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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의 라드츠 3부작 리뷰

아작 미디어

by arzak 2018. 3. 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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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라드츠 3부작 리뷰입니다
원문 링크: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an-empire-divided/


*일부 내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갈라진 제국


그레이엄 J. 머피



SF 장르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길고 풍부한 역사를 이루었지만, 일정 정도의 인정과 존중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 몇십 년 사이이다. 데이비드 G. 하트웰과 캐서린 크래머가 《스페이스 오페라 르네상스》(2007) 서문에 썼듯이, 별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 하위 장르는 ‘1980년대에 동시대 SF에 관한 진지한 담화에 재진입’했고, 그때 이후로 작가들은 ‘상업적 측면과 문학적 측면 모두에서 야심 찬 SF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중의 야심이 온갖 상을 휩쓴 앤 레키의 라드츠 제국 3부작인 《사소한 정의》(2013), 《사소한 칼》(2014), 《사소한 자비》(2015)에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독자와 작가와 비평가들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앤 레키의 솜씨에 찬사를 보냈고,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포함하여 그녀가 받은 상과 최종 후보에 오른 인상적인 기록을 열거하면 이 리뷰가 무색해질 정도로 압도적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라드츠 제국 3부작은 많은 상과 찬사를 받을 만하다. 이 시리즈는 SF 팬을 넘어 모두의 ‘필독서’ 목록에 오를 만한 아찔한 성취이다.



3부작의 배경인 라드츠 제국의 영토는 광범위하게 펼쳐진 행성계들로 구성되어 지난 3천 년간 전제군주인 아난더 미아나이의 지배를 받았다. 아난더 미아나이는 복제된 여러 신체와 항성간 관문들을 이용하여 몇 광년에 걸쳐 분산돼 있으면서도 단일한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분산된 의식은 이 제국의 핵심적인 갈등의 요인이기도 하다. ‘한 생각이 다른 모든 그녀 자신에게 도달하는 데 몇 주가 걸릴’ 수도 있을 때, 라드츠 군주에게 방대한 제국을 지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녀의 여러 분파가 다른 분파에 대항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자 그 불편함이 갈수록 문제가 되는 것이 분명해졌다. 미아나이 군주는 라드츠의 미래를 놓고 글자 그대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인다. 분열은 부분적으로는 갈세드 행성계의 반역 사건에 대한 그녀 자신의 상반된 감정에 기인한다. 갈세드의 반역은 미아나이의 내적인 분열을 촉발하며 행성계와 그 인민들의 완전한 파멸로 끝났다. 



게다가 미아나이 군주의 분열 상태에 더해 다양한 내부적, 외부적 갈등들이 라드츠 제국을 위협한다. 먼저, 제국은 라드츠 군의 변화를 거부하는 저항에 시달린다. 라드츠 전함은 저스티스, 소드, 머시라는 세 가지 급으로 나뉘며, 각각 인간 장교들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함선 승무원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문제가 갈수록 첨예한 긴장의 요인이 된다. 수천 년 동안 승무원들은 대체로 전함의 중앙 인공지능의 물질적 연장이라 할 수 있는 보조체로 구성되었다. 보조체는 위계에 따라 인간 장교의 지휘를 받는 소대로 편성된다. 그러나 첫 번째 소설의 주요 사건들이 벌어지기 수년 전에 라드츠 제국은 보조체를 폐지하고 인간 승무원으로 대체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이 군 내부의 분열에 기름을 붓자 반대 세력은 갈수록 대담하게 인간 승무원 대신 보다 수지맞는 (그리고 가혹하게 착취적인) 보조체 체제로 돌아가려 획책한다. 보조체 체제를 유지하려면 새로운 행성계를 정복하여 라드츠 전함 인공지능의 수족으로 노예화할 신체를 수확해야 한다. 



두 번째로, 게크와 크르르 같은 라드츠 우주 외부에 존재하는 외계인들의 위협이 제국을 압박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마주치는 족족 라드츠인들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잔인하고 거칠 것 없는 외계인 종족 프레즈거다. 프레즈거가 실제로 3부작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사절을 통하거나 막후에서 공작을 펼치며 자신들의 사업을 도모한다. 예를 들어, 딱히 비밀스럽지도 않게 갈세드인들에게 라드츠 제국에 대항해 실패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력한 무기를 제공해준 것도 프레즈거였다. 조약 덕분에 프레즈거가 전면전을 선포할 위험은 없다 해도, 프레즈거에 궁극적으로 라드츠 제국을 내전으로 이끌 아난더 미아나이 군주의 내적 분열을 촉발한 직접 또는 간접적 책임이 있다는 의심이 계속된다. 



