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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위대한 작가더라도 데뷔작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다"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도망치지 않고 뭣하느냐》, 《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 리뷰 by 홍지운

아무리 위대한 작가더라도 데뷔작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다

 

요 근래 한국SF출판시장은 장마철 같다. 자고 일어나면 죽순 새싹처럼 유망한 신인이 불쑥불쑥 곳곳에 튀어나와있으니 말이다. 이 신인들이 돋아나는 토양 또한 다양하다. 오랜 이력을 자랑하는 공학박사나 신참내기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SF소설을 써서 화려하게 데뷔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SF문화가 폭우처럼 쏟아지니, 다양한 영역에 감춰져 있던 인재들이 새로운 경험을 양분삼아 세상 바깥에 그 재주를 당당히 내보이는 요즘이다.

 

그리고 이러한 풍토에 일조를 하였던 아작과 카카오페이지가 함께 하는 SF소설 신인작가 멘토링이 올해로 2회차가 되었다. 프로토타입으로 진행되었던 아작과 안전가옥의 멘토링까지 포함하면 벌써 세 번째다. 신인 작가들의 지속적인 발굴을 위한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이번에도 기대를 넘어서는 깜짝 놀랄 만큼 멋진 성과물을 낳았다. 김주영과 김창규 그리고 천선란 세 작가가 멘토가 되어 신인 작가들이 중편SF소설을 완성하도록 돕고 멘토와 멘티의 작품을 각각 모은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도망치지 않고 뭣하느냐그리고 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의 세 권이 바로 그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발전과 인간의 소외,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

천선란 작가가 멘토가 되어 중심을 잡은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발전과 그로 인한 인간의 소외를 다룬 네 편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들은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장엄한 방식으로 기술 문명의 이면을 다룬다.

 

이민섭 작가의 <펀치머신>은 사이보그와 로봇 기술이 발전하여 자본계층이 로봇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또 구형 로봇을 독립시켜 자유 로봇의 지위를 주는 것으로 노동시장이 붕괴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사이보그가 된 이후 직장을 찾지 못해 한국 네오러다이트운동본부에 가입한 구직자 희영이 배터리가 고장 나기 직전의 구형 자유 로봇, 우루미의 신분을 빌려 로봇으로 위장한 채 노동시장에 뛰어들며 일어나는 해프닝을 유머와 휴머니즘을 담아 묘사했다. 영단어 ‘apologize’에서 따온 회사, “아폴로의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아폴로입니다!”와 같은 사내구호나 네오나치와 러다이트운동의 결합으로 보이는 한국 네오러다이트운동본부와 같은 설정 등은 장르적인 과장을 통해 씁쓸한 현실 풍자를 달성한다.

 

유목연 작가의 <더블 살인>은 인간들이 신경 세포 연결망을 그대로 복제한 인공지능 커넥톰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 ‘더블에게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대리하게 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 더블이 연루된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체스판의 묘수풀이와 같은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친숙한 미스터리의 공식에 완벽히 복제된 인공지능에 대한 설정을 더함으로써 변주 또한 더해 보다 예측하기 어렵고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장한다.

 

천선란 작가의 <푸른 점>은 인류가 자원채취를 위해 수소폭탄으로 해저굴을 뚫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 멸망을 앞둔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다. 태양계를 떠나 새로운 개척지를 준비하는 선발대 중 가장 마지막 방주인 사루트 호의 선장 시에라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꿈을 꾸며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직시한다. 천선란 작가다운, 처연하면서도 결연하게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가 매혹적이다.

 

<푸른 점> 전자책 구매하러 가기: https://ridibooks.com/books/2119000214?_rdt_sid=category-books&_rdt_idx=1 

 

푸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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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ibooks.com

 

강다연 작가의 <공룡이 잠든 도시>는 공룡큐브라고 하는 상상적인 물건에서 출발하는 SF. 공룡큐브는 얼음동굴에서 캐낼 수 있는, 작은 공룡이 들어있는 조각이다. 그리고 부유층은 이 큐브에서 공룡을 적출하고 거대하게 성장시켜 반려동물로 삼는다. 얼음동굴을 탐험하며 공룡큐브를 캐던 태주는 가정부 일을 시작하며 부유한 집안의 딸 유미를 만나고 반려공룡을 눈앞에서 직접 확인할 기회를 갖게 된다. 얼음동굴 안의 공룡큐브를 채굴하는 광부들과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커진 미래세계의 도시를 활보하는 공룡들의 모습은 어딘가 동화적이면서도 또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제시한다.

