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목소리〉라는 중편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이제는 재패니메이션 마니아가 아닌 사람들도 아는 이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기작이자 출세작이죠. 서로 좋아하는 소년소녀가 있었는데, 외계인이 태양계를 침공했고, 반격을 시작한 인류가 외계인을 추격해 항성계 단위로 원정을 떠나고, 주인공 소녀가 그 추격대의 공격용 메카닉 파일럿으로 뽑힙니다. 소년은 지구에 남고, 소녀는 준광속의 속력으로 이동하며 전장을 옮겨 다닙니다. 막 사랑을 시작한 이 둘에게는 두 개의 장벽이 생깁니다. 하나는 준광속으로 이동하는 소녀의 시간이 상대성원리에 따라 점점 더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소년의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고, 그는 더 빨리 어른이 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소통의 어려움입니다. 이 둘의 연락 수단은 휴대폰 문자 메일입니다. 물론 다른 어떤 수단을 써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둘이 서로에게 보내는 연락은 소녀가 지구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점 늦게 도착합니다. 지구로부터 광년 단위로 멀어진 항성계에 도착한 소녀가 보낸 문자는 광속으로 지구를 향해 날아가더라도 수년 후에 그에게 도착하지요. 그런 것입니다. 다른 많은 일들처럼, 슬픈 이야기죠.
《별을 위한 시간》의 주인공인 톰과 그의 형제인 팻은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그들은 초국가적 비영리 연구 단체에서 어떤 테스트 제안을 받습니다. 그 테스트의 목표는 곧 밝혀집니다. 이 단체는 일정 확률로 쌍둥이들이 서로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능력을 가진 쌍둥이들을 선별하고 있었던 거죠. 톰과 팻도 그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 어린 친구들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별의 목소리〉보다 두 세대쯤 먼저 나온 이 소설은 〈별의 목소리〉가 부딪힌 장벽을 돌파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지구를 벗어나 다른 항성계에서 지구형 행성을 찾으려던 인류는 우주선과 지구 사이의 시간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쌍둥이가 서로 주고받는 텔레파시를 이용하려 했죠. 쌍둥이 중 한 명은 지구에 남고, 다른 한 명은 우주선에 타서 일종의 인간 무전기가 되는 겁니다.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더라도, 텔레파시는 ‘즉각’ 소통이 가능합니다. 텔레파시는 질량도 지니지 않았고, 파동의 형태를 띠지도 않았으므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주인공 톰은 지구에 남은 형제 팻(원래 이 친구가 우주에 갈 예정이었는데, 스키 타다가 사고가 나서 바뀌었습니다)의 응원을 받으며 우주로 나아갑니다.
이쯤 되면 청소년을 위한 SF, 요즘 식으로 말하면 ‘YA’의 전개가 펼쳐지리라 예상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우주선 안의 동료와 연애도 하고, 미지의 별에서 신기한 생명체들을 마주하고, 가끔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살아남고, 성장해서 더욱 쓸모 있는 어른이 되는 이야기 말이죠. 실제로 하인라인은 청소년을 주요 독자로 삼은 SF도 곧잘 썼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소설은 뭔가 이상합니다. 전형적인 전개가 펼쳐지리라 예상되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속도를 늦추고 주인공 톰의 내면 근처를 서성입니다. 이 심리 묘사는 얼핏 평범해 보이는 행동과 대사로만 나타나기 때문에 곧잘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마치 미스터리 소설의 단서처럼, 톰의 성격에 관한 힌트는 일종의 정황으로만 흩뿌려집니다. 우주로 나온 이후, 우주선에 배치된 정신과 담당 의사가 그때까지의 스토리를, 혹은 이 소설의 주제를 간략히 정리해줍니다.
“너는 지구에 남기로 했을 때는 우주에 나가지 못해서 아쉬워했는데,
막상 임무를 바꾸어 우주로 나오게 되었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을까?”
이 순간 이후로 《별을 위한 시간》은 외부로 확장하는 속도를 현저히 늦추며,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도 낮춥니다. 모험 소설의 기준에서 보면 이 작품은 기이하리만치 아드레날린을 자아내지 ‘않는’ 소설입니다. 처음 당도한 외계 행성에서 최초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야기는 거의 단신처럼 지나가며, 소설을 서술하는 톰의 시점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재정비했는가’에 집중됩니다. 이는 이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난관이 생기고 사람들은 죽어가곤 했지만, 톰은 그 죽음들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들(특히 그들의 아드레날린)을 ‘끓어오르게’ 만들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바다가 많은 행성에서 그가 묘사한 대상들의 비중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주선에서 탐사용 보트를 어떻게 낙하시키는가에 대한 묘사가 외계 생물들과의 목숨을 건 전투보다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마침 바다가 배경이었고, 고래만큼 큰 생물도 나왔으니까, 이 부분은 어쩌면 《모비 딕》을 향한 오마주였을까요? 《모비 딕》이 전형적인 해양 모험 소설에서 벗어나서 이 세계의 어떤 진면목을 드러내 보여주었던 것처럼, 《별을 위한 시간》도 이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별을 위한 시간》은 《모비 딕》보다 훨씬 간결하고 직관적인 주제를 친절하게 제공합니다. 아마 이 주제는 청소년을 위한 SF를 곧잘 써 왔던 하인라인이 아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 이야기처럼, 혹은 만화 《베르세르크》의 명대사처럼, 행복은 가까이에 있으며, 도망쳐 당도한 곳에는 천국이 없는 법이라고요. 여기서 그 ‘가까운 곳’은 고향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며, 내가 도망치려던 대상 역시 곧 나 자신을 뜻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아, 행복하지 못한 너희는 행복해지기 위해 어디로 가면 좋을까? 저 머나먼 우주로? 정글이나 미시시피강이나 바닷속으로? 많은 모험 소설들이 ‘맞아, 그러니까 그리로 떠나자’고 권하는 중에, 하인라인은 우선 멈추고 질문을 던지기를 권합니다. 이것이 ‘SF의 그랜드마스터’가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왜 그 삶을 원합니까?
그걸 얻는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제, 드디어, 자기 자신과 대화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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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라인만큼 이토록 자주, 이토록 격렬하게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작가는 없다.”
— 딘 R. 쿤츠
“미국 사변 소설의 가장 뛰어난 작가일 뿐 아니라, 장르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가!”
— 스티븐 킹
“하인라인은 SF 장르에서 시대를 초월해 가장 중요한 작가이다.”
— SF백과사전
“우리는 그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길을 걷는다. 하인라인은 우리에게 미래가 어디 있는지 보여줬다.”
— 톰 클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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