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왜 사는가와 같이 거창한 질문을 두고 상념에 빠져 있다가, 별안간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사고나 재해를 만나면 그 순간 삶이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산다는 건 거창하지 않고 허무한 일이며, 사람은 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에게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세월호 참사가 그런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2020년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을 맞고 있다. 다른 대륙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과 가족들의 건강이 괜찮은지 걱정하고, 매일 착용할 마스크의 수급에 대해 서로 물으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1월이나 2월에는 “코로나 잠잠해지면 보자”는 말을 몇 주 정도만 하게 될 줄 알았다. 곧 감염의 걱정 없이 여행을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모든 일정을 바이러스 종식 후로 미루었다. <킹덤>이나 <워킹데드>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며 손에 땀을 쥐고 즐거워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전 같은 마음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는 텔레비전 속의 영상이 낯설게만 보인다. 교황이 혼자 미사를 집전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가 개강하는 시대라니!
스페인 독감 등의 다른 전염병이 세계를 휩쓸고 갔다곤 해도 그것은 내가 태어나지 않은 먼 옛날 일이라고만 여겼다. 전 세계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현재의 내 삶과는 멀리 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는 달라졌다. 이번 코로나19처럼 나의 삶에 깊숙이 침범한 것은 이 바이러스가 처음이다. 이 거대한 농담은 농담처럼 느껴지나 실재한다. 그리고 이 상황은 나를 무력함으로 이끈다.
세계는 달라졌다.
이번 코로나19처럼 나의 삶에 깊숙이 침범한 것은 이 바이러스가 처음이다.
이 거대한 농담은 농담처럼 느껴지나 실재한다.
그리고 이 상황은 나를 무력함으로 이끈다.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체념이 나를 우울감에 젖게 할 무렵, 문득 떠오르는 SF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작가 코니 윌리스의 1992년 작품인 《둠즈데이북》(2018, 아작)이었다.
이 책은 약 10년 전, 지인의 연구실 서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한 눈에도 서가에서 제일 특별한 책처럼 보였는데, 베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두꺼운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명성과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분량에 과연 저 책을 읽을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사람들은 다음번에 읽을 책을 자신이 선택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어떤 책은 알맞은 시기에 독자를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이 그랬다. 코로나19가 현실이 되자 잊고 있었던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둠즈데이북》은 2054년,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시대, 유럽 중세에 관심이 있는 열정적인 역사학도 키브린이 연구를 위해 중세시대로 갔다가, 흑사병의 위험에 말려드는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미래의 역사학자가 과거를 연구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네트’라는 장치를 통해 시간여행을 할 수 있고, 손목뼈에 이식한 관찰 기록용 녹음기를 통해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다. 연구자가 기록할 때의 모습은 과거인에게는 마치 신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중세는 위험도가 높은 시대로 분류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키브린의 시간여행을 반대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라틴어를 공부하고, 말 타는 법을 익히고, 중세식 옷을 준비하고, 중세인의 손톱이 가지런하지 않을 거라 판단하여 본인의 손톱까지 거칠게 만든다. 단단히 준비한 그는 중세로 떠나지만, 그의 앞에는 험난한 여정이 펼쳐져 있다.
분량이 많아서 첫 장을 펼치길 주저하던 나는 밀도 넘치는 중세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중세는 화려함,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기엔 가축우리 같은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 더러운 손이나 코와 입에서 뿜어 나오는 비말로 병이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저주받아 병에 걸린다고 믿는 자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2054년과 중세의 상황이 번갈아 가며 제시되는데,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곳은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중세인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고, 어린아이는 호기심 서린 눈빛으로 세상을 본다. 현재의 사람들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황당한 소문을 믿는다. 중세로 간 키브린은 사람들을 보며 앞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가 떠나온 세계도 다가올 사건에 대해 모르는 건 매한가지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자들이다. 암울한 현실을 갑자기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이도, 계획대로 일을 꾸민 악역도 없다. 누군가는 무언가에 집요하게 집착하고, 중요한 순간에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방해받아 화를 내기도 한다.
코니 윌리스의 책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의 소설이 수다스럽다고 한다. 대사가 많은 것도, 없어도 상관없을 듯한 소음도 등장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스타일 때문에 현실감이 증폭되고, 생생한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소설이 거대한 농담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흑사병이 창궐한 중세와 2054년은 사람이 쉴 새 없이 죽는다. 하지만 생사를 오가는 긴급 상황에서도 인물들은 시트콤에 등장할 것처럼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그의 농담은 염세적이거나 자조적이지 않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참상 이후의 삶은 기대해 볼 만하다는 듯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어보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예측해보건대, 전염병의 유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또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것이다. 질병에 대항하는 약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병이 생기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을 쥔 사람이 병을 빨리 치료할 수 있겠지만, 무시무시한 전염력 앞에 노출되는 건 누구라도 같을 것이다. 위험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무력함을 느끼고 두려워한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나 전지전능한 인물이 인류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그런 이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만들어낸 염원에 불과하다.
이 시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일밖에 없다. 《둠즈데이북》에서는 타인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로슈 신부가 등장한다. 가난한 문맹자이지만 예배를 집전하기 위해 라틴어 구절을 모두 외워버릴 정도로 신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 신실한 사람이다. 그는 종교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는 게 판명 났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 있게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 신부는 키브린을 하늘에서 보내준 ‘캐서린 성녀’로 착각하고 병에 걸린 자들을 돌보는데, 그는 키브린이 곁에 있었기에 자신이 이웃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키브린을 생존할 수 있게 도와준 이는 로슈 신부다. 그와 같은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키브린의 지도교수인 던위디는 아픈 상황에서도 제자를 구하기 위하여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과거로 가는 네트에 뛰어든다. 그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세시대 흑사병 유행의 결말을 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됐든,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절망만으로 가득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지하여 산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이는 없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의사와 간호사, 약사 선생님들, 그리고 그 이외에도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와 청소 방역업체 직원분들이 있다. 그리고 질병에 취약한 사람을 위해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이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질 때,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을 다독이며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이 글의 요약본은 전자신문 [SF 完全社會]세상을 구하는 자는 누구인가 에 수록되었습니다.
박해울, 소설가
단국대학교에서 문예창작 학사와 석사를 전공하였다. 대학 재학 중인 2012년에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기파》로 2018년 제3회 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누전차단기와 PE 밸브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캐릭터와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따라가며 즐길 수 있으면서도, 책장을 덮고 나면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글을 쓰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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