(스스로를 간단하게 브렉이라 부르는) 저스티스 토렌 제1에스크 19호라 알려진 전직 보조체의 모험이 이 시리즈의 서사적 중심이다. 브렉이 라드츠 제국을 위협하는 건 아주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그녀는 일생의 대부분을 보조체로 지냈지만, 그녀의 더 큰 자아인 저스티스 토렌이 다른 분파에 대항하여 전략적으로 움직이던 한 아난더 미아나이 분파에 의해 파괴되었다. 브렉에게 남은 것은 라드츠 군주의 모든 분파에 대한 분노이다. 3부작의 첫 번째 책인 《사소한 정의》는 저스티스 토렌이 파괴된 지 19년 후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브렉은 라드츠식 개인 방어막과 함선 보호막을 쉽게 뚫을 수 있는 프레즈거 총을 남몰래 숨겨둔 의사 아릴레스페라스 스트리건을 찾아 닐트 행성에 왔다. 그러나 스트리건 박사와 총을 찾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의식을 잃은 채 어느 변방 술집 바깥 눈밭에 버려진 세이바든 벤다이를 우연히 발견한다. 세이바든은 천 년도 전에 저스티스 토렌 호에서 대위로 복무하다가 소드 나드타스 호의 함장으로 진급해서 떠난 인물이다. 소드 나드타스 호가 파괴되는 장면을 보는 건 끔찍한 경험이었고, 세이바든은 생명중지 고치에 천 년 동안 갇혀 있었다. 지금 세이바든은 예전 자아의 그림자이며, 케프에 중독되어 자기 삶을 낭비하며 떠도는 장교일 뿐이다. 그리고 브렉과 유사하게 세이바든도 지금의 라드츠 제국이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다고 느낀다. “넌 함선을 잃었어.” 브렉이 세이바든에게 설명한다. “넌 천 년 동안 얼어 있었지. 깨어나 보니 라드츠는 변했어. 더는 침략도 없고, 프레즈거와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지. 네 가문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잃었어. 너를 알 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신경 쓰는 사람도 없어.” 브렉은 자신에 대해서도 똑같이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녀 또한 더는 알 수 없는 제국 안에서 길을 잃었다.



《사소한 정의》에서 브렉과 세이바든이 짝이 된 것이 전직 보조체의 인간화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저스티스 토렌 제1에스크 19호로서의 브렉은 일정 범위에 분산된 의식의 일부로서 방대한 지식체에 접속되어 있었지만, 더 큰 자아의 파괴로 인해 추방된 하나의 생존자로 남은 그녀는 급격하게 축소된 실체로서의 자신을 경험한다. 3부작을 관통하는 브렉의 이야기에는 복수를 위한 노력과,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탐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문제도 포함된다. 브렉은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주인공이지만 인간의 몸에 갇힌 강력한 인공지능의 외로운 조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 결과, 종종 그녀의 감정은 한때 그녀의 존재를 지배했던 인공적인 논리의 차가운 방정식에 대항해 분투한다. 3부작이 진행되면서 상당히 따뜻해지기는 하지만, 브렉은 감정적 온기를 거의 보여주지 않아 이따금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세이바든은 브렉이 고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전직 인공지능의 조각으로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브렉은 세이바든에게 유대감을 느끼는데, 천천히, 특히 얼음 다리에서 떨어지는 세이바든을 구하려고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가 다리 부상을 입을 때에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배우게 된다. 《사소한 정의》가 끝으로 다가가면서 세이바든은 브렉이 저스티스 토렌의 마지막 남은 조각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도 브렉에게 헌신적인 애착을 갖게 된다. 이 애착은 다른 두 권의 책을 통과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특히 《사소한 자비》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동시에 브렉은 세이바든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이 두 명의 망가진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앤 레키는 정체성과 애착과 중독의 문제들을 탐구한다. 3부작을 통과하면서 둘은 천천히 서로의 삶을 짜 맞추고, 브렉이 그 균열을 다루는 데 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둘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존하게 된다.



《사소한 정의》는 왜 라드츠 제국 3부작이 놀라운 성공을 거뒀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적인 서사 전략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레키는 생물학적인 성이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를 좌우하거나 우리의 독서 경험에 지나치게 영향을 주는 걸 거부한다. 라드츠어는 성별이나 젠더를 구별하지 않으므로 브렉도 구별하지 않는다. 동시에 이 서사는 생물학적인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를 대부분 ‘그녀’로 지칭한다. 한 웹사이트에 재게재된 블로그 글에서 레키는 이렇게 인정했다.



