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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 소설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리뷰: 이 난잡하고 피로한 세상을 무단 횡단하는 얼빠진 우리들, 문목하

아작 책방

by arzak 2020. 6. 1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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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 환경이 엉망진창인 곳이야말로 희극의 천국이라고들 한다. 혼돈과 고통은 웃음의 진원지다. 이 점을 생각하면 희극에서 책상은 일견 별로 매력적인 장소로 보이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용하고 지루할 뿐, 극적이거나 다채로운 고통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많은 작가가 증명했듯, 책상은 충분히 골 때리게다양한 혼돈과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도 이를 증명하는 책이 될 듯하다.

 

화이트칼라 직군의 인물들이 이렇게 줄줄이 등장하는데도 다들 어딘가 얼이 빠져 있는 소설집을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이 책의 인물들은 그런대로 제 몫을 하며 잘 살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하다. 머릿속에 퇴근 생각밖에 없고, 도대체가 입이 방정이고, 타인에게 사랑받기 어려운 인격의 소유자로 살았고, 내 구역을 침범한 똑똑한 기계가 무섭고, 젊음이 이미 지나갔음을 인정하기 무섭고, 천재 애완동물이 실은 애완동물이 아님을 알지 못하고……. 각 단편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퉁명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보시오, 나도 이게 좀 이상한 건 아는데그런데 이미 그렇게 살아버린 걸 어쩐답니까? 당신은 이러지 마십시오그런데 당신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군요.”

 

물론 그들만 외롭게 얼이 빠져 있지는 않는다. 가장 얼빠졌고 얼이 빠지게 만드는 사건과 환경과 세상이 그들에게 눈웃음을 짓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씁쓸하고 때론 오싹한, 혹은 감동적인 결말을 보며 동질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기괴한 세상에서 우리도 이미 어느 정도는 얼이 빠진 채 살고 있으니.

 

*

 

소설집의 곳곳엔 씁쓸하고 골 때리는 유머가 가득한데, 그와 함께 여러 단편에서 보이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신기술에 대한 미묘한 거부감, 특히 사람 같은 기계와 사람의 자리에 끼어든 기계를 향해 은은한 적대감을 가진 인물이 바로 그것이다. SF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치곤 의외지만, 그들이 우리처럼 얼빠져 있는 걸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그들은 기기묘묘한 주인공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기보다는, 현실의 우리를 더 닮았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결말 역시 현실적이다.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감정을 감정하기>의 인물들이 특정 종류의 기술에 오싹함이나 불편함을 느끼든 말든 작가는 가차가 없다. 인물들은 기계와 기술을 못마땅해 할 수는 있어도 모르는 척하거나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신호등에 불은 들어왔고 그들은 미래로 걸어가야 하니까. 아니, 그들이, 우리가 건너가지 않으려 해도 미래가 자꾸만 우리를 향해 횡단해 오니까.

 

우리는 시대와 세월에 선을 여럿 그어놓고선, 선 너머 맞은편이 마치 정해진 순간에 다 함께 건너야 할 도로인 것처럼 굴지만, 그건 착각이고 단순한 바람일 뿐이다. 우리가 걸음을 멈추더라도 우리 발 앞의 길은 이미 바뀌어 있다. 때론 아무리 빨리 걷더라도 길은 우리보다 더 빨리 변해 있을 것이다.

 

얼빠져 사는 우린 대체 어찌해야 하나? 지금도 이미 충분히 피곤한 세상인데, 새롭게 피곤한 세상이 온다니 어쩌겠는가? 눈앞에 뭐라도 뵈는 게 있으면 닥치고 그곳을 향해 무단 횡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울상을 짓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결국은 걸음을 내디딘다. 내 옆으로 무엇이 달려드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일단은 미친 척 농담을 지껄이면서. 내 곁에 있던 이들이 함께 길을 건너는 중이길, 행운이 함께하고 있길 기도하면서.

 

소설의 인물들에겐 그런 행운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안전하게 자기 자신과 화해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무단으로 횡단하다 큰 상처를 받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완벽하게 홀로 고립시키지 않으려는 굳센 고집이 작가에게 있는 모양이다. 상처는 아물고, 삶은 계속되고, 한심한 사람에게도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고, 함께 배우고, 뒤늦게라도 깨닫고, 배려를 주고받고, 갚아나간다. 건강한 희극이다. 희극은 비록 고통으로 시작하더라도 고통으로만 끝나진 않는 법이다.

 

 

*

 

배움은 그러나 느리다. 사람은 어리석어서 깨달음에 시간이 걸린다.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의 교사는 어린 학생 앞에서 펑펑 울 정도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고, <감정을 감정하기>의 주인공은 애인을 떠나보낸 데다 끔찍한 진실을 알고 나서야 생각을 바꾸었고, 표제작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에서 주인공은 두렵고 외로운 하나의 깨달음을 얻기까지 젊음을 다 써야 했다. 심지어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에선 평범한 사람들 기준의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비록 느리고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변화는 온다.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이 소설집의 유머러스함에 버금가는 강한 힘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순간에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진 못하겠지만, 각자 삶을 횡단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번은 통과해야 할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앞서 나간 누군가의 뒤에 곧잘 남겨진다. 그러나 늦더라도 그들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향해 나아간다. 소설 속 인물들의 한숨 섞인 기행에 웃다가, 이리저리 꼬인 삶에 혀를 차다가, 작은 성취와 발견에 미소 짓다 보면, 단편을 읽었는데도 미래 이웃들의 인생살이를 오래 들은 듯한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아무리 낯선 기술이 구현된 세상이라도 그곳엔 낯익은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펼쳐놓은 건강한 희극을 한 줄 한 줄 따라가다 보면, 이 정도쯤은 얼빠져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들처럼 적당히 안전하게 세상을 횡단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도 반드시 저렇게 추하게 늙게될 테니까.

 

- 문목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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