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고개를 넘어서 가는 우드랜드 파크라는 로키산맥 속 소읍에 살 때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를 썼다. 당시 우드랜드 파크는 비포장 흙길에다 소나무와 사시나무, 야생화들이 무성하고 파이크스피크산의 풍광이 멋진 작은 마을이었다.
다만 거긴 우편배달 서비스가 없었다. 나는 우편물을 가지러 우체국까지 걸어 다녀야 했다. 개를 데리고. 내가 어디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얻었는지 여러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내 작가 생활에서 최악이었던 날, 내 전체 경력에서도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최악이었던 날을 생각할 때도 그 우체국을 떠올린다. 그 당시는 잡지사에 원고를 보낼 때 이메일 대신 우편으로 보내야 했고, 편집자가 거절 쪽지를 붙여서 돌려보낼 수 있도록 자기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인 반송용 봉투를 동봉해야 했다.
이 말은 수도 없이 우체국을 오가야 한다는 의미였으니, 나는 여분의 우표를 사서 한꺼번에 서류봉투 두 장과 반송용 봉투 두 장씩을 만들었는데, 한 세트는 잡지사에 보낼 때 썼고, 두 번째 세트는 첫 번째로 보낸 원고가 거절될 경우에 다른 잡지사에 보낼 때 썼다.
그 당시에 나는 거절 쪽지를 많이도 받았지만(보통은 글자 그대로 타자기로 ‘죄송합니다만 귀하의 원고는 저희 출판 목적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찍은, 폭이 3센티미터도 안 되는 종이쪽지였다), 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며 기운을 낼 수 있었다. ‘이번 건 거절당했지만 <갈릴레오>에 보낸 건 팔릴 가능성이 있어. 아니면 <아시모프스>에 보낸 거라도.’
그러나 그날, 우편물을 가지러 갔더니 우편함엔 반송된 원고 대신 접수대로 오라는 노란 종이가 들어 있었다. ‘아, 좋군. 좋아, 할머니가 선물을 보내셨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선물을 가지러 접수대로 터덜터덜 걸어갔는데, 선물이 아니었다. 심지어 뭔가 꾸러미도 아니었다. 내 손글씨가 적힌 서류봉투 더미가, 그때 내가 여기저기 보냈던 여덟 편의 소설 전부가, 모조리 거절당한 채 쌓여 있었다. 작품을 팔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옴니>나 <판타지와 SF(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에 보낸 것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흐음, 나는 집으로 오는 먼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들은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뭔가란 분명히 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포기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짓을 중단하고 교사 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길로부터 나를 구해준 것은 이미 만들어놓은,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적어놓은 반송용 봉투들이었다. 내 말은, 우표는 비싸니까,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싹 다 보내본다 해서 더 상처받을 일은 없지 않겠어?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대량으로 발송한 소설 중 하나인 <달을 향해 우는 아이(The Child Who Cries for the Moon)>가 《시공의 한 삽(A Spadeful of Spacetime)》이라는 선집에 팔렸고, 이것이 내 용기를 북돋워 결국은 <갈릴레오>와 <아시모프스>, <옴니>, <판타지와 SF>에 소설을 팔 때까지, 그리고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와 <화재 감시원>이 네뷸러상을 받을 때까지, 그리고 내 삶의 경로를 완전히 바꿀 때까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했다. 지금은 재밌는 소소한 일화처럼 들리겠지만, 그 일이 벌어졌던 당시에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시나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고뇌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아무리 많은 거절 쪽지를 받고, 아무리 낙담했다 하더라도 계속 쓰세요.” 그리고 윈스턴 처칠이 했던 말처럼,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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