성별을 구분하는 대명사들이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는지 살펴볼 의도는 아니었다. 정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SF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SF가 잘하는 일, 이상하고 낯선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일 말이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기본적인 대명사로 보편화된 ‘그녀’를 사용하는 것에 레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갑자기 ‘기본’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본의 문제는 자동적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저 너무나 명백하고 자연스러워 보일 뿐이다. 낯선 기본형을 사용하는 것, 특히 익숙한 것과 가깝지만 정확하게 같지는 않은 것을 사용하면 정말로 애초부터 기본이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이런 ‘기본의 순간들’은 브렉이 성별 구분이 있는 언어를 쓰는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맞는 지시어를 찾으려 분투하는 순간에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브렉은 한 행성계에서 술집 주인을 보고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미로 모양으로 모나게 누벼놓은 셔츠로 보아 남성일 것이다. 라드츠 우주 안이었다면 이런 걸 신경 쓸 일도 없을 텐데. 라드츠인들은 사람의 성별을 거의 따지지 않는 데다, 내 모국어이기도 한 라드츠어는 어떤 방식으로도 성별을 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쓰는 언어는 성별을 표시하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을 썼다가는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 있다. 성별을 나타내는 신호들은 가는 곳마다 다르다. 때로는 너무 극단적으로 달라서 신호를 봐도 성별을 분간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데다, 나는 당최 그 신호들을 알아채질 못했다.



일부 등장인물에 제시된 미묘한 실마리를 통해 생물학적 성을 추측해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쓸데없는 노력이다. 보편적으로 여성형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이 3부작에서는 완전히 정상으로 간주되어, 직접적으로 성과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3부작은 젠더와 관련된 규범과 가정에 충격적인 도전을 제공한다.



두 번째 서사 전략은 분산된 의식이 앤 레키에게 면대면 시점과 서사적 화자를 허용해주는 점과 관련된다. 라드츠 제국 3부작은 기본적으로 일인칭 서사지만 레키는 특히 《사소한 칼》과 《사소한 자비》에서 반복적으로 삼인칭 서사와 결부된 자유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사소한 정의》 끝부분에서 브렉은 미아나이의 한 분파와의 담판을 통해 함선뿐만 아니라 상당한 군부 지위까지 확보하여 브렉 미아나이 함대장이 되어 아소엑 정거장으로 향하고, 그곳은 《사소한 칼》과 《사소한 자비》 대부분의 무대가 된다. 머시 칼르 호의 인공지능과 승무원들에 연결된 브렉(과 독자들)은 함선의 다른 장소나 다른 함선이나 우주정거장이나 심지어 멀리 행성이나, 무대 안의 어느 곳이든 승무원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할 수 있다. 가끔은 거슬리기도 하는 이런 시점 전환은 뻔뻔스럽게 독자들의 주의를 요구하지만, 들어줄 가치가 충분한 요구다. 이 요구는 앤 레키에게 삼인칭 시점을 누릴 수 있는 호사(와 이점)를 제공하는 한편 주인공이 겪는 경험의 바탕이 되는 서사적 영역을 제공한다. 



《사소한 칼》(그리고 《사소한 자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사소한 정의》에서 실마리만 줬던 사회정치적 고려사항들을 이 시리즈에 펼쳐 놓는다. 라드츠 제국이 시행하는 병합은 가장 잔혹한 형태의 제국주의를 대변한다. 행성계들은 강제로 라드츠 제국에 편입되고, 저항하는 군대와 선동가, 누구든 불화를 야기하는 자 등 ‘문명화되지 않은’ 구성원들은 제국에 복무하는 보조체용 신체로 전환된다. 병합과 보조체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지난날의 관행을 그리워하는 강력한 반대파는 제국이 그 때문에 약해졌다고 믿는다. 그들은 약탈을 일삼던 외계인 프레즈거가 언제라도 조약을 파기할 수 있으니 강력한 제국만이 프레즈거와 같이 위험한 세력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병합과 보조체 신체들을 둘러싼 경제적 측면이 있다. 미아나이는 저스티스 토렌 제1바르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확장과 병합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야. 하지만 필요했어. 처음부터 그랬지. 라드츠 본국 주변을 완충지대로 감싸 어떤 종류의 공격이나 간섭으로부터도 보호하려면 그게 필요했어. 나중에는, 저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했고, 그리고 문명이 미치는 범위를 확장하는 데 필요했고 … 이전 병합의 비용을 치르는 데 필요했고, 보통의 라드츠 국민에게 부를 제공하는 데 필요했어.



