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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F 완전사회. 7] 기술이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더라도 by 심너울

아작 미디어

by arzak 2020. 11. 2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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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더라도

 

기술이 우리의 모든 상처를 낫게 하리라고 굳게 믿던 적이 있었다. 진보한 기술이 모든 위험과 과로를 세상에서 일소하고 낙원을 구현하리라 생각했다. 과거의 SF 소설들은 내가 이런 가치관을 구축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마법과 다를 바 없는 기술로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들을 목격했으니까.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건 말건 사람들의 삶은 팍팍했다. 더 팍팍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얼마 전, 택배 노동자가 또 한 명 숨졌다. 올해 사망한 택배 노동자가 벌써 10명이라고 한다. 이번에 사망한 채로 발견된 김모 씨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그가 숨지기 나흘 전 새벽 4시에 동료 택배 기사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수백 개의 물량을 감당하느라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그의 고뇌가 메시지에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노조 관계자는 그가 1시간에 30개를 배송할 수 있었고, 420개의 물량을 감당해야 했으니 배송에만 꼬박 12시간을 소모해야 했으리라고 설명했다. 그의 하루하루를 감히 상상하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시도 자체가 기만처럼 느껴졌다.

 

나는 일주일 넘게 허브에 묶여 있던 내 택배를 떠올렸다. 왜 택배가 일주일 동안 안 오는지 궁금해하면서 검색해보니 택배회사 물류창고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뜨겁게 돌아다녔다. 창고에 수많은 상자와 마대자루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소비의 급증과 추석 연휴가 겹쳐 물동량이 무시무시하게 늘어났다고 했다. 살인적인 업무량 증가로 모든 택배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휴식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 돈이라도 많이 줄까? 물건 배송 작업을 하기 전에 분류를 거쳐야 하는데, 수많은 무거운 물건들을 정리하는 분류 작업을 택배 기사들은 무급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모두 내가 서기 2020년에 살아가고 있다는 명제가 정말 사실인지 재검토하게 만드는 면모가 충만한 이야기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우주의 심원한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고, 기업들은 온갖 야심찬 자동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인공 지능이 실로 지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2020년의 세상이지 않나? 나는 고된 육체노동을 보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순진할 수가. 물류라는 핵심 인프라는 순수하게 인력만을 맷돌처럼 갈아가며 돌아갔다. 휘황찬란한 기술이 번쩍이는 현대사회의 기반이 인간의 피를 짜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를 치유해주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지? 다행히 현대의 SF에선 이전과 같은 낙관론은 찾아볼 수 없어도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나는 문목하 작가의 유령해마를 떠올렸다.

 

유령해마는 특정되지 않은 시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특정되지 않은 시간대이지만, 적어도 수십 년 정도 더 발달한 미래 사회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이 세상의 기술 발전 수준이 우리의 시각으로 보기엔 마법과 별달리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작가는 해마라는 특수한 존재를 가정한다. 인공지능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데(예를 들면 번역 인공지능은 오직 번역만 할 수 있다든지), 해마는 여러 인공지능을 한 데 담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한다. 해마는 사람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대로 자극과 정보를 기억하며 추론하고 집중한다. 물론 그 인지의 방식이 사람을 닮은 것이지, 사실상 무한해 보이는 기억의 용량과 모든 기계 센서에 뻗쳐 있는 인지의 범위 덕에 해마는 인간과는 상당히 다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해마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모든 것을 기억하며, 그것에 어떤 감정적인 연결을 두지 않고 진실만을 말한다. 이를 통해 해마는 인간에게 봉사한다. 마법과 같은 기술 존재라는 수사가 과장이 아닌 덤덤한 사실 진술인 것이다.

 

해마 비파이미정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미정은 주민등록 신고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가 구조된 아동으로, 비파는 처음에 그를 인간으로 인식하지조차 못한다. 이미정은 괜찮은 성인으로 자라나는 데 성공하고 지방지 기자로 일한다. 그러다 그는 양세진이라는 한 비행청소년에게 보호자와 친구를 섞은 존재가 되고 양세진을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관계는 비극으로 끝나는데, 미정이 세진에게 선물한 베딘사의 제품 문제로 세진이 사망하고 만다.

 

미정은 그 이후로 회사와 지난한 법정 투쟁을 펼치지만, 베딘 사는 적당한 합의로 사건을 묻으려고 들고, 세상의 시선도 별달리 우호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피해자들을 국가의 경제를 먹여 살리는 베딘 사의 발목을 붙잡는 이들 정도로 판단한다. 재난 피해자의 유가족인 이미정에게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악의는 덤덤하게 나열되는데 읽기가 힘들 정도다. 씁쓸한 것은 소설 속의 사회문화가 현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마같이 우월한 정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도. 더욱 씁쓸한 것은 그런 세상의 모습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유령해마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기억하고 있는 비파와 이미정의 길이 엇갈린 것이다. 비파는 이미정이 자신의 임무의 열쇠라는 걸 깨닫고, 이미정은 비파가 가진 기억이 자기 법정 투쟁의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 목적을 향해 상호작용을 하는 도중 비파는 해마로서의 본질을 서서히 망각하지만, 동시에 이미정에게 가장 인간적인 결속을 제공한다. 해마, 이미정,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작지만 굳건한 연대를 보자 가슴이 벅찼다.

 

물론 그 연대와 별개로 유령해마인물들의 모든 목표는 완벽하게 성취되지 않는다. 결말에서 어떤 인물은 원래 목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변화를 맞고, 어떤 인물은 불완전한 성공 정도에 만족한다. 하지만 목적과 별개로 그들은 기억과 연대를 얻었다. 나는 거기서 가슴에 뿌듯하게 자리 잡는 깨달음을 얻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 사회에도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 하지만 세상의 고통은 언제나 함께하여 감쇄할 수 있다고.

 

당분간은 택배 이용을 줄여볼 생각이다. 꼭 당일 배송을 고집할 이유도 없겠지.

 

, 참고로 유령해마는 무시무시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3~4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방법 중 가장 즐거운 축에 속한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 이 글은 전자신문 [SF 完全社會]기술이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더라도에 게재되었습니다.

 




심너울, 소설가

 

1994년 마산에서 태어났고, 심리학을 전공했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2019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 마켓 토리코믹스워드를 수상했다. 단편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장편 소멸사회를 출간했다. 심너울이란 이름은 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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