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혼란스러운 해였다. 누구에게나 그랬을 것이다. 나는 2020년에 오체투지를 열심히 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두 번 오체투지를 했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온종일 오체투지를 했다.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고 사람이 죽었다.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은 엉망이 되었고 또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는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오체투지를 할 때는 그런대로 즐거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차별금지법 제정 오체투지는 국회 주변을 오체투지로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차별금지법 제정될 때까지 근성으로 계속 돌아야 되는 줄 알고 긴장하고 갔는데, 그건 아니고 한 바퀴만 돈다고 하셔서 약간 실망했지만 차별금지법 제정될 때까지 오체투지를 해야 했다면 나는 이 책의 교정고도 못 보고 작가의 말도 못 쓰고 지금도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여간 차별금지법 제정 오체투지는 두 번 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서 주최하셨는데 스님들은 엎드렸다가 일어나시는 속도가 정말 빨랐다. 소림사 스님들이 왜 어째서 어떻게 해서 날아다니는지 온몸으로 이해할 것 같았다. 맨 뒤에서 오체투지를 하시던 분이 속도 너무 빠르다고 좀 천천히 가달라고 하소연하셔서 속도가 좀 줄기는 했다. 그리고 앞에서 목탁으로 신호하시던 스님께서 내내 목탁을 기운차게 두드리다가 중간에 목탁 채를 부러뜨리셨다.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오체투지는 길고 힘들었다. 산업재해 피해자 김용균 님 어머님이자 김용균재단 이사장이신 김미숙 선생님과 이한빛 PD님 아버님께서 국회 본청 앞에서 한겨울에 단식을 하고 계셨고 오체투지는 4박 5일간 이어졌다. 김용균 님은 2018년 12월 24세의 젊은 나이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이한빛 PD님은 방송현장 과로와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문제 등 열악한 업무환경에서 괴로워하다 2017년 4월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내 자식처럼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단식투쟁에 나섰다. 항상 부모님들이 자식을 애도할 새도 없이 투쟁에 나선다. 자식 잃은 부모님들 단식하는 모습 좀 진짜 그만 봤으면 좋겠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오체투지 4박 5일 중에서 고작 하루 나갔는데 어째서인지 출발지점에 나가봤더니 나만 여자고 나머지 분들 다 남자분들이셔서 왠지 쓸데없는 오기가 나서 사회자님이 힘들면 오전에만 하고 가셔도 된다고 귀띔해주셨지만 아침에 구의역 앞에서 출발해서 저녁에 전태일 다리까지 일정을 다 버텼다. 점심시간 빼고 7시간 동안 이어진 장렬한 팔굽혀펴기였다(오체투지는 사실 의례화된 팔굽혀펴기다). 12월이라서 땅바닥은 차가웠고 나는 계속 엎드렸다 일어났다 해서 덥고 땀이 났고 쉬는 시간에는 추웠고 마스크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안에 물방울이 맺혀서 엎드려 있으면 코와 입으로 응결된 내 땀방울이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가던 중에 어쩌다 보니까 왕복 4차선 차로로 이어지는 주차장 출구 앞에 엎드려 있었는데 주차장에서 차가 나오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차주와 경찰과 오체투지 응원단(?)이 모두 몰려들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하필 주차장에서 나오겠다고 슬금슬금 전진하는 그 차 앞에 내가 엎드려 있었다. 주최 측인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행동’ 분들하고 경찰관들하고 다들 달려와서 차 앞을 몸으로 막아주셨는데 그 사실은 나중에야 깨닫고 마음으로 깊이 감사했으나 그때는 정말 너무 무서웠는데 그렇다고 오체투지의 대의와 데모꾼의 체면을 버리고 일어나서 도망갈 수도 없고 해서 아스팔트에 고개를 처박고 죽은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은 갈수록 엉망이 됐고 변희수 하사님이 돌아가셨고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스물세 살 이선호 님이 돌아가셨고 이선호 님 아버님과 누님과 고등학교 동창들이 또 투쟁에 나섰다. 정말이지 너무 엿 같아서 오체투지 또 하고야 말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아작 출판사 편집장님이 연락하셔서 <영생불사연구소>와 분위기가 잘 맞을 법한 단편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하셔서 내가 그냥 하나 새로 쓰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사실 이 모든 상황의 와중에 <영생불사연구소> 같은 좌충우돌 코미디는 도저히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와중에 나는 류드밀라 페트루쉡스카야(Людмила Петрушевская)라는 러시아 여성 작가의 단편선을 읽게 되었다. 페트루쉡스카야는 1938년에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여 소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하시는 역전의 용사이며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페트루쉡스카야의 유명한 작품 중에 잡지사에서 여러 가지 잡다한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읽어주는 공연도 하면서 어떻게든 손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중노년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투지 넘치는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렇게 수다스럽고 정신없는 문체로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대표님은 <그녀를 만나다>를 마음에 들어 해주셨다. 독자님들도 마음에 들어 해주시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괜히 나대서 당사자분들께 민폐를 끼치는 건가 걱정되기도 한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버티는 것밖에 안 남은 듯하다. 팬데믹이 물러갈 때까지, 어떻게든 다시 숨통이 트일 때까지, 차별과 폭력과 산업재해와 죽음과 상실을 견디면서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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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Gratia Plena>는 2018년쯤에 읽은 신문기사 때문에 쓴 이야기이다. 프랑스 남부의 한 기차역에서 남성 경찰관이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를 근무용 권총으로 쏘아 살해한 뒤에 자기도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프랑스는 사회적으로 가정폭력에 관대하지 않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들었다. 해당 경찰관의 아내는 가정폭력에 오래 시달렸으나 남편이 경찰관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나라나 이 지경이다. 아내가 마침내 아이들을 데리고 생존을 위해 탈출하려 했다. 그래서 남편이 총을 들고 뒤쫓아와 전부 죽였다. 그게 개명한 21세기하고도 18년이 더 지난 2018년이었다. 2020년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고 사람들은 집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더 많은 여자들이 남편에게 얻어맞고 더 많은 아이들이 부모 손에 죽어간다.