그러므로 아난더 미아나이의 분파들 간 내전은 성간 경제 문제와 병합과 보조체 반대 문제, 적대적인 외계인 세력들로부터 제국을 방어하는 문제, 도덕적 분열 문제 등을 포함하는 복잡한 이데올로기 전쟁이며, 그런 요소들은 종합적으로 앤 레키에게 제국주의의 여파와 탈식민지 저항 운동의 전략에 기반하여 얼개를 짤 기회를 제공한다.



추측건대 ‘탈식민지’ 국가적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계속되는 식민지 강점의 여파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원주민들에게는 문제가 되듯이, 《사소한 칼》과, 범위는 조금 좁혀지지만 《사소한 자비》에서는 계속되는 제국주의 권력의 문제가 핵심적인 사안이다. 《사소한 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브렉 미아나이 함대장이 아소엑 정거장에 도착하면서 마주하게 된 내부적 갈등을 다루고, 두 번째 부분은 아소엑 행성에서 자행되는 노동자 착취와 노동 쟁의를 포함한다. 브렉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라드츠 제국이 이 행성계를 병합했을 때 민족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사소한 정의》에 나오는 회상 장면도 그 복잡한 현실을 건드린다. 쉬스우르나 행성에서 탄민드인과 올스인 사이에 터져 나온 갈등 말이다. 오온 대위를 수행하던 저스티스 토렌 제1에스크 19호는 탄민드인들이 미아나이와 함께 비밀스럽게 은닉된 무기들과 관련된 음모를 꾸밀 정도로 올스인들을 대가로 계속해서 라드츠 제국에 아첨하는 데에서 제국주의적 강점의 폐해를 직접 목도한다. 그 사건은 더 큰 내전을 구성하는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지만, 저스티스 토렌 호가 파괴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아소엑 정거장에 도착한 브렉은 제국의 방패 밑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적인 현실을 구성하는 민족 간 분열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든다. 《사소한 정의》에서 기껏해야 마지못해 올스인들을 참아주던 탄민드인들과 마찬가지로 아소엑 정거장에 사는 자이인들은 정거장 행정부가 간신히 용인해주는, 고의적으로 감시하지 않는 구역인 ‘정원밑’에 주로 거주하는 이차나인들을 거의 참아줄 수 없다고 여긴다. 브렉은 정거장을 철저히 점검하기 시작하고 정원밑을 다시 활성화시키려 시도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자이인들의 편견에 불을 지피고 멀리서 통치하는 행정부 감독자들을 향한 이차나인들의 분개에 기름을 붓는다. 브렉은 불화하는 세력들을 달래려 애쓰지만 민족 간 갈등은 깊어지기만 하는데, 그런 시점에서 정부에 의해 악화되지는 않았더라도 민족 간 분쟁이 용납되는 제국에서 누가 시민의 자격이 있는가란 문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브렉이 아소엑 행성으로 내려가자 편견의 불꽃은 더욱 커진다. 브렉은 부유한 유력인사인 시민 포사이프 덴치와 버릇없이 자란 데다 통제 불능인 그녀의 딸 로드를 상대하면서 사회경제적 착취와 엘리트적 특권에 대해 직접 배운다. 힐튼/카다시안/제너 유형의 허풍선이인 로드는 살해 음모의 표적이 된다. 덴치 가문의 부는 라드츠 우주에서 가장 귀한 차를 따고 다듬고 배포하는 일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프랭크 허버트의 《듄》에 나오는 향신료와 마찬가지로 차는 싸워서 쟁취할 가치가 있는 값진 생필품이다. 브렉은 대규모 농장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이 수준 이하의 생활을 영위한다는 걸 직접 알아낸다.



또 이렇게 극명한 분리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곳 야외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어제와 오늘 아침 내가 본 바로는 모두 발스카이인들이었고, 실내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자이인 몇 명을 제외하면 모두 사미르인이었다. 발스카이는 백 년 전에 병합됐고, 지금쯤이면 적어도 첫 번째 피송인들이나 그 아이들의 일부는 적성검사를 받고 다른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했다.



