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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파멜라 사전트 지음 신해경 옮김, <야자나무 도적> 수록작

아작 책방

by arzak 2020. 10. 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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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의 가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자애들 둘이 내 차 바퀴 윗부분을 쳐서 차를 길 밖으로 밀어내고는 다른 목표를 찾으러 쌩하니 달려갔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목구멍이 꽉 막히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녀석들은 최소한의 기능만 남겨놓고 차의 부품들을 싹 벗겨내면서 분명 안전장치 따위도 다 내다 버렸을 테지만 고속도로 순찰대가 자신들을 세우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경찰한테는 다른 걱정거리들이 있으니 말이다.

 

안전벨트가 날 붙잡아주었다. 차의 계기판 불빛들이 깜박거렸다. 차가 다시 도로 위로 올라가기를 기다리는데 엔진이 윙윙거리다 콜록거리더니 죽어버렸다. 난 수동 운전으로 전환했다. 엔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막막해졌다. 피난처를 떠나 바깥 세계로 나가는 이 드문 여행에 대비해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변장도 완벽하게 했다. 그 변장이 아직도 통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나를 머리 위 거울 속에 비친 각지고 거칠어 보이는 얼굴이 마주 바라보았다. 난 최근에 머리를 깎았고, 가슴은 여전히 남자아이처럼 납작했으며, 살짝 어깨 부분을 보강한 정장 윗도리는 약간 덩치가 있다는 암시를 주었다. 난 지금껏 언제나 남자로 인정받았지만 인가에서 멀리 떨어지고 주인이 카드나 현금만 주의 깊게 쳐다보는 어둑한 가게 몇 곳을 들르는 일 이상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거기 앉아서 고속도로 순찰대를 만나는 위험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경찰이 내 신분증 서류를 좀 과하게 들여다보거나 일반 규정에 따라 몸수색을 할 수도 있다. 전에도 떠돌이 여자들이 걸린 적이 있었고, 그런 걸 발견했을 때의 보상은 대단했다. 나는 내 사타구니를 더듬는 제복 입은 남자들을 상상하고는 몸을 떨었다. 내 변장이 진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안전벨트를 푼 다음 차에서 나왔다.

 

 

수리공장이 8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차들이 울리는 경적 소리를 몇 번 들은 것 말고는 별 탈 없이 거기까지 갔다.

 

수리공은 문제를 설명하는 내 허스키한 목소리를 듣고는 내 카드를 힐끗 보고 열쇠를 받은 다음 더 젊은 수리공 한 명을 대동한 채 견인차량을 끌고 나갔고, 나는 다른 남자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그의 사무실에 앉아 공포에 떠밀려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차가 한동안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 내가 있을 곳을 찾아야 한다. 수리공이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남자가 옆에 있으면 조금 지나치게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는 샘 때문에 위험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수리공이 그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사람이 산다는 걸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르니까. 손이 떨렸다. 난 두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난 수리공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고, 부품 하나가 고장 났는데 공장에 그런 게 하나 더 있으니 문제없다고, 몇 시간이면 수리가 완료될 거라고 보증하는 그에게 신경질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과도해 보이는 수리비를 불렀다. 나는 반박하려다가 말다툼이 그를 자극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고, 그러다 그와 흥정을 벌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더욱 걱정을 했다. 나는 그가 내 카드를 계산기에 집어넣었다 돌려주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여기 있어 봐야 의미 없어요.” 그가 살찐 손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저기서 시내로 나가는 셔틀을 탈 수 있어요. 15분 정도마다 있어요.”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뭘 할지 결정하려 애쓰면서 밖으로 나왔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내가 길 쪽으로 걸어가는데도 다른 수리공들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하나가 고속도로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그 입구 옆에 마르셀로라고 적힌 간판을 단 작은 유리 건물이 서 있었다. 나는 마르셀로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았다. 전에 운전하면서 저기를 지나친 적이 있었다. 거기 종업원 한 명과 같이 있으면 더 안전할 것이고 계속 돌아다니더라도 주목을 덜 받을 것이다. 잠시 호기심이 공포를 이겼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나는 마르셀로로 걸어 들어갔다. 한 남자가 접수대에 있었다. 몸집이 큰 세 남자가 창문 근처 소파에 앉아서 앞에 놓인 조그만 홀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나는 접수대로 가서 말했다. “보디가드가 한 명 필요한데.”

