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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캐롤 엠쉬윌러 지음 신해경 옮김, <야자나무 도적> 수록작

아작 책방

by arzak 2020. 10. 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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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애들을 데려와야 했다. 남자애들이란 정말로 무모하고 성급하고 앞뒤도 없고 무분별하다. 그놈들은 연기와 불구덩이와 전장 속으로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난 열두 살 먹은 내 아들 하나가 절벽 꼭대기에 서서 소리를 지르며 적에게 맞서는 걸 본 적도 있다. 너무 분별이 있어서는 메달을 딸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어디서든 남자애들을 훔쳤다. 우리 편 애들이든 저쪽 편 애들이든 개의치 않았다. 자기가 어느 편이었는지 알기나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애들은 금방 잊어버렸다. 무엇보다 일곱 살짜리들이 무얼 알겠는가? 애들한테 우리 깃발이 제일 멋있고 예쁘다고, 우리가 최고고 제일 똑똑하다고 말해 보라. 애들은 믿는다. 애들은 군복을 좋아한다. 깃털이 달린 화려한 모자를 좋아한다. 애들은 메달 따는 걸 좋아한다. 애들은 깃발과 북과 함성을 좋아한다.

 

애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중요한 시험은 침대 차지하기였다. 애들은 막사까지 곧장 산을 올라야 했다. 꼭대기에서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했다. 애들은 이미 소문을 들었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애들은 알았다. 애들은 모두 성공했다.

 

우리가 남자애들을 훔칠 때 그놈들의 표정이 어떤지 한번 봐야 하는데. 그건 애들이 늘 원했던 일이었다. 애들은 산줄기를 따라 타오르는 우리 불빛을 봐왔다. 애들은 우리가 평지를 가로지르며 오락가락 행진하는 것을 봐왔다. 바람 방향이 맞을 때면 애들은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을 알리는 우리의 나팔 소리를 들었고, 애들은 우리 나팔 소리나, 아니면 계곡 반대쪽에 있는 적들의 나팔 소리에 맞춰 일어나고 잠들었다.

 

초기에는 약간 향수병을 겪기도 하지만(처음 며칠간은 밤마다 숨죽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애들 대부분은 납치될 걸 예상하고 기대했다. 애들은 어머니들 대신에 우리에게 소속되고 싶어 했다.

 

우리가 애들을 집에 보내주면 놈들은 군복을 입고 계급장을 달고 으스댈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훤하게 아는 이유는 내게 처음으로 군복이 생겼을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어머니와 누나가 내 모습을 봤으면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납치될 때는 저항했지만, 그건 그저 내 용기를 과시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납치되어서 행복했다. 마침내 남자들에게 소속될 수 있어서 행복했다.

 

 

1년에 한 번 여름에 우리는 더 많은 전사를 만들기 위해 어머니들 마을로 내려가 성교를 했다. 어느 애가 우리 애들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는데, 우리는 늘 그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애들이 모두 우리 애들이 되는 셈이라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공평하게 애들을 돌볼 테니 말이다. 우리는 가족 집단을 만들면 안 되게 되어 있었다. 그건 전투에 방해가 되니까. 하지만 이따금 누가 아버지인지가 분명할 때가 있었다. 나는 내 아들 두 명을 알고 있었다. 그 애들도 나, 대령님이 자기 아버지인 걸 안다고 확신했다. 둘이 그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게 그래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애들이 내 아들인 걸 아는 이유는 내가 작고 못생긴 남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사람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대령이 되었는지 궁금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양쪽에서 남자애들을 훔칠 뿐만 아니라 양쪽과 성교했다. 나는 마을에 내려갈 때 항상 우나를 찾았다.)

 

무리를 위해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 우리 본부 입구에 걸린 문구였다. 밑에는 잊지 말자라는 문구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어쩌면 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우리 중에는 이 전투가 시작된 진짜 이유가 잊힌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미움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그래서 우리와 그들이 지난 잔학 행위의 이름으로 더 잔학한 짓들을 벌이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이게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이 분쟁의 이유를 잊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들 또한 잊었다. 우리 병영 안의 벽들은 어머니 농담과 어머니 그림들로 뒤덮였다. 어머니의 몸들은 부드럽고 매혹적이었다. ‘베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젖꼭지베개라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렇게 부름으로써 서로를 모욕했다.

 

 

계곡 바닥은 여자들의 마을로 가득했다. 25킬로미터 정도마다 하나씩이었다. 양쪽은 산맥이었다. 반대쪽에 있는 적들의 산맥은 보라 산맥이라 불렸다. 우리 쪽 산맥은 눈 산맥이라 불렸다. 기후는 우리 쪽 산맥이 저쪽보다 안 좋았다. 우리는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가끔 우리를 우박들또는 번개들이라 불렀다. 우리는 우박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적의 산맥에는 여기처럼 동굴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늘 애들에게 저쪽이 아니라 우리에게 납치돼서 너희는 운이 좋은 거라고 말했다.