누군가가 퉁명스럽게 “달아날 수 있는데 남아서 찻잎을 따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밭 일꾼들은 딴 잎의 최소 목표 무게를 맞춰야 보수를 받아요. 하지만 최소량이 엄청나죠. 그만큼 따려면 아주 손이 빠른 일꾼 셋이 하루 종일 따야 해요”라고 말하는 얘기를 듣고 브렉은 덴치 농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불가능한 목표치를 재빨리 알아챈다. 브렉은 점차 노동자 착취와 계약에 묶인 노예 상태, 조직적으로 준비된 파업, 노조 구성과 운용에 대해 배운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로드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해결하고, 명백히 아무것도 없는 빈 우주 공간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유령관문과 그 유령관문에서 나온 고대 노타이 물건과 발스카이인 노동자들을 감쪽같이 아소엑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인신매매 망과 아주 이상하게도 이 모든 일과 연결된 듯한 아름다운 차 도구 한 상자를 포함한 아소엑 정거장의 다양한 수수께끼들을 동시에 상대한다. 이런 수수께끼들이 종국에는 미아나이의 분쟁과 연결되는데, 《사소한 칼》은 세 편의 소설 중에서 드러내놓고 제일 정치적인 (그리고 내 취향에는 가장 만족스러운) 편으로서, 오늘날의 세계적인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잘 쓴 논문처럼 보인다.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의 유산들이 계속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자 착취, 조직적인 노조 파괴를 영존시키는 지금 우리 시대에 《사소한 칼》은 3부작 중에서도 가장 적절한 소설일 것이다.



동시에 《사소한 칼》은 3부작 중에서 약간의 서사적 실망을 주는 유일한 소설이다. 브렉에게는 아소엑 정거장으로 갈, 전적으로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앞서 그녀의 지휘관이었던 오온 대위의 여동생인 바스나이드 엘밍이 아소엑 정거장에서 원예 전문가로 일하고 있었고, 브렉은 그녀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사소한 정의》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밝혀주듯이 저스티스 토렌과 모든 보조체들은 자신도 모르게 미아나이의 내전에 동원된 장기짝이었다. 쉬스우르나를 회상하면서 저스티스 토렌 제1에스크 19호는 자기 인공지능의 공식 로그에 어긋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단체 처형을 목격하고, (저스티스 토렌 호에서 제1바르라는 보조체의 형태로) 함선 자체가 파괴되기 직전에 미아나이의 명령을 받고 오온 대위를 죽이면서 천천히 이 내전의 범위를 깨닫는다. 살아남은 보조체로서 브렉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모종의 용서 (또는 처벌)을 구하기 위해 아소엑 정거장에 있는 오온 대위의 동생을 찾는다. 그러나 《사소한 칼》은 대체로 브렉과 바스나이드 간에 있을 법한 갈등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해결을 제시한다. 긴장은 필요한 만큼의 장중함을 얻지 못하고, 용서는 우주정거장에서 생긴 소규모 전투 때 브렉이 바스나이드의 생명을 구했을 때 상대적으로 쉽게 주어진다. 《사소한 칼》은 브렉과 바스나이드 간의 갈등을 설정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대로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브렉이 티사르와트 대위와 형성하는 관계는 그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는다. 티사르와트 대위는 《사소한 정의》에서 세이바든이 맡았던 역할을 이어받았는데, 브렉에게는 세이바든의 마약 중독 건과 자신감 문제보다는 티사르와트의 문제들이 훨씬 익숙하다. 미아나이는 이제 막 임관한 티사르와트 대위의 정체성과 의식을 지우고 보조체로 만들어 브렉을 감시하려 시도한다. 브렉은 재빨리 미아나이의 배신을 의심하고 티사르와트를 미아나이의 통제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티사르와트는 브렉과 유사한 곤경을 겪게 된다. 한때는 광활한 정신의 일부였다가 지금은 하찮아진 티사르와트는 초라해진 자신의 상태를 극복하려 싸우는 동시에 보조체 전환 과정에서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그 부분들과 다시 연결하려 시도한다. 티사르와트가 단순한 세이바든의 대체재 이상이긴 하지만, 《사소한 정의》에서 그려진 브렉과 세이바든의 관계처럼 《사소한 칼》에 그려지는 브렉과 티사르와트의 관계는 점점 커지는 브렉의 인간성에 다층적인 깊이를 제공한다. 티사르와트는 강력한 조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아소엑 정거장의 정원밑에 임시 대사관을 설치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브렉이 조정하지 못한 민족 간 갈등을 정거장으로 끌어올리는 주된 역할을 한다. 《사소한 칼》과 《사소한 자비》가 보여주듯이, 티사르와트는 해묵은 민족 간 분열이 협의되고 중재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런 화해가 극도로 어렵고 상당한 작업을 요구하는 데다 개인적인 희생을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부작의 마지막 책에 걸맞게 《사소한 자비》는 전체 이야기에 만족스러운 결말을 그려주는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이 훌륭한 결말은 유령관문의 반대쪽에서 온 낯선 보조체와 같은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미아나이의 분열을 더 첨예화하는 동시에 서로 충돌하는 중심 줄거리와 보조 줄거리들을 매끄럽게 엮는다. 아난더 미아나이 군주의 세 번째 분파가 복수를 향한 갈망을 품고 브렉을 주시하면서 갈등은 고조된다. 이 미아나이는 자신의 클론 자매들과는 상당히 다르고,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오로지 브렉에 대한 복수의 갈망에만 사로잡힌 듯하지만, 《사소한 자비》는 머시 급 함선의 무장 수준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무기들을 장착한 소드 급 함선 몇 척과 브렉이 지휘하는 머시 칼르 호 간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성간 대결을 보여준다. 《사소한 자비》는 제 몫의 사상자들을 등장시키고, 스페이스 오페라 독자들이 이 서브 장르에서 기대하게 되는 것을 구체화하지만, 프랑켄슈타인 콤플렉스와 인공지능체들이 프로그래밍된 라드츠 제국에 대한 애착에서 풀려나 매이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시모프 식의 논쟁에 돌입하기까지 시간을 들인다. 대화의 경계 안에서 진행되는 이 중요한 논쟁은 뒤에 이어지는 몇몇 갈등의 형세를 역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작가의 역량이 부족했다면 《사소한 자비》는 이 모든 움직이는 조각들의 무게에 눌려 무너졌을 테지만 앤 레키의 뛰어난 서사 능력에 대한 증거인 이 책에서 그녀는 이 모든 요소들 가운데에서도 놀라운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사소한 자비》를 완전히 만족스러운 결론으로 몰고 간다. 놀라운 메타픽션적인(스포일러 아님) 순간에,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드라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승리 아니면 재앙으로 끝난다. 행복을 성취하든가, 아니면 그런 희망까지 틀어막는 비극적인 패배뿐이다. 하지만 끝난 뒤에도 늘 뭔가가 있다. 늘 다음 날 아침이 있고 또 다음이 있고, 늘 바뀌고, 잃고 얻는다. 늘 한 걸음 다음엔 다음 걸음이다.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한 번의 진짜 끝이 올 때까지. 하지만 우리를 압도할 듯 커 보이는 어렴풋이 먼 그 끝조차도 하나의 작은 끝에 불과하다. 여전히 모두에게는 다음 날 아침이 있다. 우리를 뺀 우주의 엄청나게 많은 나머지 다수에게 그 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끝은 임의일 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모든 끝은 아무 끝도 아니다.