 

접수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콧수염이 움찔거렸다. “수행원. 수행원 말씀이군요.”

 

뭐라 부르든지.”

 

얼마나 오래?”

 

대략 서너 시간.”

 

어떤 용도로?”

 

그냥 시내를 돌아다닐 겁니다. 어쩌면 어디 들러서 한잔할 수도 있고. 한동안 시내엘 나오지 않았더니 동행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의 갈색 눈 사이가 좁아졌다. 너무 많은 걸 말했다. 그에게 내 의도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카드.”

 

난 카드를 꺼냈다. 지금까지 별일 없었으면서도 혹시나 기계가 카드를 토해내지 않을까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이, 그가 카드를 단말기에 집어넣고는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카드를 돌려주었다. “영수증은 돌아오시면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소파에 앉은 남자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가능한 사람이 세 명 있습니다. 고르세요.”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마르고 야비한 얼굴이었고, 왼쪽 남자는 눈이 졸리는 것 같았다.

 

가운데.”

 

엘리스.”

 

가운데 남자가 일어서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갈색 정장을 입은 키가 큰 흑인 남성이었다. 그는 날 유심히 살폈고, 나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사이에 접수대 남자는 서랍을 뒤져 무기 한 정과 권총집을 꺼내 수행원에게 건넸다.

 

엘리스 제러드입니다.” 흑인 남자가 손을 쑥 내밀며 말했다.

 

조 세거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내 손을 잡았다가 놓아주었다. 소파에 앉은 두 남자가 내 선택에 분개한다는 듯이 우리가 나가는 걸 지켜보더니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셔틀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몇몇 나이 든 남자들이 버스마다 배치되는 경비원의 신중한 시선을 받으며 버스 앞쪽 언저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 뒤에 웃고 떠드는 남자애들 다섯 명이 탔다가 경비원의 표정을 보고는 조용해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엘리스와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다시 말했다.

 

어디로 가지요?” 우리가 자리에 앉자 엘리스가 말했다. “예쁜 남자애 만나러 가는 건가요? 남자들은 가끔 그런 일에 수행원들을 필요로 하죠.”

 

아니, 그냥 돌아보는 거요. 날이 좋으니까, 잠깐 공원 같은데 앉아 있어도 되고.”

 

전 그게 그렇게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세거 씨.”

 

조라고 불러요.”

 

요즘 거기에 저 여장남자들이 많이 몰려다녀요. 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놈들은 거기서 패거리들과 어울리는데 그게 문제를 일으키죠. 그게 나쁜 요인인 겁니다. 그들을 잘못 쳐다봤다가는 싸움이 나는 거예요. 그건 법으로 금지해야 해요.”

 

뭐요?”

 

여자처럼 입는 거요. 자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 말입니다.” 그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이제 시내에 들어서서 첫 번째 셔틀 정거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 우리 뒤에 앉은 소년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저기 봐!” 발들이 버스 통로에서 뒤섞였다. 소년들이 버스 오른편으로 달려가 손을 유리에 댄 채 의자에 무릎을 꿇었다. 경비원조차 고개를 돌렸다. 엘리스와 나는 일어서서 자리를 바꾸고는 아이들의 주목을 끈 것이 무엇인지 내다보았다.

 

승용차 한 대가 어느 가게 앞 주차장에 서 있었다. 우리 운전사가 보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고 수동으로 버스 속도를 늦췄다. 그는 승객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았다. 여성이 타고 있지 않은 한 시내에서는 승용차가 허용되지 않았다. 나조차도 그걸 알았다. 우리는 기다렸다. 버스는 멈춰 섰다. 한 무리의 젊은 남자들이 가게 바깥에 서서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나오라고.” 내 뒤에서 한 소년이 승용차를 향해 소리쳤다. “차에서 나와.”

