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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맛보기 - 4) 화재 감시원

아작 책방/03 화재 감시원

by arzak 2016. 1. 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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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지 마시길. <화재감시원>의 수록작 <화재 감시원>입니다. 소설 제목으로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었으나, 전체 책 제목을 쓸 때엔 출판사에서 편의상 붙여쓰기 했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코니 윌리스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축에 들어가는 작품이지요. 한국에서도 무려 1995년에 <시간여행 SF 걸작선>으로 묶여나온 이래로 팬층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1983년에 쓰여진 소설이구요, 그해 휴고상 수상, 네뷸러상 수상, 로커스상 노미네이트라는 후덜덜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은 “역사는 시간을 이겨왔고, 역사 외엔 영원만이 시간을 이겨왔다”는 자못 근엄한 경구로 시작합니다. 소설의 서술방식은 주인공 바솔로뮤가 날짜별로 쓴 일지입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부터 서술이 이상하네요. “기념비는 1951년 월터 매슈스 주임 사제의 찬조 연설이 있었던 다음에 세워졌는데, 지금은 아직 1940년이다.”(p157) "지금은 아직 1940년이다“?? 이런 식으로 말씀들 하시나요? 하긴 요즘은 대통령의 긴(?) 임기를 한탄하면서 ”아직도 2016년이야??“와 같은 얘기를 하기도 하지요. 


주인공 바솔로뮤가 시간여행자라는 서술은 바로 나옵니다. 바솔로뮤는 근미래의 어느 시기, 답사 대신에 역사 현장 실습을 시간여행으로 떠나는 시대의 역사학도이지요. 그는 사도 바올(St. Paul)을 따라서 여행 다닐 준비를 무려 4년 동안이나 했는데, 그만 컴퓨터의 착오로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으로 가게 됩니다. 1세기로 떠날 준비를 했는데 20세기로 가게 된 것이죠. 그것도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이 있던 그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으로요!





하지만 대공습 당시의 런던은 위험 등급 8이고 세인트폴 대성당은 위험 등급 10이다. 하느님, 맙소사!(p159)


과거사의 시공간이 역사학도들의 실습현장이다 보니 위험 등급도 정해져 있네요. 


이곳에 도착하고 받은 첫 번째 충격을 수습하고 나니 석 달 남짓한 실습 기간 동안 내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역사학과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사학과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일지, 삼촌이 쓴 편지, 10파운드 지폐 한 장만 달랑 건네주고 소포 부치듯 날 과거로 보내 버렸다. 나는 삼촌이 아프니 돌아와 간호를 하라는 두 번째 편지가 웨일스에서 날아올 때까지, 그래서 세인트존 숲으로 가야 하는 12월 말까지 이 10파운드로 버텨야 한다.(p170-171)


이런 서바이버 게임도 드물지 않을까요? 어쨌든 바솔로뮤는 맞닥트린, 아니 들이닥친 운명을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가장 재미있는 일은 고양이를 본 것이다. 나는 고양이에게 푹 빠져 버렸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려 애썼다. 이곳에서는 고양이가 흔해 보였기 때문이다.(p172)


 <화재 감시원>은 ‘냥덕후’들에게도 감명 깊게 읽힐 소설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듯한 이런 구절도 참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하지요. 주인공이 살고 있는 근미래엔 고양이가 흔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멸종된 것일까요? <여왕마저도>의 한 단편인 <마지막 위네바고>가 개가 멸종된 근미래를 다룬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합니다. 어쨌든 주인공이 고양이의 생태에 무지하다는 것은 이 소설 전체에서 하나의 복선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녀석은 잘 있을 거야.” 벤스 존스 노인이 말했다. “독일 놈들이 런던 한복판에 폭탄을 떨어뜨려도 고양이들은 왈츠를 추며 놈들을 마중 나갈 거야. 왠지 아나? 고양이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죽는 경우가 반 이상인데 말이야. 스테프니에 사는 어떤 할망구는 얼마 전에 자기 고양이를 구하려다 죽었지. 그런데 빌어먹을 놈의 고양이 새끼는 앤더슨네 집에 가 있더라고.”


“그러면 고양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 안전한 곳에 있겠지. 내기해도 좋아. 그놈이 만약 성당 주변에 없다면 우린 큰일 난 거야. 가라앉을 배에서는 쥐들이 도망친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건 말짱 헛소리야. 미리 알고 도망치는 건 쥐가 아니라 고양이라고.”(p193)


물론 어디에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남성은 있기 마련이지요. 자, 그러면 석달 동안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실습에 던져진 우리의 바솔로뮤는 실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세인트폴 대성당 주위를 맴도는 고양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코니 윌리스는 거의 매작품보다 ‘연애’ 내지는 ‘썸’을 삽입하는데 바솔로뮤는 1940년의 런던에서 대체 누구를 만나게 될까요? <화재감시원>의 수록작, <화재 감시원>을 읽으시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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