 


《사소한 자비》는 결말인 동시에 결말이 아니다. 이 책이 훌륭한 3부작에 일정 정도의 결론을 제공하긴 하지만, 아직 탐험을 기다리는 (심지어 요구하는) 광활한 공간이 남아 있고, 우리는 이미 <밤은 천천히 듣는 독약>(2012)과 <그녀는 명령하고 나는 복종한다>(2014)와 같은 단편들과 2017년 가을에 출간된 한 편의 소설을 통해 그 공간을 보기 시작했다. 라드츠 제국 3부작은 그 복잡한 내러티브가 사려 깊고 흥미진진하며 잘 짜이고 매혹적인 데다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3부작은 최고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어느 정도까지 성취할 수 있는지는 물론이요 SF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 어떤 것인지도 잘 보여준다.








그레이엄 J. 머피 

세니커 대학 영문학 및 일반교양 학부 교수. SF 비평서로 《사이버펑크를 넘어서: 새로운 비판적 전망》, 《어슐러 K. 르 귄 : 중대한 동반자》 등이 있다.



번역 신해경

더 즐겁고 온전한 세계를 꿈꾸는 전문번역가. 대학에서 미학을 배우고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을 공부했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라드츠 3부작 《사소한 정의》, 《사소한 칼》, 《사소한 자비》와, 코니 윌리스의 《고양이 발 살인사건》, 페미니즘 단편집 《혁명하는 여자들》, 《내 플란넬 속옷》, 할란 엘리슨 걸작선 《제프티는 다섯 살》,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공역),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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