 

 

데이터를 통한 로맨틱한 소통, 《도망치지 않고 뭣하느냐》

김주영 작가가 멘토를 맡아 멘티를 이끈 도망치지 않고 뭣하느냐에는 위트 있으면서도 어딘가 로맨틱한 네 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있다. 또한 외계인과의 조우나 가상현실세계 그리고 기억조작 등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데이터를 통한 소통이라는 공통된 테마로 묶였기도 하다.

 

이정인 작가의 <스타헬스와 함께라면>은 웃음기 가득하게 귀여운 청소년 성장담이다. 교내 괴롭힘을 받는 찬혁은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스타헬스라는 수상쩍은 헬스장에 가입하고, 그 헬스장에서 운동법에 대해 오지랖을 부리는 유성 아저씨와 정체불명의 전학생인 진아, 이 두 사람과 가까워지며 투팽 행성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스타헬스장은 러닝머신을 뛰어 발생하는 에너지를 동력원 삼아 우주를 비행하며 지구를 지키는 우주선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코믹한 설정이 더해지기는 했으나 그 분위기는 결코 가볍기만 하지는 않다. 찬혁이 유성과 진아를 만나 모험을 겪는 과정은 한 아이가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밟아나가야 하는 진중하고 결연한 선택의 반복이기도 한 것이다.

 

이현섭 작가의 <그랜마-스타>는 국회의원 사위의 선거홍보를 위해 딸 부부와 함께 살게 된 금순이 가상현실 게임 누벨판타지를 플레이하며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금순은 누벨판타지의 숨겨진 클래스인 기사단장으로 전직하며 어릴 적 익힌 검도 기술을 마음껏 뽐내게 되고, 누벨판타지의 모든 길드들의 영입대상 0순위에 올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게임판타지 장르의 클리셰와 노인문제를 유쾌하게 결부시킨 작품이다. 집안의 천덕꾸러기가 우연한 계기로 대모험을 겪은 뒤 금의환향한다는 기본적인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금순이라고 하는 여성 노인 인물의 매력을 한껏 발휘해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나간다.

 

김주영 작가의 <이름 없는 목소리>는 기억을 잃은 여성, 주란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미스테리 스릴러다. 보조해마를 통해 기억을 컨트롤하는 기억센터와 거리의 부랑자-빌리지들이 엮인 거대한 음모가 미로처럼 펼쳐진다.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다음 전개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궁금증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이채하 작가의 <바로 지금 마지막>은 지구 종말이 머지않은, 미지의 바이러스와 온열 질환으로 외출이 금지된 세계를 무대로 하는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로맨스다. 주인공 정윤은 캡슐집에 고립되어 인터넷 방송 크리에이터에게 고용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같은 직장의 자막팀 막내 민영이 정윤의 집 바로 옆에서 정체불명의 커다란 쇠공을 망치로 두들기는 모습을 발견한다. 민영은 막무가내로 정윤의 집에 들어와 동거를 요구하고, 준영의 삶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당돌하면서도 유쾌한 민영과 정윤의 티키타카는 일반적인 로맨스의 커플들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에 SF라는 소재를 더해, 보다 즐겁게 지켜볼 수 있다.

 

 

SF적 세계관이 선명하고도 생동감이 넘치게 묘사된 《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

