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생리대에 함유된 불순 물질이 크게 화제가 되었던 때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여왕마저도'는 이제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칼럼에는 코니 윌리스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내 딸들이여'는 반가운 작품이네요.
여왕마저도 생리를 한다, 알까 모르지만
김보영 작가의 한국일보 연재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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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이슈가 지속되는 동안 SF 팬 사이에서는 종종 코니 윌리스의 단편 ‘여왕마저도’가 언급되었다. ‘여왕마저도’는 여성이 생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세계를 다룬 단편이다. 소설 속에서 여성들은 의약처치를 통해 생리를 하지 않는다. 여기에 자연주의 여성운동에 빠진 소녀가 ‘자연스럽게 생리를 하자’는 주장을 펴자 외할머니와 할머니, 엄마와 언니가 모두 난리가 난다. 이 신세대 소녀는 생리를 실제로 접한 뒤에야 “왜 이런 것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느냐”며 때려치워 버린다. 이 소설은 생리를 하느냐 마느냐로 설전을 벌이는 가족의 소동을 통해, 여성이 겪는 생리의 고통을 노골적이고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윌리스가 ‘왜 당신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썼다는 이 단편은 1993년에 휴고상, 네뷸러상을 비롯해 다섯 개의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로맨스 코미디 SF의 대가인 윌리스가 여성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건 좀 이상한 말인 것 같다. 그리고 윌리스는 이미 그보다 8년 전에 여성에 대한 탁월한 단편인 ‘사랑하는 내 딸들이여’(1985)를 쓴 바 있다. 한국에서도 1994년에 단편집 ‘세계 휴먼 SF 걸작선’에 수록되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과 함께 국내 팬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 단편에서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유전공학으로 만든 애완동물 ‘타쓸’이 대유행을 한다. 남자애들은 이 애완동물을 ‘우리 딸’로, 자신은 ‘아빠’로 부르며 사랑하고 귀여워한다. 이 짐승은 털북숭이에 몸이 길고 자그마한 연약한 생물로, 단지 몸 뒤쪽에 핑크빛 구멍이 있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이 어떤 용도로 이 짐승을 쓰는지 눈치를 채고 불편해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타쓸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순간을 보기 전까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이 작품에는 다각도의 불편한 비유가 숨어 있고, 가학적인 장면 하나 없이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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