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파크에 연재중인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이번에는 코니 윌리스의 크리스마스 단편이 소개되었습니다.
늘 그렇지만 듀나님은 정말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게 만드시네요.
물론 <빨간 구두 꺼져!>는 실제로도 대단히 멋진 이야기랍니다. ㅎㅎ
무용단 단원이 되고 싶어한 인간형 로봇
“당장 나를 사라!”라고 외치는 것 같은 제목과 마주칠 때가 있는데, 코니 윌리스의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도 그 중 하나이다. 슬프게도 원제는 그보다 덜 재미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뉘어서 출판된 코니 윌리스의 크리스마스 단편집 중 첫 번째 권으로 원서의 제목은 ‘A Lot Like Christmas(크리스마스처럼)’이다. 이 책에 실린 두 번째 단편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도 원제는 ‘All about Emily(에밀리의 모든 것)’이다. 둘 다 정확한 제목이지만 그렇게 흥은 안 난다.
그렇다면 저 느낌표가 두 개 찍힌 번역 제목은 어디서 왔을까? ‘All about Emily’의 앞에 인용된 뮤지컬 ‘코러스 라인’의 가사다. 정말 F 단어가 들어가는 대사가 그 뮤지컬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게 한국어 번역을 거치면서 원래 대사에서는 없었던 호전성과 원망이 들어가 유달리 인상적인 제목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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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욕망을 품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SF에 흔하다. 사실 좀 지나치게 흔한 편이다. 이 장르 작가나 독자들은 기계가 인간과 비슷하게 생기면 당연히 욕망도 공유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로봇을 여자처럼 만들어 놓으면 다들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식이다. 그 때문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도 그런 틀에 넣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예는 영화 ‘엑스 마키나’와 ‘그녀’를 들 수 있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또다른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인데... 왜 굳이 그런 게 되고 싶을까?
하지만 에밀리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로켓 무용단(The Rockettes)의 일원이 되고 싶어한다. 이 둘은 다르다. 그리고 윌리스가 클레어 하빌랜드의 입을 통해 쏟아대는 수다를 듣다보면 그게 꽤 말이 된다는 착각이 든다. 일단 로켓 무용단이 추구하는 것은 거의 기계적인 완벽함과 통일감이니까. 인간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여기에 매료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할까.
물론 에밀리의 도전이 그렇게 순탄할 리가 없다. 클레어는 괜찮다. 에밀리가 자기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오늘은 로켓 무용단 단원으로 만족한다지만 다음엔 무엇이 되고 싶어할지 누가 알랴? 게다가 말 잘 듣는 홍보담당으로 만들어진 기계가 갑자기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품고 통제에서 벗어난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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