김창규 작가가 멘토링을 진행한 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SF적 세계관이 선명하고도 생동감이 넘치게 묘사된 작품 넷이 수록되어있다. 작품에서 다뤄지는 모든 것이 미세먼지에 묻혀버린 포스트아포칼립스적 풍경이나 외계행성의 산성 호수와 같은 환상적인 광경 그리고 얼어붙은 행성의 수용소와 같은 극한의 환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SF라는 장르가 제공할 수 있는 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시도 작가의 <우리가 행복을 찾는 사이>는 소형 포집기와 방독면 없이는 살 수 없는, 짙은 먼지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시연과 재건의 모험담이다. 미세먼지와 광신도를 피해 황폐화된 서울을 가로지르며 행복을 찾고자 하는 두 사람의 여정은 한국식 포스트아포칼립스의 모범적인 조합이란 무엇인지 또한 제시한다. 이 작품을 보노라면 서울은 멸망한 이후의 모습도 아름다운 도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작연 작가의 <컬러리스트>는 토착 종족 사이의 분쟁으로 흑색 경보가 내려진 네드칼 행성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들의 군대는 네드칼 행성의 토착 종족이 색을 감지하지 못하는 점에 착안, 민간인 컬러리스트 서이진에게 인간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신호로 사용하기 위한 조색 작업을 요청한다. 네드칼 행성을 떠나고 싶지 않던 서이진은 군대의 요청을 승낙하나, 그 과정에서 어딘가 찜찜한 상황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된다.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배경으로 SF적 상상력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대한 묘사를 결합시킨, 반드시 추천하고픈 수작이다.

 

김창규 작가의 <빌드 넘버 그린>은 인공지능과 자유의지에 대한 SF적 성찰이 담긴 단편이다. 기술문명이 발달한 미래, 주인공 현수는 프로그램 미니에게 자유에 대해 검색하라고 반복적으로 명령하며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인공지능의 예측에 따르면 그는 앞으로 살날이 27일 남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미니를 출시한 인브레인의 계열사, 블랙메모리엄의 직원 소정이 찾아와 흥미로운 거래를 하나 제안한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한계에 부딪힌 현재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현수의 두뇌 패턴의 일부를 인공지능에 삽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현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김창규 식의 정의내림이 인상 깊다.

 

차물들 작가의 <얼어붙은 이 별을 발 아래에 두면>은 인류연합정부가 통치하는 먼 미래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줄리엣은 클론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이나 이는 법적으로 용인되지 않기에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37공역 주둔함대 소속 상급장교 안톤 요하네스 대위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얼어붙은 행성, 에다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줄리엣은 노역으로 설인을 사냥하며 이 행성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고민한다. 얼음행성에 대한 묘사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스페이스오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

 

아무리 위대한 작가더라도 데뷔작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신인 작가의 첫 번째 책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긴장되는 경험이다. 때문인지, 많은 작가들의 데뷔작은 그들이 이후 완성할 차기작들에 비하면 어딘가 장황하고 거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도망치지 않고 뭣하느냐그리고 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의 세 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다. 앞서 말했듯, 이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시기의 날뛰는 에너지는 그 어떤 작가더라도 그의 작가인생에서 단 한 번, 바로 데뷔작에만 담을 수 있는 희귀자원이기 때문이다.

 

PS. 이 세 권의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앞선 두 번의 워크숍을 통해 나온 작품집  《우리한텐 미래가 없어》, 《영어로 뭐게요 대머리가》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보석 같은 작품들을 그 누구부보다 먼저 발견할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홍지운, 소설가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 구매하러 가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8544165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

모두 로봇들이 차지해버린 가까운 미래. 주인공 희영은 ‘한국 네오러다이어트 운동본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은밀하게 로봇들을 파괴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주인에게 버려진 자유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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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않고 뭣하느냐

“어서 도망치지 않고 뭣하느냐 .” 78세 오금순은 안마의자처럼 생긴 손자의 게임기에 앉았다가 가상현실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느닷없이 마을엔 불붙은 화살들이 쏟아져 내리고, 북 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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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 전직 컬러리스트 서이진이 머물고 있는 네드칼 행성은 우주에 흔치 않게 인간이 거주할 만한 곳이지만 네드칼의 호전적인 종족 간 전쟁으로 ‘흑색 경보’가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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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텐 미래가 없어

“우리한텐 미래가 없어.” 우주의 종말은 어떻게 올까. 이 우주가 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의 몸풀기 체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게 실행되는 순간 목적을 다 하고 ‘끝난다’면 어떨까.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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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뭐게요 대머리가

“영어로 뭐게요, 대머리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동춘의 질문에 엄마도 영어 선생님도 서로 미루며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결국 동춘은 제대로 된 대답 없는 수만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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