 

남자 두 명이 먼저 나왔다. 그중 한 명이 빈둥거리는 구경꾼들에게 소리를 지르자 구경꾼들이 길거리를 따라 조금 이동해 가로등 밑에 다시 모여들었다. 다른 남자가 뒷좌석 문을 연 다음 손을 뻗었다.

 

그 여자는 공중에 뜬 채로 차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가 서자 긴 분홍색 드레스 자락이 발목 부근에서 소용돌이쳤다. 긴 머리카락이 하얀 스카프에 감춰져 있었다. 당황스러움과 치욕감으로 내 얼굴이 뜨끈해졌다. 보디가드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가게 안으로 인도하기 전에 나는 그녀의 하얀 피부와 검은 눈썹을 얼핏 보았다.

 

운전사가 버튼을 누르고 다시 잡지를 집어 들었다. 버스가 움직였다.

 

저 여자, 진짜 같아?” 한 아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다른 아이가 대답했다.

 

분명 아닐 거야. 진짜 여자를 저런 가게에 가도록 그냥 둘 사람이 어디 있어? 만약 나한테 여자가 있다면 난 절대, 아무 데도 못 가게 할 거야.”

 

난 트랜스만 있어도 절대 아무 데도 못 가게 할 거야.”

 

저 트랜스 놈들은, 놈들은 어떻게든 갈 걸.” 소년들이 버스 뒤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분명히 트랜스예요.” 엘리스가 내게 말했다. “장담할 수 있어요. 그 여자 얼굴이 약간 남자 같은 형태였어요.”

 

내가 말했다. “그 여자 얼굴은 거의 못 봤을 텐데요.”

 

그 정도면 충분하죠. 그리고 그 여자는 아주 키가 컸어요.” 그가 한숨을 쉬었다. “이게 인생이에요. 조금 잘라내고 다듬은 다음에 몇 가지만 이식해 넣으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필요가 없어지죠. 법적으로 여성이 되니까.”

 

그저 조금 잘라내는 게 아니잖아요. 큰 수술인데.”

 

맞아요. , 전 어쨌든 성전환자가 될 수 없어요. 이런 몸으로는 안 되죠.”

 

엘리스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도 당신은 될 수 있겠어요.”

 

나도 절대 원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나쁜 삶은 아니에요.”

 

난 자유로운 게 좋습니다.” 말이 얽혔다.

 

제가 여장남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놈들은 여자처럼 옷을 입지만 여자로 바뀌려고는 하지 않아요. 그게 문제를 일으키는 겁니다. 잘못된 신호를 받게 되거든요.”

 

대화할수록 불편해졌다. 그처럼 엘리스와 딱 붙어 앉아서, 그의 몸과 버스 차창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이 남자는 너무 빈틈없이 지켜보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창 쪽으로 몸을 틀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더 많아졌다. 우리는 창문 여기저기가 깨진 학교의 벽돌건물과 텅 빈 운동장을 지났다. 도시가 쇠퇴하고 있었다.

 

 

우리는 업무지구에 내렸다. 그곳에는 아직 정상적인 삶의 환영 같은 것이 있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사무실에서 나와 이리저리 오가고, 버스에 뛰어오르고, 이른 음주를 하러 한가로이 술집을 찾아 걸어갔다.

 

여기 근처는 아주 안전합니다.” 우리가 벤치에 앉았을 때 엘리스가 말했다. 벤치는 바닥에 용접돼 있었고 낙서로 뒤덮여 있었으며 다리 하나는 휘어졌다. 보도와 빗물 배수로에는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지난 신문들이 널려 있었다. 한 신문에는 아프리카 전쟁을 다루는 기사가 실려 있었고, 다른 신문에는 더욱 최근의 일인 베데스다의 인공 자궁 프로그램의 근황이 실려 있었다. 기사는 좋았다. 그 프로젝트로 두 명의 건강한 아이가 또 태어났다. 하나는 남자애, 하나는 여자애였다. 나는 멸종위기종과 멸종을 생각했다.

