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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F 완전사회. 5] 탐욕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by 박해울

아작 미디어

by arzak 2020. 10. 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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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유행이 계속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1회용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식당에서의 식사를 자제하고 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용기가 쌓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고 보면 배달 음식의 포장 용기뿐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 시절 이전에 구매했던 가전제품이나 문구류, 옷들도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리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우리는 5분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각각의 물건을 만드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도, 제품을 가공하면서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도, 바다와 대지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척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어느 수준에 도달한다고 하여도 멈추지 않고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게 한다. 나는 종종 그 욕심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한다.

 

인간의 욕심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나는 소설이 하나 있다. 바로 체코의 SF 작가 카렐 차페크가 1936년도에 발표한 장편소설 《도롱뇽과의 전쟁》이다.

 

 

바야흐로 진주가 한창 인기 있던 시절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초반의 분위기는 낭만적인 모험 소설이다. 반 토흐 선장은 수마트라의 ‘데블 베이’에 진주조개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고, 곧 두 다리로 걷는 키 작은 야생 도롱뇽들을 만난다. 그는 도롱뇽에게 조개를 까먹을 수 있는 나이프를 쥐여 주고 진주를 얻는다. 그는 이 사건을 신기한 순간으로만 여기지 않고 도롱뇽을 진주조개가 있는 다른 섬으로 보내게 된다. 작은 섬에서 조용히 살던 도롱뇽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도롱뇽들은 수중 드릴과 폭발물을 들고 인류 문명의 번영을 위해 일한다. 인간은 도롱뇽에게 숫자와 언어, 기계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고 그들의 전통을 말살한다. 노동이 필요한 곳에 전폭적으로 도롱뇽을 이용하면서도, 공존은 극구 거부한다. 도롱뇽들은 인도적으로 거래되지 않으며,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쉽게 폐기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낸다.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다 보면, ‘도대체 언제 전쟁이 시작되지?’ 하고 의문이 든다. 도롱뇽의 관점에서 인류의 발전을 위해 일하며 고통 받는 장면들은 각 도롱뇽에게 전쟁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만큼 힘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에서 인간과 도롱뇽이 전면전을 펼치는 부분은 사실 마지막의 몇십 쪽에 불과하다.

 

인간과 도롱뇽, 각 진영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한 명씩 자신의 시점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신념대로 행동하여 맞부딪치는 전개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극소수의 예외를 빼고 거의 인간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상황을 설명하는 화자가 여러 번 바뀌지만, 화자는 전부 인간이다. 이 소설에 남겨진 정보를 조합하여 세계를 이해해본다 한들 결국, 독자는 인간의 편협한 시점으로만 이 사건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공존의 문제다

 

이 책에서 인류와 갈등을 빚는 ‘도롱뇽’을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단어 그대로 ‘도롱뇽’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도롱뇽’은 다양한 존재를 은유한다.

 

도롱뇽을 보고 인종이나 소수자 문제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인류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소수자 배척과 차별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 대 인간을 떠나, 인간과 인간이 파괴한 자연과의 분투기로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지구의 생태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인간은 언어와 문자를 쓰면서 소통하고, 도구를 사용하여 살아남았다. 하지만 인류의 번성은 인간의 우월한 신체적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번성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고, 타 생물을 멸종시켰다. 인간의 탐욕이 아니었다면 도롱뇽이 인간을 위해 노동할 일도,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한 종족의 운명이 바뀌는 경우는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소수자의 차별과 배척에 대한 비유로 여기든, 인간과 자연의 분투기라고 여기든, 어쨌든 《도롱뇽과의 전쟁》은 우리와 우리가 아닌 타자와의 ‘공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게 한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지구의 환경을 마음대로 쓸 권리는 없는데도, 함께 사는 다른 생물을 착취한다. 하지만 인간은 매 순간 그것을 모르고 자신이 지구에 사는 생물 중 최고라고 여기며 무자비하게 지구를 오염시킨다.

조금 더 손쉽고 간단하게 욕망을 이루려는 생각이 주변을 황폐하게 한다. 우리가 하루에 사용하는 1회용품을 생각해보라.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유조선의 기름,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코끼리들, 쾌락을 위한 맹수 사냥, 녹아가는 극지방은 또 어떤가?

 

이렇게 미래를 외면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현실의 우리도 곧 《도롱뇽과의 전쟁》처럼 파국적인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욕심은 도대체 어떤 재해를 불러올 것인가. 탐욕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박해울, 소설가

 

단국대학교에서 문예창작 학사와 석사를 전공하였다. 대학 재학 중인 2012년에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기파 2018년 제3회 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누전차단기와 PE 밸브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캐릭터와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따라가며 즐길 수 있으면서도, 책장을 덮고 나면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글을 쓰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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