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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 수상작가 최의택 인터뷰: "글을 쓴다는 건 우리 존재를 세상에 한 번 더 외치고 알리는 일"

아작 책방

by arzak 2021. 7. 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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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떨하고 당황했어요. 이사하고 짐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수상 소식을 들어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글쓰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처음엔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이젠 제 삶, 제 인생이 됐죠.”

 

1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의택 작가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상 선정을 듣던 순간을 떠올렸고, 10여 년 전 처음 글쓰기 시작한 시절을 회상했다. 국어 시간을 싫어하던 자신이 글을 쓰고 있다며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1991년생으로 선천성 근육위축증을 앓는 최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바라봤고,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 어느 날 바깥에 돌아다니는 장애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상 수상작 지금, 여기, 우리, 에코는 이런 고민을 하며 많은 공부를 한 끝에 나온 결실이다. 2050년을 전후한 가까운 미래, 완전몰입형 가상현실 중학교 학당이 문을 열지만 뜻밖에 유령이 출몰하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가상현실 학교 설계자와 10대 학생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유령의 비밀이 풀리고, 완벽할 것 같았던 가상현실 기술조차 차별과 배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제기된다.

 

최 작가는 한국 SF는 기승전결 중 을 향해 가고 있다면서 세계적으로 빛을 발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내다봤다.

작가의 천안 자택에서 수상 소감과 작품 창작 과정, 좋아하는 작가, 글쓰기의 의미, SF를 쓰는 이유 등을 들어봤다.

 

 

—대상 연락 받았을 때 어땠나.

‣ 휴대폰이 내 것이 아니다. 엄마가 받았는데 ‘아작 출판사요?’ 하는 말을 들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라고 생각했다. 공모전 정보사이트를 보고 글을 기계적으로 응모했다. 나중에는 어디 냈는지 잊어버릴 정도였다. 출판사와 통화하고 대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얼떨떨했다. 진짜에요? 이렇게 물었다. 3월 22일 새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24일 전화를 받았다. 정신없는 상황에서 전화를 받아 당황했던 것 같다.

 

—작품을 어떻게 썼나.

‣ 반 농담식으로 이야기하면 ‘청소년 범죄소설’이다. 또래 아이들이 사고 치다가 한 건 하는 느낌이다. 깊게 보면 다르긴 하지만, 깊게 볼 것까지는 없다. 소설은 재밌고 가벼운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거리에서 장애인 보기 힘들다는 기사를 봤다. 나도 휠체어 타고 밖에 나갔을 때 ‘나 이외 장애인 본 적 있나?’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 걸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가제만 만들어뒀다. 1년 묵히면서 학교, 가상현실 이런 걸 계속 붙였다. 지난해 8월 문학상 공고 보고 9월 집필을 시작했다. 다 쓰는 데 두 달 걸렸다.

원래 가제는 ‘슈뢰딩거의 아이들’이었다.(슈뢰딩거의 고양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 그러나 장애인이 있거나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안 보는 거다.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이 점을 지적한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을 그대로 소설에 넣었다. 글 쓰면서 공부 많이 하고 생각도 바꿨다.

집필 초기에는 일부러 장애를 피했다. 김초엽 작가 작품 읽으면서 피하고만 볼 일은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단편에 넣었고, 장편에 본격 넣기 시작했다. ‘왜 피해왔나’ 싶을 정도로 할 말은 많았다.

 

—광화문 광장에서 증강현실 장치를 쓰고 ‘수인과 정령’이라는 게임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물들이 이 게임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 존재를 세상에 한 번 더 외치고 알리자는 것이다. 이건 나의 의도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관성대로 움직인 것 아닌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기 존재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 한다. 내가 소설 쓰는 이유도 내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려는 것이다. 자아를 충족하는 행위다.

 

—영향 받은 작가는.

‣ 스티븐 킹과 정유정 작가 좋아한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기원’ 나왔을 때는 사인회에 가기도 했다.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올해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다. 소설로는 윤이형 작가 <설랑>이 좋았다. 김금희 작가 에세이 읽고 큰 힘을 냈다. 작년 100권 정도 읽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샐리 루니 <노멀 피플> 크리스 버니스크&잭 타터 <크립토애셋, 암호자산 시대가 온다> 어슐러 르 귄 <세상의 생일>에 별점 4.5점 이상 매겼다.

 

 

—최의택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 첨엔 ‘뭐라도 해봐야지’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나중에 진지해졌다. 2012년 무렵부터다. 사람들한테 평가도 받고 하니 이런 게 소설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형식 갖추고 공부해서 제대로 해보려고 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봤다. 주식투자, 포토숍 등. 그러다 드라마를 보고 작가라는 직업을 인식했다. 나도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다고 봤다.

무턱대고 조금씩 썼다. 1년 쓰고 보니 판타지 장편소설 하나가 나왔다. 당시 ‘혼불문학상’ 홍보를 보고 장르 제한이 없기에 거기에 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다. 온라인 연재사이트 발견해서 거기에도 글을 올렸다. 10년 정도 썼다.

이쯤 되면 글쓰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 너무 멀리 왔다. 너무 당연한 내 삶, 내 인생이 됐다. 이사 올 때 컴퓨터 며칠 못하니까 ‘너무 오래 안 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학교 다닐 때는 글 쓰는 걸 싫어했다. 선생님이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으나 국어 시간이 너무 싫었다. 주제가 어떻고 소재가 어떻고, 작가 이력 받아 적고……. 공부는 안 하고 학기 시작하자마자 국어책만 읽었다. 국어 성적도 안 좋았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고 있다. 이상하긴 하다. 하루 네 시간 정도 쓰면 머리가 멍해져서 더 못 쓰겠더라.

 

 

 

—왜 SF를 쓰는가.

‣ ‘왜’가 오랜 습관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왜’라는 질문으로 어른들을 고통 받게 한 전력이 있다. 애매모호한 것보다는 분명한 것,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것이 마음 편하다.

처음에는 SF가 단순한 장르에 불과했지만 알고 보니 나와 인연이 꽤 깊다. 어렸을 때 뭔가를 무서워해 트라우마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SF다. 인공지능, 로봇, 에일리언, 좀비 등등. 어렸을 땐 SF가 주는 경이감을 몰랐다. 그 떨림을 꺼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때문에 SF를 사랑한다.

SF는 새로운 시각도 선물했다. 그중 하나가 장애다. 고백하자면, 나는 장애인이면서 장애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도 되도록이면 장애를 피했다. 그러나 SF를 통해 장애를 다시 보자 그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지금은 SF를 통해 장애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려고 공들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게 SF란 실험용 도구, 만능 도구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SF는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좋아 보인다.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기승전결’ 중 ‘전’을 향해 가는 것 같다. 물을 탔다. ‘K’를 붙이는 한국형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현재 K-SF는 어떤 고유의 성질을 체득한 것 같다. 물론 그것이 뜻하는 바는 아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SF를 쓰시는 분들은 그 아픔을 문자 그대로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지구적인 관점에서 과연 그것이 빛을 발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앞으로 계획은.

‣ 아직도 수상이 와 닿지는 않는다.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없다. 해왔던 대로 쓸 거고, 공모전도 낼 거다. 대상 전화 받고 앞으로 뭐 달라질까 생각은 했는데,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그냥 이대로 갈 것 같다. 못 읽은 책들 읽고 싶고,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쓰고 싶어질 것 같다. 내 글은 계획한다고 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 안 하고 쓰고 싶다.

 

 

<전자신문> 2021423일 자, 김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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