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어느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한 운석이 러시아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폭발했다. 충격파로 건물 300여 채의 유리창이 깨지고 부상자는 1,500명에 달했다. 사망자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당시의 운석은 지름 15미터 이상에 질량이 1만 톤 가까이 나가는 것으로 추정된 ‘작은 소행성’급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우리나라 진주에도 운석이 떨어졌다. 운석 사냥꾼들이 해당 지역을 뒤지고 다니느라 한동안 떠들썩했었다.
이 모든 일은 영상으로 생생하게 기록되고 유튜브 같은 곳에서 공유되어 널리 알려졌다. IT 기기들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SF에서나 보던 사건들을 다큐멘터리로서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라마와의 랑데부』를 읽었을 때만 해도 소설 속의 천재지변을 실감하기란 어려웠다. 가까이는 1908년 퉁구스카 대폭발에서 멀리는 6천5백만 년 전의 공룡 멸종까지, 우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증거는 많았지만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첼랴빈스크 사건은 인류가 실제로 지구접근 천체들을 꼼꼼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음을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SF에 등장했던 이름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쓰이는 예가 종종 있듯이, 『라마와의 랑데부』에 나온 우주 파수대, ‘스페이스가드(spaceguard)’ 시스템은 실제로도 설립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와 민간 기구들이 연계해서 하늘을 늘 감시하며 지구 가까이 오는 천체들의 리스트를 계속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라마와의 랑데부』가 얘기하는 것은 이렇듯 우주로부터의 물리적인 위협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작품의 일독을 마친 독자라면 누구나 깨달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또 다른 차원의 ‘위협’을 시종일관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정신적 한계, 즉 인간중심주의 인식과 사고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철학적 위협이다.
낮과 밤, 그리고 해와 달. 어쩌면 지구 인류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사고할 수밖에 없는 기원적 한계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삶과 죽음이라는 생명의 이분법도 스스로 지니고 있다. 이제껏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문화유산이란 실은 이런 형이상학의 테두리 안에서 이룩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시야만을 가지고 바깥 우주를 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우리는 우주 속 인간의 지위에 대해 자못 진지한 실존철학 체계를 구축해 왔다. 자연과학 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토대로 최근에는 여러 문예 창작물에서 외계의 다양한 지적 존재들을 꽤 세련되게 상상한다. 하지만 사실 그건 모두 우리 인간의 기대나 욕망이 투사된 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비록 그 기대의 저변에 최대한 인간을 객관화하려는 나름의 자기성찰이 깔려있더라도 말이다.
아서 C. 클라크의 강점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사실적인 배경 묘사를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최대한 우주로 향하게 한다. 캐릭터들이 단조롭다는 비판은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인간 이성의 최선을 대표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싶다. 캐릭터들이 연출해 내는 드라마를 즐기는 게 목적이라면 다른 작가를 읽어야 한다. 클라크는 SF 작가 중에서도 드물게 초지일관 명쾌한 한 가지 외침만을 고수한 작가이다. “눈을 들어 우주를 보자!”
『라마와의 랑데부』는 무엇보다도 내게 ‘고전의 품격’이 무엇인지 깨우쳐준 작품이었다. 처음 한국어판을 낸 것이 26년 전, 그로부터 이 작품은 출판사를 달리해서 계속 재간이 되었고, 아작을 통해서 네 번째로 다시 한국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이는 전적으로 끊임없이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의 절실한 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1973년에 처음 발표된 『라마와의 랑데부』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무려 7개의 SF 문학상을 휩쓰는 기록을 세웠다. 첫 한국어판이 나왔을 때는 카이스트 권장도서 100선에 포함되기도 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식민지 ‘쿠퍼 스테이션’의 시각적 연출에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과학 기술적 묘사의 엄밀함에 중점을 두는 ‘하드 SF의 교과서’로 일컬어지곤 하는데, 어려운 과학기술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중학생 정도의 과학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스스로 놀라운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기에 그런 것이다.
-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수상 이력
1973년 영국 BSFA 수상
1974년 캠벨상 수상
1974년 휴고상 수상
1974년 로커스상 수상
1974년 네뷸러상 수상
1974년 주피터상 수상
1980년 일본 세이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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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경지의 즐거움을 주는 작품” - 아이작 아시모프,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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