 

경찰차 한 대가 지나가고 불투명한 차창이 달린 승용차 한 대가 뒤따라갔다. 엘리스가 차를 내내 응시하더니 안에 있는 여성을 상상이라도 하듯 간절한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게이였으면 좋겠어요.” 그가 애처롭게 말했다. “그런데 아니에요. 예쁜 남자애들을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저한테 맞지 않더라고요. 전 가톨릭 신자였어야 했어요. 그러면 신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이미 신부가 너무 많아요. 교회도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요. 어쨌든, 그러면 정말로 실망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은 남편이나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은 여자의 고백성사는 들을 수도 없으니까요. 의사가 되는 거나 똑같죠. 그런 식으로는 미쳐버릴 거예요.”

 

전 절대 여자를 살 정도로 많이 벌지는 못할 거예요, 트랜스조차도요.”

 

언젠가는 여자들이 많아지겠지요.” 내가 말했다. “베데스다의 프로젝트가 효과가 있다니.”

 

저 원정이라는 걸 가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필리핀으로 가는 게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지금 알래스카에 있어요.”

 

나는 날 찾으러 왔던 수색팀을 생각했다. 그들이 내 문간에 도착하기 전에 죽지 않았더라면 내가 죽었을 것이다. 난 확신했다. “그거 구린 데가 많은 사업이에요, 엘리스.”

 

아마존에 갔던 그룹은 실제로 어떤 부족을 발견했어요. 남자는 다 죽였죠. 그들이 그 여자들을 취하도록 해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그룹은 돌아와서 시도해볼 만한 충분한 돈이 생겼잖아요.” 엘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겠어요. 문제는, 많은 사내들이 이제 여자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말로는 그립다고 하지만 그놈들은 실제로 그렇지 않아요. 진짜 옛날 사람, 옛날엔 어땠는지 기억하는 사람과 얘기해본 적 있어요?”

 

그렇다고는 말 못 하겠군요.”

 

엘리스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 남자들의 상당수가 실제로 여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여자들을 떠나 저들끼리 갈 곳과 저들끼리 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여자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어요. 남자들만큼은 절대 아니었죠.” 그가 잠시 눈을 가렸다. “잘 모르겠어요. 가끔 그때 세상이 더 부드러웠다거나 더 아름다웠다고 하는 옛날 남자들이 있지만, 전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 여자들의 많은 수가 남자들에게 동의했던 건 틀림없잖아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세요, 원하는 대로 아들과 딸을 골라서 낳을 수 있는 약을 갖게 되자마자 대부분이 남자애를 갖기 시작했으니, 여자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남자가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게 틀림없잖아요.”

 

경찰차 한 대가 또 지나갔다. 안에 탄 경찰관 한 명이 차가 지나갈 때까지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트랜스들을 봐요.” 엘리스가 말했다. “, 조금 부러워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들을 존중하지 않아요. 이제 어떤 여자든 옆에 두는 진짜 이유는 보험이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아이들을 가질 테고, 우린 아니겠죠. 하지만 저 베데스다 프로젝트가 정말로 잘 돼서 확산되면 우리에겐 더 이상 여자가 필요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 말이 맞는 거 같군요.”

 

작업복 셔츠와 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 네 명이 다가와 말없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내가 뭔가 다른 존재가 되기 전에, 내가 갇히게 되기 전에 한때 어울려 놀았던 남자애들을 생각했다. 젊은 남자 하나가 재빨리 거리 쪽을 훑어봤고, 다른 남자 하나가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마주 쳐다보며 손을 떨지 않으려고 주먹을 쥐었다. 엘리스가 천천히 일어나 오른손으로 허리에 찬 권총집 언저리를 짚었다. 우리는 그 일당이 등을 돌리고 멀어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어쨌든, 이건 분석해봐야 해요.” 엘리스가 다리를 꼬았다. “주변에 여자가 많지 않은 데는 분명 실용적인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더 많은 군인이 필요해요. 요즘은 다들 그러죠. 세계가 온통 문제투성이니. 범죄가 이런 추세라면 경찰도 더 필요해요. 그런데 여자들은 그런 일을 감당하지 못해요.”