 

 

내가 처음 납치됐을 때, 어머니들이 우리를 되찾기 위해 동굴까지 올라왔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일부는 무기를 가지고 왔다. 가소로운 무기들이었다. 물론 내 어머니도 거기, 제일 앞줄에 서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저 일을 다 꾸몄을 것이다. 어머니의 얼굴은 빨갰고 결의로 가득 차 일그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내게로 왔다. 나는 어머니가 두려웠다. 우리 남자애들은 막사 뒤쪽으로 달아났고, 분대장이 우리 앞에 섰다. 다른 남자들이 문간을 막았다. 어머니들이 물러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우리는 어머니들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려 하지 않았다. 다음번 남자애들을 수확하려면 그들이 필요했다.

 

며칠 뒤에 내 어머니가 다시 왔다. 달빛을 틈타 혼자 살그머니. 야간등 불빛으로 나를 찾은 어머니는 잠자리 위로 몸을 숙이고는 내 얼굴을 후 불었다. 처음에 나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그러다 내 가슴에 닿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느꼈고 익숙한 벌새 모양 핀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어머니는 내게 입을 맞췄다. 나는 얼어붙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이가 들었더라면 상대를 질식시키고 목울대를 차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다. 난 어머니라는 걸 알아차리기도 전에 상대를 죽여 버렸을 것이다.) 어머니가 날 분대에서 빼내 갔으면 어쩔 뻔했나? 내 군복을 가져갔으면? (그때쯤 나는 금색 단추가 달린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상의를 갖고 있었다. 난 이미 총 쏘는 법을 배웠다. 늘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난 내 무리에서 처음으로 명사수 메달을 받았다. 사람들은 내가 타고났다고 했다. 난 내 작은 체구를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어머니가 왔던 밤, 어머니는 날 들어 팔로 안았다. 그때 어머니의 가슴에 묻힌 채 나는 온갖 베개 농담들을 생각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나만큼이나 어린 데다 고작 해봐야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클 뿐인 동지들이 날 도우러 왔다. 그들은 뭐가 됐든 잡히는 대로 무기를 삼았다. 대부분은 자기 군화였다. (천만다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단검을 지급받기 전이었다.) 내 어머니는 애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애들이 자길 때리게 놔두었다. 나는 어머니가 맞받아치고 도망가고 스스로를 구하기를 바랐다. 마침내 어머니가 도망가고 난 뒤에야 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스트레스가 심할 때마다 그러는 경향이 있다. 조심해야 한다. 대령이라는 사람이 턱에 피를 묻히고 돌아다니는 건 남부끄러운 일이니까.

 

 

아무튼 그때, 우리는 남자애들을 훔치러 나갔었다. 좀 머리가 굵은 애들과 어린 남자들로 이뤄진 부대였다. 제일 나이가 많은 놈이 아마 스물둘, 내 나이의 반밖에 안 되었다. 나는 그들 모두를 애들로 생각했다. 면전에서는 절대 애들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지휘를 맡았다. 그때 열일곱 살인 내 아들 홉이 우리 부대에 있었다.

 

하지만 계곡으로 살금살금 내려가자마자 우리는 상황이 작년과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들이 담을 세웠다. 어머니들이 마을을 요새로 만들었다.

 

나는 즉시 계획을 수정했다. 나는 그날이 애들의 날이 아니라 성교의 날이라고 결정했다. 훌륭한 군사전략이었다. ‘언제나 급작스러운 계획 변경에 대비하라.’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우나를 떠올렸다. 그곳은 그녀가 사는 마을이었다. 휘하의 장병들 역시도 행복해 보였다. 그 일은 훨씬 쉬울 뿐만 아니라 새로 수확한 남자애들을 모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지난번 성교의 날에 내려왔을 때 나는 우나를 찾았다. 아니 그녀가 나를 찾았다. 그녀는 보통 그랬다. 성교의 날에 찾기에는 좀 나이가 들었지만 나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성교 후에 나는 우나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했다. 새는 지붕을 수리하고 부러진 탁자 다리를 고치고그러고는 또 그녀를 취했다. 그럴 필요도 없는 데다 분대 전체를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었는데도. 다른 애들에게 숱한 외설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어찌 됐든 나는 몹시 행복한 기분이었다.

 

가끔 애들의 날에 나는 고민했다. 남자애들과 함께 우나를 훔치면 어떻게 될까? 우나를 남자애처럼 입혀서 우리 쪽 산의 어딘가 비밀 은신처에다 데려다 놓으면? 여긴 사용하지 않는 동굴이 널렸으니까. 한때는 우리 군대가 모든 동굴을 다 채운 적도 있었지만, 아주 오래전 얘기였다. 우리와 우리의 적은 모두 숫자가 감소하고 있는 듯했다. 해가 갈수록 적당한 남자애들의 수가 점점 줄었다.

