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2017. 11. 29
우주로 늘어뜨린 실 한 줄이 만든 거대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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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엘리베이터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궤도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다. 정지 위성 양쪽으로 엄청나게 강한 줄을 내려뜨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종종 바벨탑에 비교되지만 원심력의 장력에 의해 지탱되는 건축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익숙한 탑의 구조와는 많이 다르다. 실에 매달린 작은 추를 돌린다고 생각해보라. 우주 엘리베이터는 그걸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한 것이다. 로켓을 쏘아올리는 대신 그 실을 타고 우주로 기어올라가는 것이다.
엄청난 대공사이고 당연히 여기에 대해 할 이야기도 많다.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도 있지만 정치적, 경제적 문제도 만만치 않다. 하드 SF작가 썰을 풀 재료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클라크는 그렇게 일관성이 있고 치밀한 소설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적어도 그의 장편 대표작들은 구성이나 소재 선택이 좀 과감하게 이상한 구석이 있다.
<낙원의 샘>도 예외는 아니다. 엘리베이터 만드는 이야기를 할 시간도 모자랄 것 같은데, 클라크는 엉뚱하게도 ‘스타글라이더’라는 존재를 등장시킨다. 이전에 쓴 <라마와의 랑데부>의 라마보다 조금 더 친절한 외계 존재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른 태양계에서 느릿느릿 비행해왔지만 의사소통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 지적인 기계이다. <낙원의 샘>의 미래는 아주 안전하고 무난한 방식으로 외계 지성과 첫 접촉을 마쳤고 그로 인해 수많은 제도권 종교가 완전한 붕괴를 앞둔 세계이다. 오로지 신이나 초자연현상에 의존하지 않는 종교인 불교만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그건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는 이야기 역시 아서 C. 클라크가 꿈꾸는 거대한 비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구닥다리 종교와 같은 찌꺼기와 결별하고 우주로 진출해 위대한 다른 문명과 조우하고 인간을 넘어서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 이 역시 종교적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이성에 바탕을 둔 꿈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논리적 설득을 넘어선 강요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클라크는 언제나 그렇듯 굉장히 매력적인 선교사다. 바니바 모건은 겨우 실 한 줄을 우주로 늘어뜨릴 뿐이다. 하지만 그 실 한 줄이 만들어낼 거대한 미래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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