 

한때는 여자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죠.” 내 어깨 근육들이 굳어졌다. 하마터면 우리라고 할 뻔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못해요. 남자와 여자를 일대일로 붙여 봐요, 그럼 늘 남자가 이길 걸요.” 엘리스가 한쪽 팔을 벤치 등받이 위로 걸쳤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어요. 워싱턴에 있는 저놈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여자들은 챙기면서도 여자를 희소하게 유지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야 자기 여자들이 더 값어치가 높아지니까. 그리고 지금부터는 많은 아이가 또 자기들 것이 될 거니까. , 그놈들은 가끔 친구한테 여자를 꿔 주고 그럴지도 몰라요. 그리고 자궁 프로젝트가 상황을 좀 바꿔줄 거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놈들 세상이 될 것이에요.”

 

그리고 그들 유전자의 세상이겠죠.” 내가 말했다. 주제를 바꿔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엘리스는 분명하게 내 의견을 받아주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와 나누는 일상적인 말들 속에서, 내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남자와 주고받은 가장 긴 대화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해줄 어떤 것, 어떤 신호를 찾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오래갈 수 있겠어요?”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인구가 매년 줄어들고 있어요, 곧 사람들이 충분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 말은 틀렸어요, . 요즘은 어쨌든 기계들이 많은 일을 하는 데다, 사람은 늘 너무 많았어요. 우리가 더 많은 여자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러시아 놈들이 더 많은 여자를 가지고 있더라고 알아내는 방법밖에 없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그들 역시도 군인들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봐요. 여자들이 많지 않다는 게 어쩌면 우리가 여자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열여섯에 결혼해야 하고,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적어도 65세가 될 때까지는 일도 없는데?”

 

그리고 남편의 허가가 없으면 이혼할 수도 없고, 피임도 없고, 고등교육도 없지. 모든 특혜와 보호조치들도 그런 걸 보상해줄 수는 없다. “아뇨.” 나는 엘리스에게 말했다. “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을 것 같군요.” 하지만 나는 많은 여자가 자기 남자들한테 무리하게 선물과 기념품들을 강요하면서, 자신들의 아름다움과 임신을 찬미하면서, 자기 아이들과 자기 집에 아낌없이 모든 관심을 쏟아부으면서, 여자가 스스로 이혼을 얻어낼 수 없다 해도 남편보다 더 강한 남자가 그녀를 원하면 남편에게 아내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있으니 어떤 여자도 다른 남자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실한 사실로 자기 남자들을 고문하고 조작하면서, 그런 식으로 세상과 타협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게릴라를 꿈꿨었다. 굴복하기에는 너무 긍지가 강한 싸우는 여성들을, 사로잡은 남성으로부터 전투를 수행할 강한 딸들을 길러내는 게릴라들을. 하지만 그런 여성들이 있었다 해도 이미 나처럼 굴속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면 물에 빠뜨리거나 목을 졸랐던 때 세상은 훨씬 자비로웠다.

 

한때 내가 더 젊었을 때, 누군가가 음모론이 있다고 말했었다. 짝을 지은 남녀가 원하는 성별의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개발하면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사내아이를 택할 것이라고. 더 가혹한 방안들을 결정해야 할 필요도 없이 조만간 인구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그 충격이 지금껏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남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들려 애써온 저 늙은 페미니스트들을 완전히 때려눕혀 버릴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것이 음모론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일은 그저 결국은 그렇게 되게 되어 있었던 것처럼 일어났고, 사회의 가치들이 사회적 행동을 통제했다. 무엇보다 한 종이 모두 한 성별이 되기로 결심해서 안 될 일이 뭐 있겠는가? 특히 재생산이 성별과 분리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남자들이 낫다고 믿어왔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해왔다. 아마 여자들도 권력이 주어지기만 했다면 똑같이 했을 것이다.

 

 

화창하던 날씨가 점차 서늘해지자 우리는 어느 술집으로 퇴각했다. 엘리스는 나쁜 요소들이 있는 술집 두 곳에서 멀어지도록 나를 인도했고, 우리는 나이가 많거나 중년인 남자들 몇몇이 모여 있고 가죽과 실크로 치장한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 두 명이 부지런히 오가며 장사를 하는 어느 어둑한 술집 입구로 들어섰다.

