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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작가의 할란 엘리슨 소개: 한국일보

아작 미디어

by arzak 2018. 1. 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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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작가의 한국일보 연재 칼럼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할란 엘리슨 편입니다. 본문이 길고 재미있기 때문에 전문 읽기를 강권합니다!









'최고의 재능과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SF계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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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슨의 ‘뛰쳐나오기’는 집과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십대에 집을 뛰쳐나와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고, 오하이오대에서는 18개월 만에 퇴학당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교수가 자기에게 글의 재능이 없다고 했다는 이유로 교수를 팼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리고 두 해만에 100여 편의 단편을 쏟아낸 뒤 20년간 출간할 때마다 그 교수에게 꼬박꼬박 책을 보내는 경이로운 뒤끝을 자랑했다). 디즈니에도 고용되었다가 하루 만에 해고되었는데, 디즈니 작품으로 포르노를 만들자는 농담을 하다가 들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엘리슨은 뛰쳐나오는 데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 싶은 이들에게 지치지 않고 소송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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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엘리슨의 명성은 그의 경이로운 성질에 있지 않으며, 그가 쏟아낸 막대한 양의 탁월한 작품들에 있다. 그는 1,700편 이상의 중단편 소설, 각본, 만화 대본, 에세이, 비평선을 썼다. 영화 ‘오스카’의 대본을 썼고 ‘아우터 리미트’를 포함한 수많은 TV시리즈를 집필했다. 문학상만 60여회를 수상해 실상 살아있는 작가들 중 가장 상을 많이 탄 사람에 속한다. 작품이 작가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이론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고난에 빠지는 그의 주인공들이나 웃음이 나올 정도로 심술궂은 전개,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결말은 어쩌면 그의 성질머리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그는 교사와 편집자로서의 안목도 뛰어나, 당시의 SF 주류와 달라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을 무수히 발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체제에 반항적이었던 그의 성향이 “주류가 무시하는” 작가들의 존재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최초의 흑인 여성 SF작가인 옥타비아 버틀러를 발굴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인종갈등이 첨예했던 1970년, 그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문학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이 흑인여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창작 워크숍에 추천하며 작가가 되도록 격려했다. 다양한 문학상을 거머쥔 ‘히페리온’의 저자 댄 시먼스도 엘리슨이 찾아내기 전까지는 작품마다 퇴짜를 맞던 작가였다. 국내에도 출간된 알프레드 베스터의 소설 ‘컴퓨터 커넥션’에는 엘리슨의 추천사가 실려 있는데, 베스터를 모르는 독자들을 향해 “현대 순문학 어중이떠중이들이 사소설 나부랭이 직물의 마지막 코를 뜨고 있는 곳에서는 베스터의 단편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 머저리들’하고 일갈하는 모습을 보면 왜 이 성질머리 더러운 분이 또 한편으로 사랑받았는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작가를 찾아내는 그의 탁월한 안목은 ‘위험한 비전’(1967), ‘다시, 위험한 비전’(1972)이라는 두 권의 선집에서도 드러난다. 뉴웨이브 SF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손꼽히는 이 선집은 수록작이 줄줄이 휴고상과 네뷸러상에 올랐고, 엘리슨 본인도 ‘67년 가장 훌륭한 SF 선집’으로 특별 표창장을 받았다. 로버트 실버버그, 필립 K. 딕, 로저 젤라즈니, 사무엘 R. 딜레이니, 래리 니븐 등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도 쟁쟁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당시에는 아직 신인이나 무명이었다는 점이 그의 안목을 증명한다. 두 책은 모두 전설이 되었고 세 번째 권인 ‘마지막 위험한 비전’은 다른 의미로 전설이 되었는데, 엘리슨이 1973년 이래로 아직까지도 출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들이 아직도 이 책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고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늙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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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ookilbo.com/v/971d8c58b8a04bcb91fe7dd76914d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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