 

내가 못생기고 작은데도 우나는 언제나 날 보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내 키는 군인으로서 불리하지만, 지금은 내가 계급이 있으니 다소 보상이 된다 해도, 내 외모는누가 내 아들인지 알아본 것도 그들이 작고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둘 다. 그들에게는 참 안 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대령이 될 때까지 줄곧 어떻게든 잘 대처해왔다.)

 

우나는 내 첫 상대였다. 나 또한 그녀의 첫 상대였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여자가 되는 시작을 나로 해야 했다니. 우리는 거의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무얼 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나중에 그녀는 울었다. 나도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딱히 분대에 있으면서 배운 건 아니었다. 난 그들이 내 어머니한테서 날 납치하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다. 나는 납치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와서 날 데려가기를 기다리며 아주 멀리 관목 숲 속까지 돌아다녔다.

 

허리 아래쪽이 아프기 시작한 건 내가 저 애들 중 하나였을 때였다. 적과 전투를 벌이다 부상을 당한 게 아니라 우리끼리 싸우다 입은 부상 때문이었다. 우리 분대장들은 우리가 서로 싸우는 걸 아주 좋아했다. 서로 싸우지 않으면 물러지고 게을러지게 돼 있었다. 나는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에 대해 계속 입을 닫았다. 난 다쳤을 때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그처럼 쉽게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날 돌려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내가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이 습격하러 갈 때 날 끼워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 나중인 지금도 내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대령이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난 절대 절룩거리지 않았다. 때로는 그 때문에 가뜩이나 가쁜 숨이 더 가빠지더라도. 지금까지는 누구도 눈치챈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모였다. 내가 말했다. “젖꼭지와 베개 제군들.” 모두가 웃었다. “저들이 남자들을 막아낸 적이 있었나? 이 담이 얼마나 여자다운지 한 번 봐. 우리가 타고 올라가면 부스러지겠군.” 나는 지팡이 끝으로 담을 긁었다. (대령으로서 나는 원할 때 단장 대신 지팡이를 들 수 있었다.)

 

우리는 여자들이 성교의 날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지 애들의 날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우리는 후자 쪽이길 희망했다.

 

갈고리 달린 밧줄을 든 가장 작은 아이를 밀어 올렸다. 나머지가 뒤따랐다.

 

난 가장 작은 아이이곤 했다. 나는 늘 맨 먼저, 제일 높이 올랐다. 그런 때 나는 내 체구가 고마웠다. 그걸로 숱한 메달을 땄다. 하지만 난 그런 메달을 하나도 달지 않았다. 나는 애들과 하나가 되는 걸 좋아했다. 작으면서 대령이라는 건 어떤 애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애들이 내 망가진 다리에 대해서 안다면 난 장애를 가지고도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더욱 좋은 본보기가 될 터였다.

 

 

우리는 담을 타다가 어느 텃밭 가장자리에 뛰어내렸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토마토와 딸기와 호박과 콩 포기를 피해 걸었고, 그런 뒤에는 나무딸기 관목들이 지나가는 우리 바지를 찢고 군화 끈을 잡아당겼다. 나무딸기들 바로 앞에 철조망이 한 줄 놓여 있었다. 밟아 누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는 여자들이 이처럼 절실하게 우리를 막고 싶어 한다는 게 슬펐다. 나는 의아했다. 우나는 내가 안 오기를 바라는 걸까? 우리가 어머니들만큼이나 단호하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 우나가 걸린 문제라면, 적어도 나는 그랬다.

 

 

우나는 언제나 내게 다정했다. 나는 그녀가 왜 나를 좋아하는지 자주 궁금해했다. 내가 견장에 은을 달고 은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를 든 대령이니 누군가가 지금의 나를 좋아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는 내가 왜소한 소년에 불과했을 때부터 나를 좋아해 주었다. 그녀 역시도 작았다. 나는 늘 우나와 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딱 하나만 빼면. 그녀는 아름다웠다.

 

 

우리는 몰려 들어가서는 방향을 틀어 각자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향했다. 어린놈들은 남은 곳, 보통은 다른 어린 것들에게로 갔다. 그러나 그러다, 어럽쇼, 우리는 다시 몰려나와 우물과 돌 벤치들과 유일한 나무가 있는 이 마을의 중앙 광장에 갔다. 나무 주위에는 아기들의 무덤이 있었다. 벤치들은 성묘용 벤치였다. 우리는 벤치나 땅바닥에 앉았다. 마을엔 아무도 없었다. 여자고 여자애고 아기고 간에 한 명도 없었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우리는 중앙 광장에서 나와 이동했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니까. 우리는 정원이 딸린 집 뒤에 숨었다. 우리 적들이 담 위에 죽 늘어서 있었다. 매복에 당한 것이다. 우리는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는 소총을 들고 있지 않았고, 가진 거라곤 나와 내 부관이 가진 권총 두 자루뿐이었다. 전투를 벌일 계획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단도가 있긴 했다.

