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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미디어

[칼럼 SF 완전사회. 3] 변곡점에 서서, 심너울

변곡점에 서서

 

초등학교에서부터 SF 창작을 조기교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매년 과학의 날이 오면 학교에서 과학 상상 경진 대회를 치렀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중 가장 괜찮은 것을 만든 아이들이 뽑혀서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나는 2년 동안 문화상품권을 받아서 메이플 스토리에 탕진했는데, 어쩌면 그 기억이 남아서 지금도 SF 스토리텔링으로 먹고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2005년 당시에 내가 미래를 예측하고 쓴 글은 대단히 희망적이었다. 20년쯤 지나면 달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화성에 정착지가 세워지고 하늘에 차가 날아다닐 거라고 확신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희망찬 확신 중 실현된 건 단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미래는 반드시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유지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의 꼴을 보라! 무한한 발전이라는 희망으로 나아가던 때에서 필연적 쇠락이라는 절망으로 진행하는 변곡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어 나는 두렵다. 지금의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겁다. 세상은 이렇게 폭삭 망할까? 이 변화의 시기에 태어난 내 후세대, 지금의 어린이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이미 열 번은 더 읽었던 듀나의 아직은 신이 아니야를 다시 한 번 책장에서 꺼내서 읽는다. 세상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이만큼 적합한 소설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배터리 이후의 세상

 

듀나는 첫 장에서부터 능숙한 솜씨로 독자들에게 이야기의 얼개가 되는 설정을 선보인다. 게임의 규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2026년의 대한민국 전주에서 시작하여, 세계 곳곳에는 '배터리'라는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배터리 근처에 있으면 사람들은 염동력과 정신감응력 등의 제각기의 능력을 개화하며, 오직 배터리 근처에 있을 때만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배터리가 공급하는 힘은 배터리마다 다르며, 그 힘은 꾸준히 성장한다.

 

배터리의 등장 이전에도 어느 정도 삐걱대는 기술 독재 사회로 묘사되는 세계는 배터리의 등장 이후 그야말로 불타는 쓰레기통 비슷한 꼴이 된다. 배터리의 힘과 그로 인해 발하는 능력은 극도로 통제하기 힘들며, 물리 법칙을 깡그리 무시한다. 소설 내에서 두세 명의 염동력자들이 강력한 배터리 한 명만 있으면 염동력만을 이용하여 목성까지 우주선을 쏘아보낼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당연히 배터리의 힘은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사람들은 미증유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애쓴다. 국가에서는 힘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서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재벌가에서는 자본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독점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전주에서 시작된 작은 배터리의 힘의 규모와 범위는 끝없이 늘어난다. 늘어나는 배터리의 힘이 지구를 마침내 파멸시킬 정도로 강해지지만, 다행히 파멸의 씨앗인 배터리는 동시에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다. 배터리의 힘으로 사람들은 우주 개발을 시작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에너지에 적응하기 시작하고, 결국 인간도 에너지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이야기 <성인식>에서 우리는 인류가 새로운 에너지로 장엄한 진화를 거쳤음을 목도할 수 있다. 막강한 염동력을 이용하여 태양계 밖의 행성을 개척한 사람들은 이제 각 행성에서 정신감응력을 통해 완전히 정신적으로 결속된다. 옛 지구의 후예인 그들은 몇십 광년 밖의 거리에서 지구가 완전히 멸망할 때에 보내온 신호를 보면서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로 축제를 벌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이 아닌 인류 그 자체다. 수년씩의 장벽을 훌쩍훌쩍 뛰어넘으면서, 변화를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배터리 이후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인물들의 미시사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그 이야기에서 독자는 세상과 사람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추론해낼 수 있다.

 

 

섬에 갇힌 사람들

 

나는 배터리라는 변칙적 존재의 등장을 현대 인류 문명이 맞닥뜨린 비가역적인 변화에 대한 알레고리로 받아들였다. 터리는 어쩌면 기후 변화일 수도 있고, 인공지능 문제일 수도 있고, 또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그중 대부분이 예측되지 않았고, 예측되었더라도 준비되지 않았다. 이 굵직한 변화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대하든 우리에게 꾸준히 다가온다는 점에서 배터리와 똑 닮았다.

 

배터리 이후의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배터리 초기의 세상은 극도의 혼란상이지만, 결국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발견한다. 그 최종적인 변화는 인간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며 일견 그로테스크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게 대단히 희망적이고 행복한 결말이라고 느낀다.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살아남았으니까. 그런 변화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모차르트를 사랑할 줄 아니, 결정적인 대가를 치르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진다. 비록 내 기대처럼 우리는 달로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화성에 정착지를 세우지는 못하며, 세상에는 여러 상흔이 남았지만, 모든 게 나빠 보이지만, 그래도 변화의 조수에 몸을 맡길 수 있다면 세상은 그럭저럭 괜찮은 보답을 할지도 모른다고.

 

박주헌은 음모론자에서 배터리 혐오자로 입장을 바꾸었다. 모든 배터리들을 외딴섬에 가두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직 목사를 따라다니며 행진을 하고 유인물을 뿌렸다.

오 년 뒤, 섬에 갇힌 건 반대로 그들이었다.“

 

- <부적응의 끝> 중에서

 

* 이 글은 전자신문 [SF 完全社會]변곡점에 서서에 게재되었습니다.

 

 

 

 

심너울, 소설가

 

1994년 마산에서 태어났고, 심리학을 전공했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2019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 마켓 토리코믹스워드를 수상했다. 단편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장편 소멸사회를 출간했다. 심너울이란 이름은 본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