 

나는 들어가면서 뉴스 스크린을 힐끔 쳐다보았다. 파리한 글자들이 깜빡거리며 밥 아놀디의 마지막 항소가 실패했으며 이달 말에 처형될 것이라 알렸다. 놀랄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놀디는 여자를 죽였고, 그 때문에 언제나 엄중한 감시하에 있었다. 글자들이 춤을 추었다. 영부인이 열세 번째 아이로 아들을 낳았다. 발표하는 동안 대통령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어느 캘리포니아 억만장자가 대통령 옆에 서 있었다. 그 억만장자가 가진 권력은 그가 세 번 결혼했으며 다산의 상징 같은 영부인이 그의 전 부인 중 한 명이라는 사실로 측정해볼 수 있다.

 

엘리스와 나는 바에서 마실 것을 받았다. 내 짧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보고 예쁘장한 남자애 중 한 명이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 후원자한테 더 가까이 다가들었다. 나는 그와 거리를 유지했다.

 

우리는 그늘진 곳으로 물러나 옆에 놓인 탁자에 앉았다. 탁자 표면이 끈적끈적했다. 재떨이에 담긴 회색 재 무더기에는 피고 난 시가 꽁초가 꽂혀 있었다. 나는 주문한 버번을 한 모금 마셨다. 임무 수행 중일 때의 엘리스에겐 맥주만 허용되었다.

 

바에 앉은 남자들이 풋볼 경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었다. 샘에 따르면 술집 홀로 스크린에는 특정 종류의 스포츠들이 늘 중계되고 있었다. 그는 가끔 전쟁 관련 뉴스들 틈에 보여주는 옛 포르노 영화들과 어쩌다 방송되는 남색가들을 위한 소년합창단 공연과 같은 보다 교양 쪽에 가까운 것들을 더 좋아했다. 엘리스가 스크린을 보고는 자기 팀이 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나는 그럴 경우의 대처법에 따라 그 팀의 약점에 대해 논평했다.

 

엘리스가 팔꿈치를 탁자에 괴었다. “이게 원하신 건가요? 그냥 좀 걸은 다음에 한잔하는 거?”

 

그게 다예요. 난 그저 내 차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난 태연한 척 말하려고 노력했다. “곧 수리가 끝날 거예요.”

 

수행원을 고용할 만한 이유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이봐요, 엘리스. 나 같은 사내들은 수행원들이 없으면 문제가 생길 거예요. 특히 잘 모르는 지역일 때는요.”

 

맞아요. 당신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으니까.” 그가 약간 지나치다 싶게 유심히 나를 살펴보았다. “그래도, 뭔가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거나 나쁜 요소들이 있는 곳에 갈 예정이거나 밤에 나오는 폭력배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당신은 그럭저럭 잘해낼 거예요. 문제는 당신 태도예요. 당신은 스스로를 잘 건사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여야 해요. 당신보다 몸집이 작아도 감히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놈들을 나는 많이 봐왔어요.”

 

난 안전한 게 좋아요.”

 

그는 마치 내가 뭔가를 더 말하기를 기대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수행원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친구가, 같이 이야기할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럴 만한 사람이 많지 않지만요.”

그건 당신 돈에 달린 거죠.”

 

경기가 끝나자 바에 앉은 남자들이 열띤 분석을 주고받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한 여성의 맑은 목소리가 실내를 채우자 내 뒤에 앉은 남자가 숨을 훅 들이마셨다.

 

나는 홀로를 보았다. 레나 스완슨이 뉴스를 읊었다. 아놀디 사건에 관해 읽은 다음에는 대통령의 새 아들 발표에 관한 뉴스가 이어졌다. 나이 들고 주름진 그녀의 얼굴이 우리 위에 떠 있었다. 그녀의 신중한 갈색 눈이 우리에게 위안을 약속했다. 엄마 같은 그녀의 존재 덕분에 그 프로그램은 홀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주변 남자들이 고개를 쳐든 채 그녀를 숭배하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여성, 다른 한쪽, 그들의 일부가 여전히 동경하는 어떤 존재.

 

 

우리는 어두워지기 직전에 마르셀로로 돌아왔다. 문으로 다가가는데 엘리스가 갑자기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잠깐만, .”