 

담 위에 늘어선 자들이 그다지 사격을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들에게 좋은 사격이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줄 참이었다. 하지만 그때 부관이 소리쳤다. “잠깐! 쏘지 마십시오. 어머니들입니다!”

 

담 위에 늘어선 자들은 모두 여자였다! 총을 들고 담벼락 색과 똑같은 엄폐물 뒤에 숨은 자들이. 그런 일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들이 쏜 총알은 대체로 빗나갔는데, 나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많은 딸과 그들 자신의 아버지들이 아닌가. 나는 누가 우나인지 궁금했다.

 

여자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가 나 있었다. 아마 우리와 우리의 적들에게 사내애들을 뺏기는 데 지쳤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어느 쪽 편을 들 수 없는 게 당연할 터.

 

우리 애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투였다. 하지만 그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번엔 진짜 사격이었다. 훌륭한 사격이기도 했다. 여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사격술을 가르쳐준 남자가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애들이 경악했다. 자기 어머니들 중 누군가가, 아니면 자기 누이들 중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총을 쏘았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실제 상황이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짜로 해를 입힌 것 이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죽인 건 내 부관이었다. 한 발의 냉혹한 총알이 머리를 뚫었다. 그 아이의 처지를 생각하면 적어도 고통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는 의례용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난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난 그 화려하고 무거운 모자를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실제로는 나를 죽이려다가 누가 나인지 알 수 없어서 차선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우나는 누가 나인지 알았을 것이다.

 

애들이 뿔뿔이 흩어져 애도의 나무가 있는 중앙 광장으로 다시 몰려갔다. 거기는 여자들한테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아서 부관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의 단검과 권총을 챙겼다. 그러고 나는 어떻게 할지 지시하기 위해 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절룩거리며. 나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확실하게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나의 미래에 관해서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강등될 소지가 다분했다. 여자들에게 사로잡히다니, 우리 스무 명 전부가. 효과적이고 유능한 전술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 경력은 날아갈 게 뻔했다.

 

난 우리 편이 우리를 구하러 올 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정도의 감각은 있기를 바랐다. 심하게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난 그들이 싸우는 동시에 앞으로의 용도를 위해 여자들을 남겨두려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때 다시 총성이 들렸다. 담 근처 오두막 뒤에서 내다보니 여자들이 총을 바깥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처음에 우리는 우리 편이 우리를 구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우리 편의 함성이 아니었고 우리 편의 북소리가 아니었다. 담 안쪽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중 일부가 지붕 위에 올라갔다. 위험은 없었다. 모든 소총이 바깥쪽을 향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도 우리 애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 말 없이 지붕에 도전했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붉은색과 푸른색 깃발이 아니었다. 저들이 쓰는 흉한 녹색과 흰색 깃발이었다. 우리가 포획된 틈을 노리고 온 적들이었다. 우리는 나가서 우리 남자들끼리 싸울 수 있도록 여자들이 길을 비켜줬으면 하고 바랐다. 저 여자들은 모든 전투 규정을 어기고 있었다. 여자들은 담 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누구도 그들을 제대로 쏠 수 없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고 또 계속되었다. 우리는 지켜보는 데 지쳐서 광장으로 물러났다. 우리는 집집마다 주방을 뒤져 음식을 조달했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것보다 나았다. 음식 맛이 너무 좋아서 우리는 저 시끄러운 소리 없이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여자들이 좀 가만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저들은 대체 어디서 저 무기들을 얻었을까? 우리 군수품 저장 동굴을 발견한 게 틀림없었다. 아마 우리의 적들 것까지도.

 

 

여자들은 정말로 잘 싸웠다. 황혼녘이 되자 우리 적들은 자기들 산으로 도망가고, 여자들은 여전히 담 위에 남았다. 그 위에서 밤을 새울 작정인 것 같았다. 폭이 넓은 담이었다. 내가 애들한테 말한 것처럼 엉성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잠자리를 찾았다. 어느 것이나 우리가 보통 쓰는 요보다 나았다. 나는 우나의 오두막에 가서 성교하려고 했던 자리에 누웠다.