내가 데모를 하고(요즘에는 모여도 한 자리에 머물러서 집회를 하지 못한다. 이동해야 한다. 마스크 쓰고 아홉 명씩 조를 나눠서 행진은 할 수 있다) 오체투지를 하고 온라인 서명을 하고 국회 앞에 드러눕고 청와대 앞에 드러눕는다고 세상이 당장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계속 소리 없이 얻어맞고 누군가는 계속 소리 없이 죽어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누군가 앞에서 나는 최소한 부끄럽지 않고 싶다. 데모도 했고 행진도 했고 (마스크는 썼지만) 소리도 질렀고 서명도 했고 길거리에서 팔굽혀펴기도 했고 전진하려는 SUV 차량 앞에 엎드려서 버티기도 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내가 떳떳할 것 같다. 그리고 일단은 뭐라도 해야 좀 덜 열 받는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정신건강과 나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해서 데모를 하고 있다. 글도 써야 되는데, 주로 데모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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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1947)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1929)에서 이데올로기는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그냥 논쟁일 뿐이며 유토피아는 세상에 진짜로 변화를 가져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하고 유토피아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 그중에서 공산주의 유토피아는 20세기에 이미 다 망했으니까 넘어가고, 보수주의적 유토피아적 태도는 유토피아가 과거에 이미 이루어졌으니 우리는 유토피아에 살고 있으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으면 과거에 이루어진 예시를 따르면 된다고 주장한다. 천년왕국적 유토피아적 태도는 그리스도교적인 용어라서 좀 어려워 보이지만 내용인즉 당장 유토피아가 이루어져야 하고 안 이뤄지면 혁명! 때려 부순다! 이런 방향성이다(개인적으로 몹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인본주의적-자유주의적 유토피아적 태도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상사회가 내 눈앞에 나타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더 좋은 세상이 반드시 올 테니까 꾸준히 그때까지 노력한다는 태도라고 한다. 나는 실제로 이런 태도를 견지하며 언제 이루어질지 모를 더 좋은 세상을 어떻게든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근데 세상에는 망할 놈들도 그만큼 많다. 가끔은 정말 지친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 y Jugo, 1864~1936)는 역작 《인생의 비극적 의미》(1912)에서 상실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가장 커다란 특성이며 그러므로 상실을 겪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은 그 상실된 것을 대체하거나 복구하기 위해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라 멈추어서 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의 소설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Андрей Платонов, 1899~1951)도 상실과 트라우마만이 모든 인간의 삶에 공통적인 요소이며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상실에 대한 애도와 트라우마의 경험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이렇게 딱 나서서 말한 건 아닌데 플라토노프 작품을 여럿 읽어보면 대충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실하면 애도해야 하고, 상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서는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상실된 사람들을 누가 기억해줄 것인가. 그리고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물론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광화문에 농성장이 있고 거기서 세월호 서명을 받던 시절만 해도 나는 304분의 이름을 진짜 절대 평생 못 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단원고 피해자분들이 몇 반이었는지 헛갈린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게 이렇게 연약한 것이다. 게다가 매일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서 덮어쓰기를 하고 있다.
그래도 어쨌든 내가 몸과 마음으로 애도했고 애도하며, 더 나은 사회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해서, 나와 당신의 생존을 위해서 거리로 나아가 행동하고 노력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피해자와 그 가족분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고, 나와 당신은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생존하고 기억하고 애도하며.
— 2021년 여름, 정보라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예일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과 SF에 대해 강의하며 러시아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권 문학작품들을 번역하고 데모를 열심히 하고 있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들,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붉은 칼》, 《죽은 자의 꿈》, 《문이 열렸다》, 소설집 《저주토끼》, 《왕의 창녀》, 《씨앗》 등이 있고, 《안드로메다 성운》,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스타니스와프 렘》, 《거장과 마르가리타》, 《브루노 슐츠 작품집》 등 많은 책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