 

난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치웠다. 어깨가 아팠고 온종일 쌓였던 긴장으로 인한 두통이 결국은 터져 나오며 그 발톱이 내 관자놀이를 꽉 움켜잡았다. “손대지 마.” 난 막 변명을 하려다가 적절할 때 스스로를 붙잡았다. 엘리스가 자기 입으로 말했듯이, 태도가 중요했다.

 

당신한테는 뭔가 있어. 난 당신을 모르겠어.”

 

알려고 하지 마.” 난 목소리를 떨지 않게 유지했다. “당신 상사한테 불만을 접수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 그러면 다신 당신을 고용하지 않을지도 몰라. 수행원들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어야 하니까.”

 

그는 매우 조용했다. 지는 빛 속에서 그의 검은 얼굴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지만 나는 그가 나한테 대응하는 것과 일자리를 잃을 위험을 놓고 가치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랐고 목구멍이 바싹 말랐다. 그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에게 미묘하게 잘못된 몸짓들을 눈치챌 기회를 너무 많이 주었다. 나는 그의 욕망이 실용적인 사고를 압도할까 걱정하며 계속해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좋아.” 마침내 그가 말하고는 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을 치러야 했지만 나는 요금에 대해서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엘리스의 손에 동전 몇 개를 쥐여 주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그걸 받았다. 그는 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그는 알고도 나를 놔주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 상상일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친절을 찾는 나의 상상.

 

 

나는 따라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 우회로를 택해 샘의 가게까지 돌아온 다음 도로에서 벗어나 차의 번호판을 바꾸고 내 것은 셔츠 밑에 숨겼다.

 

샘의 가게는 길 끝, 내가 사는 산기슭 근처에 있었다. 가게 옆에 조그만 통나무집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이곳이 개발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 땅을 사들여 이 산의 대부분을 소유했지만 외부 세계는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샘이 크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맞춰 손가락으로 계산대를 두드리며 앉아 있었다.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인사를 했다.

 

?” 그의 물기 어린 푸른 눈이 사팔뜨기가 됐다. “늦었어, 꼬마.”

 

차를 고쳐야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벌써 제가 냈어요. 차를 또 빌려줘서 고마워요.” 나는 동전을 세서 그의 메마른 가죽 같은 손에 놓았다.

 

언제라도.” 늙은 남자는 동전을 들어 올려 침침한 눈으로 하나씩 꼼꼼히 살폈다. “오늘 집에 못 갈 거 같은데, 저기 소파를 써도 돼. 내가 잠옷으로 입을 만한 걸 갖다 줄게.”

 

그냥 제 옷을 입고 잘게요.” 난 그에게 여분의 동전을 하나 더 건넸다.

 

그가 문단속을 하고 자기 침실 문을 향해 절뚝거리며 가더니 돌아섰다. “시내에는 절대 안 간 거지?”

 

안 갔어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 얘기 좀 해주세요. 아저씨는 기억할 만큼 나이가 많잖아요. 전에는 정말로 어땠어요?” 모든 종류의 친밀한 관계를 피하면서 그를 알고 지냈던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에게 질문한 적이 없었지만, 갑자기 나는 알고 싶어졌다.

 

내 말하건대, .” 그가 문틀에 기댔다. “그렇게 다르진 않았어. 지금보단 좀 덜 각박하고, 어쩌면 더 조용했달까, 지금처럼 야비하지도 않았고, 하지만 아주 다르진 않았어. 언제나 남자들이 모든 걸 관리했지. 가끔은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그래 봐야 모든 실제적인 권력은 남자들이 가지고 가끔 약간의 권력을 여자들에게 내주는 거였어, 그게 다야. 지금 우리는 더는 그럴 필요도 없지만.”

 

 

나는 거의 아침나절 내내 산을 오르다가 산길을 벗어나 정오 전에 내 유인용 집에 도착했다. 샘조차도 공터에 서 있는 이 오두막이 내 집인 줄 알았다. 나는 문을 시험해보았고, 여전히 잠겨 있는 걸 보고는 계속해서 갈 길을 갔다.