 

고양이들이 돌아다니며 구슬피 울었다. 온갖 종류의 것들이 여자들과 함께 살았다. 염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집에나 들어갔다. 모든 동물이 사방에서 먹을 걸 달라고 했다. 여자들처럼 우리 애들도 마음이 여렸다. 애들은 다가오는 모든 생물을 먹였다. 나도 그런다는 걸,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난 이 모든 상황에 슬퍼졌다. 걱정이 되었다. 그저 우나를 품에 안을 수만 있다면 잠들 수 있을 텐데. 난 한밤중에 몰래 내 품으로 파고드는 그녀의 환상에 사로잡혔다. 우리가 성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애들은 사태가 어찌 돼 가는지 보려고 다시 지붕에 올랐다. 애들은 여자들이 엄폐물로 가린 채 담 위에 죽 누워 있으며 담 너머 멀리에 죽은 적 몇 명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가 올라가서 직접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애들에게 내가 자신들과 같은 위험을 무릅쓴다는 걸 보여주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난 애들을 내려보내고 그 자리에 서서 담 위에 있는 여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소총 몇 정이 날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난 영웅처럼 서 있었다. 난 그들에게 쏴 보라고 도전하고 있었다. 난 서두르지도 않을 참이었다. 나는 여자들이 좀 띄엄띄엄 있는 구역을 살펴보고는 메모장을(모든 지휘관은 메모장을 패용한다) 꺼내 그림을 그렸다. 나는 시간을 끌면서 담 전체의 지도를 만들었다.

 

권총을 꺼내 그들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한 명을 골라 쏠 수도 있었지만, 높은 곳에 있다는 이점을 취하는 건 그다지 남자답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이 남자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들이 남자답지 못한 짓을 했다. 그들이 나를 쏘았다. 내 다리를. 내 성한 다리를. 난 쓰러졌다. 지붕 위에 납작하게. 처음에는 충격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는 거라곤 설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고서야 나는 피를 보았다.

 

저들이 담 위에 있긴 하지만 나보다는 낮은 위치였다. 내가 자세를 낮추고 있는 한, 여자들은 날 볼 수 없었다. 난 지붕 끝으로 기어 갔고 애들이 날 도왔다. 애들이 날 우나의 침대로 다시 데려갔다. 나는 막 기절하거나 토할 것 같았고, 내가 싼 똥으로 범벅이 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애들이 날 보지 말았으면 했다. 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또는 작은 체구 때문에 언제나 용기와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애들 중에 홉이 있어서 내 팔을 자기 어깨에 두르고 날 도와주었다. 난 고통 때문에 몸을 구부렸지만 신음은 꾹 참았다.

 

대령님? 대령님?”

 

난 괜찮아. 괜찮을 거야. .”

 

난 그에게 진짜 내 아들이 맞느냐고 물어봤으면 싶었다. 간혹 여자들이 애들한테 일러주는 일이 있다니까.

 

저희가 옆에.”

 

아니. . 당장. 그리고 문을 닫아.”

 

애들이 제때 나갔다. 나는 침대 옆에다 토하고 다시 누웠다. 우나의 베개는 온통 땀범벅이 되었고, 퀼트 이불이 어떻게 됐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나는 고통을 더는 약물을 만들 줄 알았다. 나는 이 집 천장에 달린 약초들 중에서 어느 것이 내게 도움이 될지 알았으면 싶었다. 하지만 알아봤자 저것들에 닿을 수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반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다리 상태를 확인하려고 일어나 앉을 때마다 욕지기를 느끼고 다시 누워야 했다. 앞으로 내가 공격이 됐든 남자애들을 잡으러 가는 습격이 됐든 성교의 날이 됐든 뭐라도 이끌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늘 장군이 되면 (그리고 최근에 나는 틀림없이 장군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즉 우리가 우월하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사 말고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애들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들어 와.” , 그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고, 다음에는 말이라기보다는 신음에 더 가까운 소리가 났다. 애들은 담에 있는 여자들이 불렀다고 말했다. 그들이 대변인을 들여보내고 싶어 한다고. 애들은 그 대변인이라는 남자를 들어오게 한 다음 우리가 모두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인질로 잡고 싶어 했다.

 

나는 애들에게 그 여자들은 아마 여자를 들여보낼 거라고 말했다.

 

그게 애들의 마음에 걸렸다. 분명 고문이나 살해를 염두에 뒀을 애들 얼굴에는 이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들에게 좋다고 말해.” 나는 말했다.

 

이곳 냄새가 지독할 게 틀림없었다. 나한테서 나는 냄새가 나한테조차도 끔찍했으니까. 내가 싼 똥 더미에 앉아 있는 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난 할 수 있는 한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난 의식을 잃지 않기를, 도중에 토하지 않기를 바라며 단도를 칼집에서 뽑아 베개 밑에 숨겼다.

 

처음에는 애들이 맞았다고, 대변인은 남자라고, 분명히 남자라고 생각했다. 저들은 어디서 이 남자를 찾았을까? 그리고 이 남자는 우리 편 출신일까, 아니면 저쪽 편 출신일까? 그건 중요한 문제였다.

