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서영,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 리뷰 : “아레카야자야, 나도 너를 만난 것이 무척 기뻤어” by decomma

아작 미디어

by arzak 2021. 9. 25. 22:44

본문

첫 책을 낸 지 5년 반 만에 100종을 낸 아작은 SF 전문 출판사이지만, 100종 숫자에도 넣지 않은 책을 2년 전 한 권 만들었는데, TV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공식 가이드북이 그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고양이 관련 책을 사서 봐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책을 사서 볼 시간조차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역시나 강아지 책은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당시 반려견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여러 반려동물뿐 아니라 반려식물에 관한 것까지 이것저것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을 만들기 위한 직업적 관심사였지 마음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지난 한 해 삽목과 분갈이를 한답시고 화분과 흙을 사서 손에 흙을 묻히고, 출근해서 가장 먼저 분무기로 아레카야자에 물을 뿌려주고 있으며, 하다 못해 이것저것 원예용품을 넣어두는 가방이 가득 찰 정도가 되었으니 사실 이건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감염병 유행 이후 몇 안 되는 동료들이 종종 재택근무를 하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식물에 눈이 갔다. 그전에 식물들은 그저 사무실을 채우는, 눈에 띄지 않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식물들과 눈이 맞은 것이다. 아니,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볼품 없게 웃자랐지? 이 녀석은 또 왜 다 죽어가는 거야? 그건 그렇고, 도대체 저 녀석의 이름은 뭐지?

 

로봇이 집으로 들어왔다. 반려로봇 시대 성큼!’ ‘

반려로봇, 이용자 심리상태도 분석’ ‘

KT 올 상반기 AI 반려로봇 서비스 상용화 잰걸음.

 

며칠 사이에 나온 신문기사 제목들이다. ‘반려로봇은 역사적으로 SF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지만, 이제 현실에서 더 흔하게 다루어지는 이야기 같다. 그런 점에서 하이퍼리얼리즘 SF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가 심너울의 단편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공부봇 튜비, 한국 사회파 SF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작가 이서영의 단편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에 나오는 반려봇 라포가 생각났다. 두 작품은 지금 벌써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아직 쳐다보지 않는, 우리의 친구들에 관한 소설이다.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수록)는 남도의 외딴 섬에 있는 학교의 단 한 명뿐인 학생을 위해 공부봇 튜비를 설치하면서 벌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고,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유미의 연인수록)은 테라포밍을 위해 외딴 별에 버려진 죄수 노동자들의 유일한 대화 상대인 라포가 사고로 실종되면서, ‘라포를 찾으려는 노동자들의 마음이 결국 이주 환경을 바꾸기 위한 투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전투적인 소설이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두 소설에 나오는 반려로봇은 사람의 심리상태를 분석하지도 못하고, 탁월하게 지능이 높거나 전투력이 높아서 영화 <승리호>에 나오는 것처럼 노름 판돈을 싹슬이하거나 죽창으로 우주선을 무찌르지도 않는다. 이 반려로봇들은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에 정말 로봇처럼기계적인 대답을 반복하거나, ‘고작적절하게 맞장구를 쳐줄 뿐이다. 세상에 고작이라니. 그건 고작이 아니지 아니잖은가.

 

반려자가 되었든 반려동물이 되었든 반려식물이 되었든, 반려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굳이 내 심리상태를 분석하거나, 내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준다거나 따위의 필요성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내가 굳이 아레카야자에게 그런 걸 원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잘 자라는 것만 보아도 좋고, 오늘 새로 또 푸른 잎이 칼처럼 나주었으니 그것으로 족한 친구도 있는 법이다. ‘라포에게 보내는 인사를 빌어, 나도 내 반려식물에게 전하는 인사로 글을 맺는다.

 

아레카야자야, 나도 너를 만난 것이 무척 기뻤어.”

 

- 《월간 책》 2021년 5월호 게재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