으로써 대부분은 부득이하게 국가에 저항하게 된다..." 어쩌고저쩌고. 이건 정말로 이 이야기의 핵심이긴 하지만 이를 인용하는 작가의 태도는 좀 삐딱하고 심드렁하다.

소로의 인용이 끝나면, 우리는 비행 보트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위를 질주하며 그들의 머리 위로 15만 달러어치 젤리빈을 쏟아붓는 할리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쏟아진 젤리빈을 잡아서 먹으며 환호성을 지르고 부품 사이에 끼인 젤리빈 때문에 자동보행로가 멈추고 모든 스케줄이 7분씩 늦어진다. 겨우 7분의 지각을 위해 당시엔 만들어지지도 않는 15만 달러어치 젤리빈을 하늘에서 쏟아부었던 것이다.

그 젤리빈은 어디서 났을까? 15만 달러는 요새 화폐가치로 얼마나 될까? 이 세계 사람들은 어쩌자고 이런 세계를 용납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엘리슨이 그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동원하는 것, 그러니까 비행 보트, 자동보행로, 시간을 기계처럼 정확하게 엄수해야 하는 디스토피아는 모두 장르에서 가져온 기성품 클리셰다.

우리의 주인공 할리퀸과 그의 적수 째깍맨도 마찬가지다. 할리퀸은 기계처럼 엄격하게 굴러가는 디스토피아에 균열을 내는 어릿광대이자 반영웅이고 째깍맨은 그 시스템의 수호자다. 소로의 인용구 다음에 나오는 몇 페이지만 읽어도 독자들은 그 즉시 그들의 기능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미래를 예언하게 된다. 그만큼이나 전형적인 이야기이며, 엘리슨은 이를 숨길 생각도 없다. 후반에 그는 심지어 "이런 건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봤지? 더 이상 설명은 안 할게"라며 선배 소설에게 스토리 진행을 떠넘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소설을 구성하는 진부함은 엘리슨의 다른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재료의 신선함보다 독자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익숙한 재료들을 재빨리 조합하며 만들어내는 심상의 효과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내 소개 글로 만족하지 말고 이 단편을 직접 읽으며 미치광이 어릿광대가 쏟아붓는 젤리빈의 폭우를 총천연색 심상으로 직접 체험하고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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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bookdb.co.kr/bdb/Column.do?_method=ColumnDetail&sc.webzNo=30246&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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