 

색깔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그는 온통 황갈색과 회색 옷을 입었다. 기장도 전혀 달고 있지 않아서 계급도 알 수 없었다. 그는 편하게 서 있었다. 편한 걸 넘어 대령 앞에 서서도 완전히 느긋했다.

 

하지만 그때믿을 수가 없었다, 우나였다. 알아봤어야 했는데. 부츠까지 몽땅 남자처럼 차려입은 우나였다. 기쁨이 쓸고 간 뒤에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애들에게 문을 닫고 방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난 우나에게 손을 뻗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멈췄다.

 

네가 일부러 내 다리를 쐈구나, 그렇지! 내 온전한 다리를!”

 

난 성치 않은 쪽을 쏠 생각이었어.”

 

우나가 창문을 죄다 열더니 문도 열고 애들을 멀리 내쫓았다.

 

어디 봐.”

 

그녀는 상냥했다. 내가 알던 우나 그대로였다.

 

총알을 빼내야겠어. 하지만 먼저 씻는 것부터.” 그녀가 고통에 잘 듣는 잎을 건네며 씹으라고 말했다.

 

그녀가 내 쪽으로 바싹 몸을 숙이자 머리카락이 모자에서 비어져 나와 우리 성교의 날에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을 쓸고 입안으로 들어갔다. 난 그녀의 가슴을 만지려 손을 뻗었지만, 우나는 내 손을 밀쳐버렸다.

 

영광을 위해서라면 난 그 여자를, 여자들의 지도자인 그 여자를 죽여야 했다. 그러면 난 실패작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난 곧바로 장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나가 똥이 묻은 퀼트 이불을 걷어내자마자 제일 먼저 내 단도가 드러났다. 그녀는 단도를 가져다 주방용 식칼을 넣어두는 서랍에 넣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우리는 다 안다. 너무나도 잘 아는 대로)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사랑이 어떻게 최고의 계획들을 망칠 수 있는지. 그걸 생각하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생각했던 계획들을 망치고 싶어 했다. 내 말은, 만약 그녀가 지도자라면 난 단도 없이도 그때 당장, 그녀가 몸을 숙이고 있을 때 처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저들이 훌륭한 사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남자와 대등하게 몸싸움을 할 수 있을까? 설사 남자가 부상을 입었다 해도.

 

난 모든 사람 중에서 그래도 너만은 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너를 골랐어.”

 

내가 다시는 성교의 날에 내려오지 못할 거라는 건 알겠지.”

 

그럼 돌아가지 마. 여기 있으면서 성교해.”

 

난 널 남자처럼 입혀서 산으로 데려가는 생각을 종종 했어. 점찍어 놓은 장소도 있어.”

 

여기 있어. 다들 여기 있게 하고, 여자들처럼 살게 해.”

 

난 그런 말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대령이 되는 것 말고 네가 할 줄 아는 건 뭐람?”

 

그녀는 날 씻기고 침대보를 갈고는 이불과 내 옷가지들을 문밖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내 다리에서 총알을 빼냈다. 난 그녀가 씹으라고 준 잎들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어서 고통이 둔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붕대를 감아주고 깨끗한 담요를 덮어준 다음 잠시 내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다리를 척 벌리고 똑바로 섰다. 그녀는 스스로를 증명할 준비가 된 우리 애들처럼 보였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이런 상황은 끝나야 하고, 우리는 끝낼 거야. 이런 식으로 안 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지금까지 늘 이래 왔잖아.”

 

넌 우리 대변인이 될 수 있어.”

 

저 여자는 어떻게 저런 걸 제안할 수가 있지? 나는 말했다. “베개, 젖꼭지들의 대변인이겠지.”

 

어머니들이 무얼 할 줄 아는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그들은 어떤 규칙도 지키지 않았다.

 

대답이 라면, 우린 더 이상 남자애를 갖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내려와서 원하는 대로 성교를 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남자애들은 없어. 우리가 죽여 버릴 거니까.”

 

그럴 리가. 그러지 못할 거야. 넌 아냐, 우나.”

 

해가 갈수록 남자애들이 적어지는 거 못 느꼈어? 벌써 많은 이들이 그러고 있어.”

 

하지만 난 명료하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고통이 심했고 그녀가 준 잎들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우나도 그걸 알았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손을 잡았다. “그냥 쉬어.” 그녀가 말했다. 그런 발상들을 머릿속에 넣은 채 내가 어떻게 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규정이란 게 있어.”

 

. 여자들은 규정 따위 신경 쓰지 않아. 너도 알 거야.”

 

나와 같이 돌아가자.” 난 그녀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그녀가 순순히 따라주었다.

 

그렇게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내 팔로 그녀를 안고 있는 건 얼마나 기분이 좋은 일이었던가. “비밀 장소가 있어. 거긴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 않아.”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이봐요, 대령님!”

 

제발 날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러고는 난우리로서는 말해서는 안 되는,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 그건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서나 오갈 말이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가 아니라. “사랑해.”

