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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탐지기 이벤트를 기획한 이유

아작 공지

by arzak 2016. 1. 2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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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은 출판사를 시작한 이래로 몰래 카메라 탐지기를 가지고 이벤트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왔습니다. 이유를 말하자면 아작의 첫 소설 <리틀 브라더>의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 때문이었죠.  


젠장, 내 방도 도청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몰래 카메라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 올 때만 해도 내가 너무 겁에 질려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시 감방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취조실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나를 주무를 수 있는 존재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울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화장실로 가서 쓰던 두루마리 휴지를 빼고 새 걸로 바꿔 끼웠다. 다행히 휴지는 거의 사용한 상태였다. 가져온 두루마리에서 남은 휴지를 풀어버리고, 부품 상자를 뒤져서 고장이 난 자전거 전조등에서 빼온 엄청 밝은 LED 전구가 가득 담긴 작은 비닐봉지를 찾았다. 휴지심에 핀으로 구멍을 뚫어 각 LED의 전선을 조심스럽게 끼운 뒤, 전선들을 작은 집게로 철사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철사를 전선과 함께 꼬아서 9볼트 배터리에 연결했다. 이제 휴지심을 빙 둘러서 초울트라로 밝은 지향성 LED의 설치가 끝났으므로, 눈에 대고 심을 통해 보면 된다.


나는 작년에 과학 전시회 과제로 이걸 만들어서 학교 교실 중 절반가량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가 전시회에서 쫓겨났다. 요즘은 눈곱만한 렌즈의 초소형 감시카메라의 가격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저녁 한 끼보다 싸기 때문에 온 사방에 몰카가 설치되어 있다. 엉큼한 점원이 탈의실이나 선탠숍에 몰카를 설치해서 찍은 손님의 동영상으로 변태짓을 하거나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두루마리 휴지 하나와 3달러어치 부품으로 만드는 몰카 탐지기는 쓸모가 많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가장 간단하게 몰카를 찾아낼 수 있다. 모든 카메라는 렌즈를 가지고 있다. 몰카는 렌즈가 아주 작지만 악마의 눈처럼 빛을 반사한다. 어두운 방일수록 잘 작동하는데, 휴지심을 통해 벽과 주변을 느리게 훑어보면 반사된 빛이 반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상태에서 옆으로 움직였는데도 계속 그 빛이 반사된다면 렌즈일 가능성이 높다.(<리틀 브라더> p118-119)


<리틀 브라더>의 주인공 마이키는 자신이 감시당할 거라는 예감 속에서 마치 ‘꼬마 맥가이버’처럼 뚝딱뚝딱 몰카탐지기를 만들어 냅니다. 감동적인 장면이죠. 아작도 이에 감명받아 처음에는 ‘휴지심 탐지기’를 직접 만들어볼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없었고, 기껏 만들어봤자 전혀 ‘뽀대’가 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죠. 그후 아작은 두 번째 소설 <이중 도시>를 펴내게 됐는데, 글쎄, <이중 도시>의 등장인물들도 정부나 침범국으로부터 도청 내지 몰카를 당할까봐 전전긍긍하더라는 겁니다. 





<화재감시원>과 <여왕마저도>의 작업에 돌입하게 되면서 아작이 펴내는 소설과 몰카탐지기의 거리는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몰카탐지기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국가기관의 개인에 대한 감시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한때 카카오톡에서 외국계 스마트폰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의 집단 망명 사태가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가 국가기관의 개인에 대한 감시의 문제를 간직한 채 개인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문제로 들어섰다는 겁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그렇듯 선진국형 문제와 후진국형 문제가 공존하는 상황이지요. 특히 최근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두고 봤을 때 몰래카메라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심을 지나치다고 말할 수는 없게 됐습니다. 


SF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을 다루지만, 기술진보의 경이와 폐해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기도 합니다. 아작이 낸 소설 중에선 <리틀 브라더>가 그 전형이었죠. 원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순진하게 살아도 문제가 없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겠습니다만, 현대 사회는 점점 더 개개인에게 모진 준비를 시키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모두 맥가이버가 될 수 없겠지요. 그리고 모두가 <리틀 브라더>의 마이키처럼 살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여가시간에 코니 윌리스의 수다스러운 SF를 읽기 위해서라도 맥가이버가 만든 ‘휴지심 탐지기’의 역할을 대신해줄 뭔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작은 이번 이벤트를 위해 60여개의 CC308+라는 몰카탐지기를 준비했습니다. 한 번쯤 경품에 도전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이벤트주소

반디앤루니스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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