 

내 집은 산기슭을 한참 더 올라가 통나무집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곳에 있었다. 나는 땅에 가까워 거의 보이지 않는 현관문에 다가갔다. 집의 나머지 부분은 넓적한 돌과 죽은 나뭇더미 아래 숨어 있었다. 나는 숨은 카메라 렌즈가 나를 잘 볼 수 있도록 가만히 섰다. 문이 활짝 열렸다.

 

세상에, 돌아왔군.” 줄리아가 날 안으로 끌어당기고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 너무 걱정했어. 네가 잡힌 거라고, 그놈들이 날 잡으러 올 거라 생각했어.”

 

괜찮아. 샘의 차에 문제가 좀 있었어, 그뿐이야.”

 

줄리아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입가 주름들이 깊어져 있었다.

 

네가 안 나갔으면 좋겠어.” 나는 샘의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공구와 물품들이 든 배낭을 내려놓았다. 줄리아가 화가 나는 듯이 배낭을 흘끗 보았다. “이건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나는 시내에 나갔던 일을 말하려다가 나중으로 미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주방으로 갔다. 바지를 입은 그녀의 엉덩이가 풍만했다. 그녀의 큰 가슴이 걸을 때마다 출렁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그처럼 오래 은신 생활을 하고도 여전히 귀여웠고, 속눈썹은 짙고 동그랗게 말렸으며, 입매는 섬세했다. 줄리아는 그런 모습으로는 나갈 수가 없다. 어떤 옷도 어떤 변장도 그녀를 숨기지 못한다.

 

나는 재킷을 벗고 앉아서 내 카드와 신분증명 서류들을 꺼냈다. 내가 나만의 삶을 살겠다고 간청한 뒤에 아버지가 준 것들이다. 가짜 이름과 허위 주소, 남성의 신분증. 아버지가 이 은신처를 지었다. 아버지는 날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썼다. 세상에 선택권을 주면.” 그가 말했었다. “여자들이 소수가 될 거야. 어쩌면 완전히 죽어 없어질지도 모르지. 아마 우리는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들만 사랑할지도 몰라.” 그 말을 하던 아버지는 엄숙해 보였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선택을 후회하듯이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후회했을 것이다. 그는 어쨌든 딸을 갖기로 선택했으니까.

 

나는 그의 말을 기억했다. “누가 알겠어?” 그가 물었다. “우리를 두 종류로 만들어 같이 작업해서 다음 세대를 내놓게 만든 이유를? , 진화에 대해서는 알지만 그런 방식일 필요는 없었잖아, 아니면 어쨌든. 이상한 일이야.”

 

이렇게 계속될 수는 없어.” 줄리아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세상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세상에서 도망 나온 우리 삶을 얘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에덴에 이브는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시내에 나갔던 일이 그런 생각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향한 신념도 함께 거둬 간다. 나의 소멸은 단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슴이 편평한 남성의 형태 안에 여성의 흔적만이 남을 것이다. 어쩌다 나오는 표정, 자세, 감정 따위. 사랑은 재생산과 결별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결합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낼 것이다. 인간의 애정은 유연하니까.

 

나는 한 남자의 선물인 내 작은 자유를 애지중지하며 내 집에, 내 감옥 안에 앉아 있다. 나 같은 이들에게 주어졌던 자유는 언제나 그런 것이었고, 나는 과연 다른 가능성이 있었는지 다시금 의아해졌다.

 

 

파멜라 사전트(Pamela Sargent, 1948)

 

파멜라 사전트는 미국의 작가로 그녀의 작품은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했고, 휴고상과 시어도어 스터전상, 사이드와이즈상의 최종 후보로 올랐으며, 2012년에는 SF와 판타지 부문에서의 평생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소설연구협회에서 수여하는 필그림상을 받았다. 그녀는 복제된 삶, 혜성의 눈, 홈스마인드, 낯선 아이, 여자들의 기슭을 포함한 많은 소설을 썼다. 그녀의 단편은 <판타지&SF 매거진>, <아시모프의 SF 매거진>, <뉴 월드>, <로드 설링의 트위라이트 존 매거진>, <유니버스>, <네이처>를 비롯한 많은 잡지에 실렸다. <공포>는 극단적인 남성지배사회를 헤쳐 나가는 한 여성을 그린 작품으로 1984년에 <광년과 어둠>에 처음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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