 

그녀는 다시 몸을 숙이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내 아래턱을 닦았다. “그렇게 입술을 깨물지 않도록 해 봐.”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나한테는 중요해.”

 

나는.” 다른 말도 이미 해버렸는데 못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난 너와 같이 있을 때만 성교의 날이 좋아.”

나는 그녀도 나에 대해서 같은 느낌인지 궁금했다. 감히 물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내 아들이홉은 그녀와 나의 아들인가? 난 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홉에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애에게 다른 애들에 비해 딱히 눈길을 더 주지도 않았다. 여자들이 담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이번이 그 애의 첫 성교의 날이 되었을 것이다.

 

쉬어.” 그녀가 말했다. “얘기는 나중에 하고.”

 

우리한테만 그런 거야? 아니면 적들한테도 똑같은 얘길 하는 거야? 이러다 놈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어. 그러면 다 네 탓이 될 거야.”

 

생각은 그만해.”

 

양쪽에서 데려갈 남자애들이 더는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 대체?

 

어떻게 될까?”

 

그녀가 씹는 잎들을 더 주었다. 잎들이 썼다. 앞서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나는 금세 더 졸린 기분이 되었다.

 

 

나는 전체 애들 중에서 꼴찌가 되는 꿈을 꾸었다. 내내. 나는 서둘러 어떤 곳으로 가야 하지만 나로서는 절대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담이 있었다. 게다가 다리가 둘 다 있지도 않았다. 난 몸통뿐이었다. 여자들이 나를 지켜보았다. 여자들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계곡 바닥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거기 누운 채 함성을 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고, 우나가 나를 붙들어 눕혔다. 홉이 같이 있으면서 그녀를 도왔다. 다른 애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문간에 서 있었다.

 

담요와 베개는 이미 바닥에 내던져져 있었고 나는 막 침대 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나의 뺨에 길게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분명 내가 한 짓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나는 여전히 꿈속에 있는 듯했다. 나는 우나를 다시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를 단단히 안고서 나는 홉을 향해 또 손을 뻗었다. 불쌍한 내 못생긴 아들. 난 물어서는 안 되는 걸 물었다. “말해줘, 홉은 나와 너의 아들이야?”

 

홉은 내가 그런 걸 물었다는 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나는 몸을 빼고 일어섰다. 그녀는 마치 내 애들 중 하나라도 되는 것처럼 대답했다. “대령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대령님께서 그런 걸 물으실 수 있습니까?” 그러고는 내가 했던 말을 고대로 다시 돌려주었다. “지금까지 늘 이래 왔잖아.”

 

미안해. 미안해.”

 

, 제발 그 미안하단 소리 좀 그만해!”

 

그녀는 애들을 문간에서 몰아냈지만 홉은 그냥 놔두었다. 둘이서 같이 침대를 다시 정돈했다. 둘이서 같이 내게 먹일 묽은 죽과 둘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홉은 이곳에서 편안해 보였다. 사실이야. 나는 확신했다. 저 애는 내 아들이야.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간절한 생각들이, 이 모든 궁금증이 다 우나가 씹으라고 줬던 잎들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 더는 나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

 

하지만 뭔가가 더 있었다. 아직 내 다리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심각한 부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성채로 올라갈 수 없다면 집으로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경력이 만신창이가 됐다 하더라도, 이래선 안 된다. 이곳에 남아서 성교 상대자로서 여생을 보내라는 제안에 유혹당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걸 생각할 수도 없었다. 홉을 성채로 돌려보내 상황을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그 애가 탈출하려다 발각되면, 우나는 여자들더러 그 애를 쏴서 죽이라고 할까?

 

나는 홉에게 귓속말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홉이 혼자 있는 때를 노렸다. 우나가 바깥 화장실로 가고 나서야 기회가 왔다. “성채로 돌아가. 오늘 밤 담을 넘어. 달이 없을 거야.” 난 홉에게 내가 그린 지도를 보여주고 여자들이 좀 드문드문 있을 거라 짐작되는 지점을 알려주었다. 홉에게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우린 그런 말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침에 나는 우나에게 분대장들을 들여보내 달라고 말했다. 나는 고통과 땀에 절었고, 수염이 가려웠다. 나는 우나에게 날 닦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하듯이 날 대했다. 전에 내 어머니가 그렇게 했을 때, 난 몸을 뺐다. 난 어머니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곤 했다. 나는 특히 어머니가 날 안거나 뽀뽀하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어머니적인 것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싶었다.

 

애들이 다 지저분해 보였다. 우리는 깔끔한 것을, 매일 면도를 하고 머리털을 단정하게 자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는데. 우리의 적들도 우리만큼이나 말쑥했다. 나는 그들이 오늘 공격을 해 와서 우리가 이처럼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있는 걸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홉이 없는 걸 보고 기뻤다.

 

평소 때의 유머 감각을 되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말했다. “베개들, 젖꼭지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아이인 척하기에 나는 너무 불편한 상태였다.

 

그사이 건강을 좀 회복했으면 했는데. 애들은 이미 불안해하고 있었다. 내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담을 습격할 것이다. 나는 애들에게 지도를 보여주고 지키는 사람이 적은 지점들을 알려주었다. 내가 우나를 움켜잡았다. 양 손목을 다. “제군들, 우리에겐 성벽을 파괴할 무기가 필요할 거야.”

 

여기 계곡 바닥에서는 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은 개울 주변을 제외하면 사막이지만 각 마을의 중앙 광장에는 저들이 함께 가꾸는 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여기처럼 나무 주변에는 언제나 아기 무덤들이 있었다. 다른 마을들은 대부분이 미루나무였지만 이곳에 있는 나무는 떡갈나무였다. 하도 나이 먹은 나무라 그 나무가 이 마을이 세워지기 전부터 여기 있었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마을이 그 나무를 중심으로 나중에 세워졌다고 생각했다.

 

그 나무를 베. 담을 부숴.” 난 그들에게 말했다. “성채로 돌아가. 나를 기다리느라 머뭇거리지 말고. 장군들한테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고 해. 남자애들을 위해서건 성교를 위해서건. 가서 나는 더 이상 우리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해.”

 

여자들은 나무를 찍어 넘기는 애들을 쏠 수 없을 것이다. 그 나무는 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으니까.

 

나무를 찍는 소리가 들리자 여자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이 하던 일을 멈췄지만, 잠시뿐이었다. 난 그들이 다시 더욱 힘차게 나무를 찍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 내 옆에서 우나도 울부짖었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나는 계속 그녀를 움켜잡고 버텼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저건 죽은 남자애들의 나무야.”

 

나는 손을 놔주었다.

 

저기 묻힌 아기들은 다 남자애들이야. 우리 애들도 있어.”

 

그 새로운 정보가 내 사고를 방해하게 그냥 둬서는 안 되었다. 난 우리 애들의 안전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럼, 우리를 보내줘.”

 

저 애들한테 멈추라고 해.”

 

저 나무 때문에 우리를 놔주겠다고?”

 

그럴 거야.”

 

난 명령을 내렸다.

 

 

여자들이 담에서 물러났고 심지어 사다리까지 제공해주었다. 나는 애들에게 가라고 말했다. 애들이 날 떠메고 돌아갈 방도는 없었고, 내가 다시 성채까지 올라갈 방도도 없었다.

 

애들은 금방 사라졌고, 마지막 피리 소리와 마지막 승리의 북소리까지 (우리는 승리했든 아니든 늘 승리한 것처럼 성채로 행진했다) 사라졌다. 멀어지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난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어머니들이 순식간에 담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다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우나가 쿵쿵거리며 들이닥쳤다.

 

이번엔 뭐야?”

 

홉 얘기야. 네 적들이, 네 적들이 그 애를 너희 산 밑에다 던져 놨어.”

 

난 우나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죽었군.”

 

당연히 죽었지. 너희들은 모두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녀는 홉의 죽음을 내 탓으로 여겼다. “내 탓이야.”

 

널 증오해. 너희 전부를 증오해.”

 

난 우리가 많은 남자애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더는 믿지 않았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경고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대변인이 되고 싶었다. 내게 기회란 게 있을 거 같지 않았지만.

 

여자들은 날 어떻게 할 작정이지?”

 

넌 언제나 친절했어. 나도 너한테 그보다 덜하게 대하진 않을 거야.”

 

내가 무슨 소용일까? 여기서 여자들의 아버지로 머무는 것 말고 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나같이 작고 못생기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을 저 계집아이들그 애들은 하나같이 피가 날 때까지 아랫입술을 깨물 것이다.

 

 

캐롤 엠쉬윌러(Carol Emshwiller, 19212019)

 

캐롤 엠쉬윌러는 SF 단편과 장편 소설에 모두 능한 미국 작가였다. 그녀의 작품은 네뷸러상에서부터 필립 K. 딕 상까지 아우르는 많은 상을 받으며 알려졌다. 2005년에는 세계판타지 공로상을 받았다. 어슐러 K. 르귄은 그녀를 대단한 이야기꾼에다 놀라운 마술적 사실주의자이며 소설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복잡하고, 가장 일관된 페미니즘적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가라고 칭했다. 2011년 그녀의 단편들을 두 권의 책으로 엮은 캐롤 엠쉬윌러 단편선 I, II가 출간되었다. <애들>은 극단으로 치달은 성 역할 개념을 소재로 깜짝 놀랄 만한 결론을 도출하여 화제가 되었다. 2003<사이픽션>에 처음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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